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몰락의 본질..우유산업의 위기[압권]

국내 10위권 우유 회사인 푸르밀이 돌연 사업 종료를 선언해 충격을 주고 있다. 푸르밀은 17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400여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푸르미측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 봤다"면서도 "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푸르밀의 사업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11월 30일이다.

푸르밀은 1978년 롯데우유로 출범했다.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사해 롯데우유에서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검은 콩 우유’, ‘가나초코 우유’ 등이 있다.

현재 대표이사는 신준호 회장의 둘째 아들 신동환씨로 2018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취임 첫해 15억원 영업손실을 기록 한 후 2019년 89억, 2020년 113억원, 지난해 124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푸르밀은 경영난 해소를 위해 LG생활건강, SPC그룹 등에 매각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유제품 시장의 지속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리해고를 통보 받은 푸르밀 임직원들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반발하고 있다. 푸르밀 노조는 성명을 발표하고 집단 행동 채비에 나섰다. 푸르밀 노조는 성명서에서 "신준호·동환 부자의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이 든다”며 “강력한 투쟁과 생사기로에 선 비장한 마음을 표출한다”고 밝혔다.

또 "시대의 변화되는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소비자들의 성향에 따른 사업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 영업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 우유 마실 사람이 줄어든 국내 시장

= 푸르밀이 사업을 종료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노조 성명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이 변하면서 우유 시장은 축소를 거듭하고 있다. 다른 회사들은 우유가 아닌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생로를 모색하고 있는데, 푸르밀은 그렇지 못했다.

우유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농림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2001년 1인당 2001년 36.5㎏에서 2020년 31.8㎏으로 줄었다. 우유의 주요 소비층은 영유아다. 2000년에 태어난 아기는 60만명인데 2002년 40만명대로, 2019년에는 20만명대로 반토막이 났다. 콩이나 귀리로 만든 대체우유로 넘어간 수요도 있다.

국내 우유 시장은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수입산 우유는 점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해외 멸균우유는 국내 우유에 비해 가격이 싸다. 쿠팡에 게시된 우유 가격을 비교해보자. 폴란드 해피반의 수입산 멸균우유 1리터는 12개의 2만 2800원, 리터당 1900원이다. 믈레코비타 멸균우유 1리터 12개 가격은 2만 300원, 리터당 약 1700원이다. 서울우유 1리터 2개는 6380원, 리터당 3190원이다. 국산 우유는 1.7배나 비싸다. 멸균우유끼리 비교를 해봐도 서울우유 1리터 10팩의 가격은 2만 1000원, 리터당 2100원이다. 가격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국내 우유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지난해 45.7%로 낮아졌다.

우유에 대한 전체 소비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우유를 활용한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을 포함함 유가공품 전체 소비는 2001년 62.9kg에서 2021년 86.1kg으로 증가했다. 안타깝게도 유가공품에 들어가는 우유는 대부분 수입산 우유다. 마시는 우유(음용유)는 소비자들이 신선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국산 우유를 선호한다. 하지만 우유를 가공하는 유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값비싼 국산 우유보다 저렴한 수입산 우유 구매가 압도적이다.

그러다보니 우유의 국내 생산은 2001년 234만톤에서 2021년 203만톤으로 감소했는데 우유 수입은 2001년 65만톤에서 2021년 251만톤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우유 산업 앞에 놓인 현실은 좀 더 암울하다. 미국, 유럽과 맺은 자유무역협정에 따르면 2026년부터 우유를 수입할 때 부과되는 관세가 사라진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우유에는 올해 9.6%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데 내년에는 7.2%로 낮아져 2026년부터는 0%가 된다. 유럽 역시 11.2%에서 내년 7월부터 6.7%로 낮아지고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지금도 저렴한 수입산 우유는 더 저렴해지고, 국산 우유와의 가격차이는 더 벌어지는 것이다. 

△ 정부의 대응방안 용도별 차등 가격제

= 정부는 우유 원유의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적용해 한국 낙농 산업의 붕괴를 막아 보려하고 있다. 국내 우유 시장에서 가격은 ‘생산비 연동제’, ‘용도별 가격 차등제’에 영향을 받는다.

2013년 정부는 통계청에 발표하는 생산비에 따라 우유 가격을 결정하는 생산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우유는 유통 및 저장이 어려워 수급 조절이 쉽지 않은 품목이다. 국내 낙농업계가 안정적으로 우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생산비에 연동해 가격을 정해주는 것이다. 반면 생산비, 공급자만을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되다보니 우유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우유 소비자가 줄면 가격이 하락해야 하는데, 매년 가격이 인상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저렴한 우유 수입이 이뤄지면서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유가공업체 입장에서는 저렴한 수입 우유를 두고 비싼 국산 우유를 구입해야 할 유인이 없다. 정부가 국산 우유 의무 매입 수량을 정하다보니 비싸더라도 매입해야 한다. 2022년 9월 기준 국산 우유 의무 매입 가격은 1100원 수준이다. 의무 매입 수량을 초과하는 물량은 리터당 100원으로 책정됐다. 

정부는 직접 마시는 우유(음용유)와 유제품에 사용되는 가공유를 분류해 차등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국산 우유를 선호하는 음용유는 비싸게 팔더라도 수요가 있다. 수입 우유와 경쟁이 불가피한 가공유는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아직 가격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음용유는 리터당 1100원, 가공유는 800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림부는 "음용유의 구매량을 줄이면 구매여력이 생기게 되어 음용유보다 저렴한 가공유를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가공유에 필요한 수입을 17~31만톤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낙농 농가로부터 비싸게 우유를 매입해야 하는 유제품 업체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 유가공업체들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수익성을 방어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2~3% 수준이다. 푸르밀의 몰락은 줄어든 우유 수요와 치열해진 수입우유와의 경쟁, 그리고 낮아진 수익성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다.

유제품 업체 뿐 아니라 정부의 부담도 적지 않다. 정부는 매년 약 8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낙농가에 지급하고 있다. 학교 우유 급식에만 470억원이 쓰인다. 의무적으로 원유를 매입해야 하는 유가공업체에는 적자 보조금이 일부 지급되며, 낙농가 한 곳당 간접 지원금도 1700만원이 투입된다. 낙농농가의 수입은 평균 1억 6천만원 내외다.

△ 우유 업체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

= 푸르밀의 매출액은 2017년 2574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으로 30%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5억원에서 123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다른 우유회사들은 역시 우유로 돈을 못 벌기는 매한가지다. 매일유업은 3분기에 전년 대비 9% 늘어난 약 43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매일유업은 온라인 배송이 유리한 테트라팩 멸균우유를 확대하고, 식물성우유(아몬드리비즈), 곡물음료, 브랜드우유(상하목장), 컵커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건강기능식품, 간편식, 아이간식, 디지트 등 파는 품목이 다양하다. 우유만 취급해서는 생존이 쉽지 않다. 푸르밀 역시 다이어트 건강기능 식품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혔지만 수익성 개선에 실패했다.

푸르밀의 사업 중단은 비단 푸르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우유 산업은 식량안보, 낙농가의 소득 보전 등을 이유로 정부가 주도해 생산량, 가격을 결정해 왔다. 변화하고 있는 인구 구조, 식품 소비 패턴을 반영하지 못했고 시장 개방에 따른 위협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푸르밀 임직원 수백명에게 전해진 정리해고 통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수년간 우유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여러번 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지속가능한 시장을 구성하지 못했다”며 “유제품 기업들은 우유에서 손실을 보고 다른 제품을 팔아 메우는 구조로 생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soon@3protv.com)
손은호 삼프로TV 기자(korgitgit@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