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 [하종강 칼럼]

한겨레 2024. 10.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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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2일 어느 병원의 파업 현장. 이들은 무자비한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자, 자신이 임신부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고운 옷차림’으로 집회 현장에 나왔다. 이들은 다른 동료들이 파업 투쟁으로 고생할 때 임신부라고 해서 집에 편히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 제공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아내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나보다 먼저 읽었다. 나는 한참 지난 뒤에야 읽었는데 페이지마다 한두군데쯤 문장 사이에 회색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같은 크기로 정갈하게 그어져 있는 그 표시를 나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넣은 문장부호라고 생각했다. 흔하지 않게 ‘너’로 시작하는 소설의 화자가 혹시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아내가 읽다가 너무 힘들어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페이지를 덮을 때마다 다음에 다시 읽기 시작할 부분을 연필로 표시해둔 것이라는 것을…. “읽기 너무 힘들다”는 것이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일 것이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는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거나 ‘도리’가 아니다. 아, ‘예의’와 ‘도리’…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다.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하고 너는 달렸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소설을 읽다가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동호는 쓰러진 정대를 그대로 둔 채 도망간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그 부채감이 그 뒤 동호의 짧은 삶을 규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대목에서 오래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와 비슷한 일이 노동운동 속에서도 꽤 많이, 어찌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호텔 노동조합 파업 현장에 조합원 수보다 몇배나 많은 공권력이 투입된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 매일 훈련받은 테러 진압 병력이 조합원 상당수가 여성이었던 파업 현장에 투입됐고 수많은 노동자가 부상당했다. 그 무렵 우리가 본 사진이 있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몇명의 경찰 앞에 고개를 바닥에 숙인 채 엎드려 있던 노동자들…. 얼마나 참혹하게 진압당했는지 그 한장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2000년 6월29일 오전 20여일째 파업 농성 중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경찰병력이 투입돼 노조원들을 연행하기에 앞서 바닥에 엎드리도록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그 “역사상 가장 참혹한 진압”의 후유증으로 두명의 임신부 조합원이 유산했다고 알려졌다. “나는 임신부예요!”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중 한명은 진압 현장에서 하혈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노동조합은 많은 고민 끝에 이 일을 문제 삼아 싸우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그 사건을 거론하면 당연히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겠지만 당사자들의 뜻과 사정을 고려해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언론이 보도하지도 않았지만 소문은 널리 퍼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며칠 뒤, 어느 병원의 파업 현장을 방문했다. 조합원들이 모두 같은 색의 셔츠와 조끼를 입고 로비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는데 유독 두명의 여성 조합원이 화사한 원피스에 고운 화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조합원들이 지나다가 “오늘 웬일이야?”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이가 답했다. “내가 임신부잖아요. 오늘 공권력이 투입될지도 모른다고 해서요….”

호텔 파업 진압 과정에서 두명의 임신부가 유산했다는 소문은 벌써 들어 알고 있었고, 오늘 자신들의 파업 현장에 무자비한 공권력 투입이 예상된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가 임신부라는 걸 어떻게든 알려야겠기에 고운 옷에 예쁜 화장 차림으로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이 사람아, 그럼 오늘 같은 날은 나오지 말았어야지….” 한 사람이 답했다. “그래도, 어떻게 나만 집에 편하게 있을 수가 있어요….” 다른 조합원 ‘동지’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농성을 하는데, 자기만 임신부라고 집에 편히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피스를 입은 조합원 등 임신부 세 사람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어 조금이라도 편히 앉게 했다.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겠냐?”고 어렵사리 양해를 구했고, 그 세 사람은 선선히 그러마 했다.

많은 고민 끝에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그 비슷한 생각을 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당하거나 구속된 동료도 있는데, 나만 편히 있을 수는 없다…, 어찌 보면 그러한 부채감이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힘이다. 인류가 그렇게 인간에 대한 ‘예의’나 ‘도리’를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러한 부채감이 인류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부채감으로 오늘도 많은 활동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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