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이 제격이다.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곽과 아찔한 절벽길 토끼비리, 그리고 낙동강 상류의 비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까지, 이곳은 자연과 역사가 겹겹이 쌓인 살아 있는 유적지다. 아직 대중에

문경시 마성면 고모산 자락에 자리한 고모산성은 신라가 2세기 말, 군사 방어를 위해 축조한 석성이다. 전체 둘레가 약 1,646m에 이르며, 서쪽은 절벽을 활용한 편축식, 나머지는 지형에 맞춘 협축식으로 쌓아 전략적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곳은 고려 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순간에 등장했다. 성곽에 올라서면 굽이치는 강물과 산세가 어우러진 진남교반의 절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비된 산책로 덕분에 누구나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어, 부담 없는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고모산성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토끼비리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명소다. 좁고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마치 중국의 잔도를 연상케 한다. 이름은 ‘토끼벼루’라는 방언에서 유래했는데, 토끼가 다니는 듯 좁고 위태로운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토끼비리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조선 시대 유생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영남대로 옛길과 맞닿아 있어, 선비들의 간절한 발걸음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오늘날 여행객들은 절벽 끝에서 탁 트인 풍경과 함께 그 역사적 울림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해질 무렵, 절벽에 비치는 노을과 함께 걷는 토끼비리는 문경만의 진짜 매력을 보여준다.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 옛길은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다. 조선 시대 유생들이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길목으로, 수많은 선비들의 꿈과 각오가 서린 역사적 통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단순히 풍경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했던 이들의 열망과 흔적을 체감하게 된다. 절벽 아래로는 낙동강 지류인 윤강이 굽이쳐 흐르고, 멀리 신현리 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걸음마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지금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단순한 산책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을 걷게 되는 셈이다.

고모산성의 진짜 매력은 시간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낮에는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에서 탁 트인 진남교반의 절경을 즐길 수 있고, 토끼비리의 아찔한 매력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반면, 해가 진 뒤에는 야간경관 조명이 성곽과 절벽을 비추며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고요한 산속, 은은한 빛에 드러난 성곽의 실루엣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준다.
문경시는 최근 포토존과 쉼터, 역사 해설판을 곳곳에 마련해 여행객들이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가족과 함께라면 교육적인 시간이 되고, 연인에게는 낭만적인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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