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로 '베를린 장벽 붕괴' 이끈 샤보프스키 사망

구정은 기자 2015. 11. 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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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음… 결정했습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모든 시민이… 국경의 어디를 통해서든 떠날 수 있게 허용하기로.”

1989년 11월9일 저녁, 동독 공산당의 공보담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날 결정된 여행법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행 자유화 조치가 실시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더듬거리며 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음, 지금…, 지금 당장입니다.”

1971년부터 철권통치를 해온 에리히 호네커 정권은 이미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동·서독 간 이동을 허용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다. 하지만 38년 동안 두 지역, 아니 ‘두 세계’를 갈라온 장벽이 일순간에 무너질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날 밤을 역사적인 순간으로 만든 것은 샤보프스키의 기자회견이었다. 동독 정권은 이튿날 오전 4시 장벽을 열고 상황을 통제할 계획이었으나 샤보프스키가 ‘실수로’ 발표해버린 것이었다.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를 하던 서독을 비롯한 각국 언론들은 일제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동독 사람들은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병사들은 총을 내려놨고, 밤새 사람들은 장벽을 넘었다. 검문소 문은 활짝 열렸으며 곳곳에서 시민들이 샴페인을 터뜨렸다.

샤보프스키는 독일 통일의 ‘우연히 탄생한 영웅’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동독 공산당에서 축출됐으며 서독으로 탈출하는 시민들을 사살하도록 명령한 죄로 기소돼 복역하기도 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가 1일 베를린의 요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고 dpa통신 등은 보도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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