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 남편과 외식나온 60대 아내가 이혼을 결심했다

나는 올해 예순둘, 결혼 36년 차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아이 둘 키우기가 빠듯했다.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나는 동네 세탁소에 다림질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다리미를 들고 서 있으면 저녁엔 어깨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18년을 일했다.

번 돈은 생활비에 보태고 남은 건 부부 공동 적금에 넣었다. 통장 관리는 늘 남편 몫이었다.

"은퇴하면 우리 둘이 바닷가 가서 살자."

남편이 가끔 하던 그 말 하나로 버텼다.

5년 전 시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거동이 불편해진 시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셨고, 나는 세탁소에서 돌아오면 시아버지 목욕부터 시켰다.

그 무렵부터 남편은 친구들과 낚시를 간다며 주말마다 강원도에 다녀왔다. 나는 그것도 남편의 숨 쉴 구멍이려니 했다.

결혼기념일, 남편이 먼저 외식하자고 했다

지난달 결혼기념일 아침,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36년 동안 기념일을 먼저 챙긴 건 처음이었다. 나는 장롱 깊숙이 넣어둔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아껴둔 립스틱도 발랐다. 시아버지 저녁은 옆집 언니에게 부탁해두었다.

식당에 마주 앉자 남편이 내 접시에 먼저 음식을 덜어주었다. 낯선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났다.

"나 혼자 내려가서 살 거야"

물을 한 모금 마신 남편이 입을 열었다.

"나 올해 말에 정년이잖아. 끝나면 강릉 내려가서 살려고."

드디어 그 바닷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거기 작은 아파트도 봐뒀어."

들고 있던 수저가 접시 위로 떨어졌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잠깐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럼 아버님은요?"

"아버지는 지금처럼 당신이 좀 맡아줘. 나도 평생 가족 위해 일만 했잖아."

그날 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은 한숨부터 쉬었다.

"엄마, 아빠도 고생 많이 하셨잖아. 좀 이해해 드려."

18년 동안 세탁소에 서 있던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집 전화로 걸려 온 낯선 목소리

며칠 뒤 오후, 몇 년 동안 울리지 않던 집 전화가 울렸다.

"부동산입니다. 잔금 날짜 확인차 연락드렸어요."

중개사는 남편이 서류에 적어둔 연락처가 이 번호라고 했다.

계약은 넉 달 전이었다. 계약자는 남편 혼자였고, 계약금은 우리 공동 적금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주말마다 다녀오던 강원도 낚시가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시아버지 기저귀를 갈던 그 넉 달 동안, 남편은 혼자 살 집을 사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적금 통장 내역을 뽑아 들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다.

상담사는 퇴직금도, 그 아파트도 부부가 함께 모은 재산이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이혼 서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버님은 당신 아버지예요. 강릉에 모시고 가요."

"36년을 같이 산 사람이 어떻게 이래?"

남편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이 빈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주말 아침, 현관 벨이 울렸다. 아들이 빈 상자 몇 개를 들고 서 있었다.

아빠한테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했다. 아들은 한참 내 어깨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엄마, 그동안 몰라서 미안해. 이사 갈 데 정해지면 내가 옮겨줄게."

그 말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한 달 뒤, 남편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강릉으로 내려갔다. 떠나는 날까지 남편은 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요즘도 나는 세탁소에 나간다. 다만 이제 월급은 내 이름 통장으로 들어온다.

다리미를 들 때마다 어깨는 여전히 아프다. 그래도 퇴근길 발걸음은 예전보다 훨씬 가볍다.

여러분이라면 그날 식당에서 어떻게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