"계모임에 곗돈 3000만원 부었는데.." 곗날 계주 집 대문에 붙은 종이에 주저앉았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계모임이 있었습니다. 은행 문턱이 높던 시절, 이웃끼리 믿음 하나로 돈을 모으고 차례대로 목돈을 타 가는 계는 서민들의 든든한 저금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한 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면 평생 모은 돈과 사람까지 함께 잃게 됩니다.

대구 서구에 사는 남순자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30년 넘게 서문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다 몇 해 전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순자 씨는 혼자 외동딸을 키워 시집보냈습니다.

순자 씨에게는 20년 넘게 이어 온 계모임이 있었습니다. 시장 상인 열 명이 모인 계였고, 계주는 같은 시장에서 한복집을 하던 진숙 언니였습니다. 진숙 언니는 셈이 밝고 말솜씨가 좋아 모두가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계는 한 달에 한 번 진숙 언니 집에서 모였습니다. 모일 때마다 언니는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내놓았고, 계원들의 집안 대소사를 누구보다 먼저 챙겼습니다. 순자 씨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사흘 동안 빈소를 지켜 준 사람이 진숙 언니였습니다.

순자 씨가 이불 가게를 처음 열 때도 진숙 언니가 첫 손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자들끼리 서로 기대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순자 씨에게 진숙 언니는 친언니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5년 전, 진숙 언니가 새 계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매달 50만 원씩 5년 동안 붓자. 순번대로 3,000만 원씩 타 가는 거야. 은행 이자보다 훨씬 낫다." 계원들은 모두 찬성했습니다. 순자 씨도 노후 자금을 마련할 생각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순자 씨의 순번은 맨 마지막이었습니다. 다른 계원들이 차례로 목돈을 타 가는 동안 순자 씨는 5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곗돈을 부었습니다. 이불 가게를 정리하고 수입이 줄어든 뒤에도 곗돈만은 꼬박꼬박 냈습니다.

계원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순번이 가장 이득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5년 동안 부은 돈을 한꺼번에 타기 때문입니다. 순자 씨는 그 돈으로 딸네 근처로 이사 갈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순자 씨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곗돈은 반드시 계좌로 보내고, 매달 모임에서 받은 계 장부를 휴대전화로 찍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진숙 언니는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따지냐"며 웃었지만, 순자 씨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해 온 버릇이라며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봄, 드디어 순자 씨가 곗돈을 타는 날이 왔습니다. 3,000만 원이면 딸네 근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할 보증금이 되었습니다. 순자 씨는 아침 일찍 고운 옷을 차려입고 진숙 언니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진숙 언니 집 앞에 도착한 순간, 순자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굳게 닫힌 대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집주인 사정으로 집을 내놓습니다. 문의는 아래 부동산으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진숙 언니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계원 두 사람도 대문 앞 종이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그들도 아직 곗돈을 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보니 집은 한 달 전에 이미 매물로 나와 있었습니다. 진숙 언니는 지난달 곗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떡을 내놓고 웃으며 계원들을 맞았습니다. 그 웃음 뒤에 이런 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순자 씨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계원들이 순자 씨 집에 모였습니다. 알고 보니 진숙 언니는 몇 년 전부터 아들의 사업 빚을 막느라 곗돈을 돌려쓰고 있었습니다. 앞 순번 사람들에게 줄 돈은 뒤 순번 사람들이 부은 돈으로 메웠고, 결국 돈이 바닥나자 집을 내놓고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계원 가운데 한 사람은 남편 몰래 곗돈을 부어 온 터라 집에 말도 못 하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또 다른 계원은 손주 대학 등록금으로 쓰려던 돈이라며 가슴을 쳤습니다. 순자 씨의 작은 거실은 한숨과 울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또 한 계원은 그 자리에서 통곡했습니다. "장부도 없고 다 현금으로 줬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다른 계원들도 땅이 꺼지게 한숨만 쉬었습니다. 20년 믿음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순자 씨도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자 정신을 차렸습니다. 순자 씨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5년 동안 찍어 둔 계 장부 사진 60장과 계좌 이체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순자 씨는 법무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은 사진과 이체 내역을 보더니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 정도 증거면 충분해요. 다른 계원분들 것도 모아서 같이 고소해요. 그리고 계주 명의로 된 재산이 남아 있으면 가압류부터 걸어야 해요."

순자 씨는 계원들을 다시 모았습니다. "울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와. 내가 찍어 둔 장부에 우리가 낸 돈이 다 있어. 같이 움직이자." 계원들은 그제야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처음에는 계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20년 언니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좀…." 순자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가 정에 약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번에도 정으로 넘어가면 언니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을 게 없어."

딸의 도움으로 계원들은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동시에 아직 팔리지 않은 진숙 언니 명의의 집에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집을 팔아 돈을 챙기려던 계획이 막힌 것입니다.

한 달 뒤, 진숙 언니가 경산의 딸 집에 숨어 지내다 경찰 연락을 받고 나타났습니다. 수척해진 얼굴로 계원들 앞에 선 진숙 언니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안하다. 아들 빚만 막으면 다 돌려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순자 씨는 언니의 손을 잡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 남편 장례식 때 언니가 해 준 거 평생 못 잊어.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하지만 이건 정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야. 집 팔아서 우리 돈 돌려줘. 그게 언니가 우리한테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야."

몇 달 뒤 진숙 언니의 집이 팔렸고, 가압류 덕분에 계원들은 부은 돈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았습니다. 순자 씨도 2,000만 원 넘게 되찾았습니다. 계원들은 순자 씨를 붙잡고 "언니 아니었으면 한 푼도 못 찾았을 거예요" 하며 고마워했습니다.

계원들은 돈을 돌려받은 날 순자 씨 집에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계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모여 밥을 먹는 모임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돈 없이 만나는 모임이 오히려 마음은 더 편했습니다.

돈을 되찾은 날, 순자 씨는 딸과 함께 서문시장 골목의 납작만두 가게에 갔습니다. 얇게 부친 납작만두에 파채와 양념간장을 듬뿍 얹은 소박한 한 접시였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가 장부 사진 찍어 둔 거, 그게 다 살렸어." 순자 씨는 웃으며 만두 한 점을 딸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고전 소설 『배비장전』의 배비장은 점잖은 척하다가 제주 기생 애랑의 달콤한 말에 속아 큰 망신을 당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말이라도 돈이 걸린 일이라면 기록을 남기고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과 믿음으로 맺은 관계라도 돈 앞에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계나 사적인 돈거래를 할 때는 반드시 계좌로 주고받고, 장부와 약속을 기록으로 남겨 두세요. 그 작은 기록이 내 노후 자금을 지키는 마지막 방패가 됩니다.

올가을 순자 씨는 딸과 함께 앞산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산자락마다 붉은 단풍이 번졌고, 저 아래 대구 시내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자 씨는 딸의 팔짱을 끼고 오래도록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출처 : '배비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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