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설날 '마타리키 데이'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마오리인 신화속 별자리 이름 딴 공휴일
마오리인 정치적 영향력 커진 것 반영
풍년 기원과 조상 음덕에 감사하는 날
놀기좋아하는 뉴질랜드의 공휴일 풍경
새로 생긴 공휴일
제가 살고 있는 이곳 뉴질랜드에는 1년에 12개의 법정 공휴일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의 첫날처럼 날짜가 못 박혀 있어 매년 같은 날짜에 쉬는 경우도 있지만, 6월의 첫 번째 월요일인 국왕 탄신일(King’s Birthday)과 10월의 마지막 월요일인 노동절(Labour Day)처럼 몇 월의 몇 번째 월요일 혹은 금요일로 지정되어 있는 공휴일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그 전후에 있는 토, 일요일과 이어서 3일간의 연휴를 즐기게 됩니다. 한국에선 이를 황금연휴라고 부르는데 이 곳에서는 그냥 '긴 주말(Long Weekend)'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노는 거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뉴질랜드 사람들이기에 이런 식으로 정해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Long Weekend도 부족했는지, 그 연휴의 전날이나 다음날까지 개인적인 휴가를 써서 이른바 Long Long Weekend를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 시기에는 교통량이 현저하게 줄고 거리에 사람들도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처럼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일하기 좋은 때입니다. 평소와는 달리 공휴일에는 지원자들의 신청을 받아 근무 편성을 하는데, 이런 날에 근무하게 되면 급여도 1.5배를 받게 되고 대체휴무일도 하루 받을 수 있어서, 회사에서 공휴일 근무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 항상 제일 먼저 제 이름을 올립니다.
공휴일조차도 전세계적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의 공휴일은 이곳의 한여름인 12~2월에 집중되어 있고 겨울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 년전까지는 6월 초의 국왕 생일과 10월 말의 노동절 사이에는 공휴일이 없었는데, 재작년인 2022년부터 새로운 공휴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인(Māori人)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되면서 그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날을 새로운 공휴일로 정해 기념하게 되었는데, '마타리키 데이(Matariki Day)'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오리 신화속 별자리 이름을 딴 공휴일
마타리키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플레이아데스(Pleiades), 영어권에서는 일곱 자매들(Seven Sisters)라고 불리우는 별자리의 마오리式 이름입니다. 마오리인들과 비슷한 혈통을 가진 하와이 원주민들은 마칼리이(Makali’i: 왕실의 눈)라고 불리우며, 일본에서는 함께 모여 있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자동차 브랜드로도 유명한 수바루(Subaru)라고 부릅니다.
다른 계절에는 뉴질랜드의 하늘에서 안보이다가, 뉴질랜드의 겨울인 5월말에서 7월초 사이에 다시 나타납니다. 고대 마오리인들은 한겨울 새벽 하늘에 떠오르는 이 '마타리키' 별자리가 지난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린다고 여겨왔습니다. 한마디로 마오리인들의 설날인 셈이죠.
이 마타리키 별자리가 그 해에 처음으로 보이는 날짜는 뉴질랜드의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역시 놀기 좋아하는 뉴질랜드 사람들답게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의 한 금요일을 '마타리키 데이'로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설날처럼 매년 날짜가 조금씩 바뀝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6월 28일 금요일이 올해 2024년의 '마타리키 데이'입니다.
추수감사절이나 추석같은 축제
고대 마오리인들은 마타리키 별자리가 농사와 수확, 사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별들이 밝고 선명하게 보이면 풍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마오리 신화에 따르면, 마타리키 별자리는 어머니 별인 화에아(Whaea=마타리키)와 8남매의 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별이 상징하는 바는 아래와 같습니다.
마타리키 - 전체 성단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별자리의 중심 별. 성찰과 희망, 자연과의 유대, 건강과 행복
포후투카와(Pōhutukawa) - 조상과 고인에 대한 기억, 그들이 우리 삶에 준 영향
투푸아누쿠(Tupuānuku) - 심고 뿌리고 거둬들이는, 땅에서 나는 모든 음식
투푸아랑이(Tupuārangi) - 숲과 숲속의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과 공중의 새
와이티(Waitī) - 아와(Awa 강), 로토(Roto 호수), 쿠쿠와이(Kūkūwai 습지) 그리고 와이푸나(Waipuna 샘물) 등 내륙의 물과 그곳에서 거두는 먹거리
와이타(Waitā) - 바다와 해산물
와이푸나 아 랑이(Waipuna-ā-Rangi) - 비, 우박, 눈
우루랑이(Ururangi) - 하우라로(북풍), 통가(남풍), 하우아우루(서풍), 마랑가이(동풍) 등 바람
히와 이 테 랑이(Hiwa-i-te-Rangi) - 새해의 소망과 염원
마오리인들은 전통적으로 마타리키에 축제와 제사 등 다양한 행사를 해왔는데, 요즘에도 흩어져 살던 가족(화나우 Whānau)들이 모두 모여 조상을 추모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와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데, 마오리인들에게 예로부터 내려오는 지식과 지혜를 뜻하는 마타우랑아 마오리(Mātauranga Māori)에 따르면 마타리키는 다음을 위한 시간입니다.
기억 - 지난 마타리키 이후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
현재 - 모두 모여서 현재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
미래 -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계획과 기대
국왕 탄신일과 박싱데이도 공휴일
지난 6월 3일 월요일은 국왕 탄신일(King’s Birthday)이었습니다. 모친이 너무 오래 사는 바람에 하마터면 왕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뻔했던 대영제국의 현 국왕 찰스 3세의 실제 생일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선대 엘리자베스 2세여왕 시절부터 매년 6월의 첫 번째 월요일을 여왕 혹은 왕의 생일로 정해 황금연휴를 즐겨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군주제를 반대하는 데다가,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난 지도 한참 되었는데 왜 남의 나라 왕의 생일을 아직까지도 기념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그런 거에 전혀 괘념치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공휴일이 하나 있어서 쉴 수 있으니 좋고, 만약에 근무를 하게 되면 추가로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평소보다 교통량도 훨씬 적고 승객들도 역시 많지 않아 버스 운전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인 것은 덤입니다.
뉴질랜드는 물론 유럽과 대부분의 영연방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의 다음날인 12월 26일도 역시 법정 공휴일인 'Boxing Day'입니다. 이날은 원래 유럽에서는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우편배달부와 청소부 등 음지에서 고생하는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포장하는’(Boxing) 날입니다. 이것이 약간 변질되어, 크리스마스날 할머니에게서 받은 용돈으로 쇼핑을 즐기는 날로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아름다운 전통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제가 운전하는 버스에 타는 승객분들 중에 초콜릿이나 작은 케익, 직접 구운 쿠키 등을 예쁘게 포장해서 저에게 선물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그 시기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조금 큰 가방을 챙겨서 운행을 합니다.
한국에서도 시내버스 운전기사님들을 비롯해 대중교통 분야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이 공휴일은 물론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도 여러분들의 발이 되어드리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운전대를 잡으십니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아서 휴일 근무 편성을 하고, 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 수당을 지급하고, 거기에 더해 대체 휴무일도 부여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근무 여건과 교통 지옥 속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 좀 더 좋은 처우를 해줄 수 있는 정책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들이 행복해야 그 버스를 타시는 분들도 쾌적하게 이용하실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