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학도병의 한국전쟁 증언 "전쟁 잊지 말아야"

하지만 전장의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은 학도병에게 한국전쟁의 참상은 절대 잊지 못할 상처로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7월 8일. 17살의 어린 나이에 김창중(80, 청주시 내수읍)씨가 죽음 앞에 선 날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경북 대구까지 피난을 떠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김 씨는 학도병에 자원 입대했다. 학생복을 입은 채로 총 한자루를 손에 쥐고 일주일 교육 뒤 투입된 첫 전쟁터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김 씨는 "첫 전투부터 40일 동안 공방전이 벌어져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며 "어린 나이에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생살이 뜯겨 고통에 몸부림치는 전우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도, 인민군과 마주쳐 생사의 기로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것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상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함께 전장에 투입됐던 학도병 73명 가운데 7개월 뒤 살아남은 것은 고작 25명 뿐이었다. 그러나 군번도 없던 이들은 전장의 기록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김 씨는 "동료 8명이서 수색에 나갔다가 오두막 안에 있는 인민군 대좌를 발견한 뒤 이틀을 싸워 굴복시켰다"며 "하지만 모든 공은 우리가 아닌 중사에게 돌아갔다"고 한탄했다.
게다가 김 씨는 군복무 경력조차 인정받지 못해 해병대에 다시 입대해야만 했다.
6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러 김 씨조차 당시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지만 김 씨는 여전히 잊혀진 존재다.
김 씨는 "전쟁 이후 우리는 헌신짝처럼 내버려 졌지만 6.25라는 말조차 사회로부터 냉대받는 지금의 세태가 더욱 가슴 아프다"며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비극의 역사는 참전용사들이 그 기억을 잊기 전에 우리가 이들을 하루 빨리 잊지 않고 찾아야 할 이유다.
[청주CBS 박현호.장나래 기자] ckatnf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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