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김안과서 건양대 설립자로..87세'開眼인생'

2015. 6. 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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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 안과전문병원으로 키우고 고향 논산서 35년 교육열정..김희수 총장이 보는'성공하는 삶'이란

땅딸막한 체구에 나비넥타이가 어울리는 노신사. 동양최대 안과전문병원의 신화를 만들고, 남들은 은퇴할 60대에 대학을 설립하고,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일 새벽 네시가 되면 어김없이 병원 응급실과 병실에서부터 중환자실과 약제실은 물론 전기실과 식당까지 1시간 동안 꼼꼼이 돌아보는 근면ㆍ성실과 열정의 화신. 김희수(87) 건양대 설립자 겸 총장은, 80의 나이에 복권돼 중국의 개혁개방을 총지휘함으로써 부도옹(不倒翁)이란 별명을 들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을 연상시킨다. ‘논산의 덩샤오핑’이라고 불릴만한 그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재미 없다’고 말하지만, 매우 행복해 보였다.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며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것만큼 행복한 삶이 있을까. 나이를 잊고 젊은이다운 열정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동시에 그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희석되기 쉬운 ‘기본이 충실한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대전 서구 건양대 메디컬캠퍼스에 있는 총장실에서 그를 만나 평생을 인술과 교육에 헌신해온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희수 건양대 총장이 대전 서구 건양대 대전메디컬캠퍼스 대학본부동에 있는 총장실에서 그가 살아온 인술 50년, 교육 30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의 집무실 입구엔 그의 생활신조이자 좌우명인 ’정직(正直‘)이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시골 면장도 알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김 총장을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새벽 순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대전 서구의 건양대병원에 나타나 지하 1층부터 11층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택이 병원 근처에 있어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의 말로는 병원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약 5000보 정도 된다고 한다. 15년 동안 빠지지 않고 계속해온 일이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고 크고 작은 일들을 꼼꼼하게 챙기는 ‘설립자’의 전형적인 풍모다. 간밤에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설은 잘 돌아가는지,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반찬이 싱거운지 짠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김 총장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하면 직원들이 긴장하지 않을까, 질문을 던지자 선한 웃음으로 답한다.

“그렇게 15년 하니까 직원들도 잘 알아요. 꼬투리 잡을 일도, 잡힐 일도 없어요.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거죠. 허허허. ‘시골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아야 병원이든 대학이든 제대로 운영할 수 있어요.”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이 영락없이 마음씨 좋고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대학과 병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해 꿈을 실현하고,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최고의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그의 목표다.

외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 좋은 대학, 좋은 병원이라고 각인돼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게 그의 평가다. 굳이 점수를 요청하자 ‘60~70% 정도?’라며 다시 껄껄 웃는다.

그는 평생을 의료와 교육에 투신해왔다. 1962년 서울 영등포에 김안과병원을 설립하고, 1980년 논산의 한 중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뛰어들었으니, 지금까지 의료에 53년, 교육에 35년 몸담아온 셈이다. 그 스스로 “안과의사로서 앞을 못보는 사람에게 광명을 찾아주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지식과 지혜의 빛을 열어주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개안(開眼)의 인생’이다.

논산 ‘촌놈’의 눈을 뜨게 만든 사건

김 총장의 인생은 한국현대사의 영욕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2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해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하루 세끼 먹는 걸로 만족해야 했던 가난한 시대, 청운의 뜻을 품고 미국에 유학해 민족차별의 설움을 곱씹으며 선진의학을 배우고, 이를 한국에 접목시켜 큰 성공을 거둔 것 모두 한국현대사를 똑 닮았다.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가 의사의 길을 가도톡 처음 눈을 뜨게 한 것은 농촌 의사로 활동했던 큰 형님.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큰 형님이 논산에서 공의(公醫)를 했어요. 밤에도 왕진을 가곤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 논에 자빠져 옷을 다 버리는 일도 있었죠. 그런데 돌아올 때엔 빈손이에요. ‘왜 왕진비가 없어요?’ 하면 ‘내가 더 주고 와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인술(仁術)인데, 지금은 돈만 아는 금술(金術)이 됐지요. 허허. 그때 남을 도와주고 생명을 구하는 의사에 매력을 느꼈죠.”

큰 형님이 인술에 눈을 뜨게 했다면 미 군정기 미국 의사와의 만남은 의료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사건이었다.

“그때만 해도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이지 예방이란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예방에 집중하는 거예요(당시 대전보건소는 미국 정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예방의학 제도를 도입해 예방주사, 모자보건, 전염병 예방 등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어요. 마침 미국 병원에 인턴을 신청할 기회가 생겨 유학할 수 있었어요. 인생의 전환기였죠.”

1956년 시작한 유학생활도 순탄하진 않았다. 100달러의 월급을 받아 50달러는 딸과 생활하는 아내에게 보내고 자신은 하루 1달러로 생활해야 했다.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동양인에 대한 차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무지와 오해, 편견에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그러면서 선진의료에 눈을 떴고, 귀국해서는 그가 한국인의 눈을 뜨게 할 차례가 됐다.

김안과의 신화에서 출발한 ‘개안의 삶’

1980년대 김안과병원이 영등포 일대의 중요한 만남의 포인트였다고 얘기하자, 김 총장이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미국에 있던 친구가 한국에 오면서 병원 오는 길을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영등포시장 로터리 서울극장 앞이라고 했죠. 그래서 그 친구가 택시를 타고 서울극장으로 가자고 하니, 기사가 ‘거기가 김안과 앞 아닌가요?’ 되묻더라는 거예요. 허허허.”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 총장은 한 대학의 조교수 제의를 물리치고 1962년 영등포에 김안과의원을 개원했다. 당시 영등포엔 공장과 철공소들이 밀집해 있었고,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취약했다.

병원, 그것도 안과의원에 황무지 같은 곳에서 김안과 ‘신화’가 만들어졌다. 핵심은 365일 24시간 진료와 의사-환자의 거리감을 좁힌 서비스였다. ‘김안과, 영등포시장 로터리’라고 쓴 광고판을 인근과 수원, 안양의 전신주와 담벼락에 붙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반말 하고, 다리 꼬고 앉아서 이래러 저래라 했어요. 권위적이었죠. 그런데 미국은 100% 달랐어요. 의사가 환자에게 아주 친절하고 환자와 아주 가깝고 평등해요. 그걸 도입했죠.”

작은 의원에서 출발한 김안과는 빠르게 성장해 지금은 의사 50명, 직원 300명의 동양 최대의 안과전문병원이 됐다. 김안과의 성공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을 주었다. 1979년 논산의 한 사립학교가 부실해지자 고향 주민들이 그에게 운영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건양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이어 1991년에는 건양대를 설립하며 육영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건양대가 10년 연속 전국 최상위권 취업률을 유지하고 학부교육 선진화선도대학(ACE)으로 선정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과 재단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부담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 2000명 임직원의 4대보험료를 낸다고 설명할 때엔 “이렇게 어려운 걸 알았으면 안했지”라며 껄껄껄 웃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육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매년 2개 학년씩 전교생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단과대별로 모든 교수들을 만난다.

올해 4~6월엔 학부 4학년생과, 9월부터는 1학년과 단과대별로 만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그의 수첩엔 만남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걸 펴 보이며 설명하는 그의 눈동자엔 젊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주는 희열이 넘쳤다.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김 총장의 집무실 입구엔 ‘정직(正直, HONESTY)’이라는 말이 크게 쓰여져 있다. 그가 매일 마주하며 되새기는 말이다.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는 ‘기본에 충실하자’라고 답한다. 사람의 기본은 ‘정직’이며, 성공의 기본은 ‘노력’이고, 병원의 기본은 ‘치료’이며, 학교의 기본은 ‘교육’이라는 것. 그 기본이 지켜지면 학교나 병원은 물론 정치나 경제도 혼란이 없이 잘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는 이를 쉬지 않고 실천해왔고, 그것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그에게 위기나 시련, 번민의 시간 같은 것은 없었을까?

“위기요? 아주 많았죠. 병원을 지을 때는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가 터졌고, 대학을 지을 때는 분당 신도시 건설로 철근과 시멘트 파동이 나 혼났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비관하거나 낙심하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과 변변한 취미를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젊어서는 열심히 돈 버느라, 지금은 대학과 병원 경영 때문에 휴가를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재미 없지” 하고 껄껄껄 웃는다.

“일제 때(학창시절)는 미술이나 음악이 없었어요. 그래서 음치예요. 예술을 잘 몰라요. 지금 그걸 하려 해도 잘 안돼요. 허허.”

하지만 노신사의 얼굴에선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 길을 다시 걸어갈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삶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젊은이들도 자신감을 갖고 실천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항상 강조한다.

그는 지금도 대학과 병원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남은 과제가 있다. 후계 문제다. 아들이 대학 부총장과 병원의 행정원장을, 둘째딸이 김안과병원 원장을 맡고 있고, 이들에 대한 그의 믿음도 강하다. 하지만 “창업자가 (경영)하는 것과 2세가 하는 것은 전연 다르다”며 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굴지의 대기업이 2세로 넘어가면서 위기에 빠진 사례를 들면서 “누가 알겠습니까. 장담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뭇 사람들에게 ‘개안의 기쁨’을 나누어준 그의 삶의 정점에도 고민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까지의 성취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도 강하다. “나 스스로 내가 살아온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게 성공적인 삶 아닐까요?” 그 말속에 기쁨과 행복이 있었다. 김 총장과의 대화는 인자한 할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는 기쁨이자 힐링이었으며, 힘과 용기를 주는 시간이었다.

이해준 선임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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