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위험 신호’냐 ‘성장 위한 지렛대’냐…사상 최대 농가부채

김소진 기자 2026. 3. 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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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구당 4500만원 넘겨
연체율 등 악성부채 신호 늘어
융자 중심 규모화 정책 회의론
정부 “투자 확대 결과로 봐야”

전국 농가부채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으며 농가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가파른 부채 증가를 두고 농산물 생산비 급등 및 가격 부진에 따른 ‘구조적 파산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한편 시설·기계 확충을 위한 ‘미래 투자’라는 주장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악성부채 증가…연체액·농지경매 급증=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농가부채는 4501만6000원으로 2023년(4158만1000원) 대비 8.3% 증가했다. 농가부채는 2023년에도 전년보다 18.7% 증가하며 최근 2년간 가파르게 확대됐다. 부채문제를 언론이 조명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2024년 “농가부채 증가는 주로 투자 확대의 결과”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스마트팜, 시설 현대화, 후계농 기반 확보 등 농업정책자금이 확대되며 투자 수요가 는 것도 부채가 증가한 배경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악성부채 증가를 보여주는 지표들도 동시에 나타난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양평)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농협상호금융 조합원 연체액은 1조5182억원으로 2021년(3196억원)의 5배 수준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농민도 늘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북 증평·진천·음성)이 지난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농협 조합원 신용불량자는 2018년 8820명에서 2025년 8월 기준 1만3718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출 부실화 조짐은 농지경매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전남 나주·화순)은 농지담보대출 미상환 건수가 2023년 8월 기준 1만4101건으로, 2021년 6109건과 비교해 2.3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융자 중심 농정이 부채 키워” vs “투자 확대 결과”=이런 흐름을 두고 정부의 농정 방향이 융자 기반 규모화에 치우쳐 농가부채를 구조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비료·사료·원자재 등 생산비는 계속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적정하게 보장되지 않아, 농가가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영농형태양광 정책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녀름은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영농형태양광발전은 일반 태양광 대비 시공비용이 1.2배로, 농산물값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시설 설치비라는 부채를 감당해야 하고 수년간 빚더미에서 허덕여야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도의 최저지원가격(MSP) 제도를 언급했다. MSP처럼 생산비 대비 최소 50% 이상 마진을 보장하는 가격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수미 녀름 소장은 “농사로 살아갈 수 있는 농업구조 마련이 중요하다”며 “청년이 수억원 빚을 내야만 도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정부가) 농지와 주거 등 환경을 제공하고 농업기술·경영방식을 배울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부채 증가를 위험 신호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2023년 농가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한 배경으로 ‘투자 확대’를 꼽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농가부채 증가분 656만원 중 83%는 사업투자 목적 부채(농업용 326만원·겸업용 216만원)였고, 가계용 부채는 17만원 증가에 그쳤다. 전년 대비 상환기간 1년 이상인 고정부채는 27.4%(842만원) 증가했지만, 상환기간 1년 미만 유동부채는 43.6%(186만원) 감소한 것을 두고 ‘투자성 부채’ 확대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규모별 부채 양극화 심화…통계 밖 ‘숨은 부채’ 의문도=부채 흐름은 농가 규모에 따라서도 확연히 다른 모양새다.

10㏊ 이상 대규모 농가는 2024년 부채가 1억119만원으로 2014년(8322만원)과 견줘 21.6% 증가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주요 기반 투자가 이미 이뤄진 농가가 많은 만큼 대출 부담이 빠르게 확대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3㏊ 규모 농가 부채는 같은 기간 2474만2000원에서 6628만4000원으로 167.9% 폭증했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중간 규모 농가는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장비 노후화와 신규 투자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며 “독자 경영이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적 취약성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0.5㏊ 미만 소농도 부채가 2131만5000원에서 3688만3000원으로 73.1% 증가했다. 장 소장은 “0.5㏊ 미만 소규모 농가들은 농업용 부채보다는 생계 유지를 위한 부채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농가부채 규모가 상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24년 농가경제조사에서 확인된 농가 평균 부채 4501만6000원을 전체 농가 97만3707가구에 단순 적용하면 총부채는 약 43조8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김선교 의원실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농협 조합원의 대출잔액만 해도 81조4946억89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정책자금 대출 등을 더하면 전체 부채 규모는 공식 통계치보다 훨씬 클 것이란 의심이 가능하다. 데이터처는 이에 대해 “농가경제조사는 상시고용인 5인 미만 농가만 조사 대상이어서 대규모 기업농의 부채는 집계에서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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