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건축

김석 2015. 12.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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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주명덕 ‘해인사 전경’ (우) 영남기행화첩 (해인사)

왼쪽은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선구자로 꼽히는 주명덕 작가의 해인사 전경 사진이고, 오른쪽은 18세기에 김윤겸이라는 화가가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영남기행화첩’에 수록된 해인사의 모습입니다. 주명덕 작가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한국 사진계의 거목이죠. 인물사진부터 풍경 사진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지만, 특히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흑백사진들은 더없이 그윽한 멋과 정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주명덕 작가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 60년 가까이 사라져 가는 우리 옛것들을 사진에 담는 일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주로 현대적인 전시, 특히 패션 분야에 특화된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2011년 8월에 주명덕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는데요. 전시장에 내걸린 흑백사진들, 그 속에서 말없이 미소 짓는 우리 옛 건축물이 주는 한없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주명덕 작가는 이런 말을 했지요. “과연 우리 부모들이 살던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 남아 있는 모습을 내가 보여줘야 하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사진이 없던 시절에는 그림이 그 시대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현대 사진과 옛 그림은 각기 해인사의 그때 그 시절 모습을 머금은 그릇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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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해인사라는 절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라도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입니다. 물론 가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 해인사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전시회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사실 미술관 실내에서 우리 전통건축을 전시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그 큰 건물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올 수도 없는 일인 데다, 만약 한다고 해도 도대체 뭘 어떻게 보여줘야 직접 가보지 않고도 가본 것 같은 감흥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고민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혹시 한국의 전통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가보셨거나 그런 전시회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지방의 박물관에서 예전에 아주 작은 규모로 전시회를 연 적은 있었답니다. 하지만 전통건축을 주제로 어엿한 공간에서 마련된 본격적인 전시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고 하네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래서 삼성미술관 리움이 한국 전통건축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궁금했습니다.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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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우 ‘정전’

사진작가 배병우의 종묘 정전 사진입니다. 참 아름답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종묘 정전이 주는 장엄한 멋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더구나 배병우의 사진이죠. 아시다시피 배병우 작가는 소나무 사진으로 워낙에 유명해진 분이지만, 종묘와 창덕궁 사진집을 냈을 정도로 우리 전통건축 사진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오래전 어느 뉴스에서 배병우 작가가 새벽에 소나무 숲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 배병우 작가의 종묘 사진집을 1998년에 삼성문화재단에서 펴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군요. 그런 작업이 밑바탕이 됐겠지만, 배병우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1년 동안 추가로 종묘와 창덕궁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합니다.

배병우 작가를 비롯한 전통건축 전문가 세 분과 사진작가 여섯 분이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데 참여해 우리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열 곳을 선정하고 사진에 담는 작업을 같이 진행했습니다. 불국사, 통도사, 해인사, 선암사, 창덕궁, 종묘, 수원화성, 도산서원, 양동마을, 소쇄원입니다.

단순히 평면적으로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의 입지와 구조, 미학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습니다. 해인사의 경우는 3차원 스캔 영상이 해인사의 구석구석을 직접 답사하듯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해인사와 불국사의 각 건물이 어떻게 배치됐는지는 축소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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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숙천제아도 (우)금동대탑

어떤 전시회든 그 전시를 대표하는 간판급 유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국보로 지정돼 있어 쉽사리 볼 수 없는 귀한 유물도 있고, 해외에서 어렵사리 모셔온 우리 문화재는 국내에서 볼 기회가 워낙 드물어서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죠. 이번 전시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유물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1880년에 제작된 ‘숙천제아도’입니다. 한필교라는 분이 당시 중앙 관청과 각 지방 관아를 종이에 채색화로 남긴 그림 모음집인데요. 당시 관아의 모습을 이렇게 그림으로 남긴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대단히 가치가 큰 유물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귀중한 문화재가 이번에 처음 국내에 들어와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이 밖에도 국보 213호로 지정된 고려시대 금동대탑과 부산 동아대의 석당박물관 소장품인 국보 제249호 ‘동궐도’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묶어서 동궐(東闕)이라 했는데, 19세기 초반의 동궐을 그린 것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가로 5m 78㎝, 세로 2m 74㎝에 이르는 보기 드문 대작이지요. 같은 내용의 그림이 고려대박물관에 한 점, 부산 동아대에 한 점 남아 있습니다. 이 지도를 펼쳐놓고 지금의 창덕궁, 창경궁과 비교해보면 참 다릅니다. 빼곡했던 건물들도 상당히 많이 사라졌죠. 전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얻은 쓰라린 상처들입니다.

▲ 박종우 ‘장엄한 고요’

하지만 제가 꼽는 이번 전시의 백미 중의 백미는 사진작가 박종우가 만든 5분짜리 종묘 영상입니다. 이 작품 하나만 제대로 봐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죠.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작은 영화관처럼 꾸며진 공간의 삼면 벽에 종묘와 종묘제례악 영상이 표출됩니다.

전시장 의자에 앉아 이 숭엄한 파노라마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종묘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간 듯 생생한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영상에서 뿜어 나오는 그 압도적인 위엄은 종묘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번 전시의 핵심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되 우리 전통건축의 미학을 원작의 감흥 그대로 전하자는 기획자의 의도가 분명하고도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박종우 작가가 붙인 ‘장엄한 고요’라는 제목이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밖에 전시의 마지막 여정에 이르면 우리 전통 한옥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첨당’이란 실제 크기의 집 모형이 나타납니다. 고건축 전문가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무첨당’이란 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시장에 재현해 놓았는데요. 이런저런 설명보다는 역시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고요한 명상의 공간에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 아름다운 우리 전통건축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마냥 설렐 수밖에 없습니다.

▲ 김봉렬 ‘한옥 구조의 재해석 – 유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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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제목: 한국건축예찬 – 땅의 깨달음
기간: 2016년 2월 6일까지
장소: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 청소년은 평일 무료 관람

김석기자 (stone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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