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론' 속 취임 2주년 맞은 이재용…'승어부' 전략은
연말 인사·조직 개편 규모 클 듯…"위기 극복 구심점 역할해야"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로 회장 타이틀을 단 지 2년이 됐다.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이 전방위적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내놓을 위기 타개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별다른 취임 2주년 기념행사 없이 차분히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앞서 2022년 회장 승진 당일에도 별도 취임식 없이 예정대로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으며, 취임 1주년인 지난해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올해의 경우 선친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를 맞아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행사(21일), 추모 음악회(24일), 추도식(25일) 등에 잇따라 참석했다.
지난 24일에는 추모 음악회에 앞서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과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부회장) 등과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현안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에도 추도식 이후 삼성 현직 사장단 50여명과 함께 1시간가량 오찬을 하며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정신'을 되새기고 삼성의 위기 극복을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별다른 공개 메시지를 내지는 않았다.
이미 전영현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진을 대표해 실적 부진을 비롯한 최근 일련의 위기 상황에 대해 '반성문'을 낸 만큼, 향후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하는 데 보다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미 앞서 수차례 삼성이 처한 현실과 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미래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2022년 회장 승진에 앞서 가진 사장단 오찬에서는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이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과감한 도전을 강조했다.
앞서 2021년 11월에는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도 했다.
그 사이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잇따르며 이 회장의 우려는 현실화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주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을 받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SK하이닉스가 3분기에 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썼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낮아진 시장 기대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놨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내에서는 메모리 핵심 인력 등의 인력 유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반도체 특유의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조직간 책임 떠넘기기와 보신주의도 만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가 절감에 집중하느라 기술 혁신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이 2022년 6월 유럽 출장 후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동과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은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 모셔 오고, 또 우리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한 것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최근 삼성전자 출신 한 유튜버가 삼성전자 전·현직 3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영상이 화제가 되는 등 그간 쌓여왔던 불만의 목소리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역대 장관들도 지난 14일 한국경제인협회 주최 특별 대담에서 잇따라 쓴소리를 내놨다.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삼성전자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취약하고, 개방된 혁신이 부족하다"고,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삼성이) D램의 성공에 너무 오래 안주하며 조직의 긴장도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은 "조직 문화와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에 따라 11월 말 또는 12월 초에 있을 연말 인사 폭과 조직 개편 규모가 예년보다 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는 '한종희-경계현' 투톱 체제를 유지하고 사장 승진이 2명에 그치는 소폭 인사로 안정에 무게를 둔 대신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앞당겨 인사를 단행하며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는 쪽을 택했다. 대신 이례적으로 지난 5월 반도체 수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했다.
올해 연말 인사에서는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실적이 부진한 일부 사장급의 교체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원 승진 규모나 전체 임원 숫자도 예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전자 DS 부문은 연구개발(R&D) 인력을 일선 사업부로 전진 배치하고 메모리사업부를 중심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책임 경영을 위한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 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 부회장이 반도체 구원 투수로 전격 투입된 가운데 향후 부회장단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사법 리스크가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아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직 전반에 만연한 보신주의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며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고 과감한 인적 쇄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취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를 위한 전략은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이 회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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