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1994학년도 첫 수능부터 6차교육과정 2004학년도까지..수능날 이모저모 上편

배문규 기자 2015. 11.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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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 학원가가 지금은 주로 ‘공시생’들의 유예공간이 됐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대학 입시 준비의 ‘메카’였습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재수학원이 북적이던 노량진의 풍경을 파고듭니다. 변두리 청춘의 삶을 담담히 그려낸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

“1999년 봄. 그때도 나는 노량진에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넜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멨던 빨간색 프로스펙스 가방을 바싹 끌어안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방 안에는 누가 절대 훔쳐갈 리 없는 학습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3월이니 뭔가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봄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뭔가 깨달아버리기에도 이른 나이였던 때. 나는 장기판 위에 한 마리 말(馬)처럼 대책 없고 수줍었다. 열차 안으로는 도심의 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한강 철교와 올림픽대로, 크고 작은 빌딩들이 지나갔다. 스무 살의 나는 ‘이야 다리는 정말 다리가 많네?’하고 신기해했다. 오후 2시. 머리 위로 고요하고 오래된 태양계의 질서가 자전(自轉)하고 있던 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바싹 조여들었던 나의 동공은 점점 크게 벌어져 하나의 상 앞에서 멈췄다. 한강 너머- 호젓하게 솟은 빌딩 한 채가 보였다. 온몸으로 푸른 하늘을 인 채 수백 장의 금빛 비늘을 얌전하게 펄럭이고 있던 그것.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63빌딩이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2일 실시됩니다. 우여곡절도 논란도 많았지만 20년 넘게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나름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수능은 십수년 간의 성과를 단 하루 만에 평가받습니다.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이 시험은 평범한 개인들의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4년부터 2015년까지 수험장 풍경을 사진으로 전해드립니다. 독자분들은 어느 시간과 공간에 계셨나요?

1994학년도 1차 수능(1993년 8월20일)

첫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진 1993년 8월20일 오전 고사장인 서울 중구 환일고에 뒤늦게 도착한 한 수험생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학교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하루 앞둔 1993년 8월19일 오후 서울 용산고 고사장에서 예비소집된 수험생들이 시험중 유의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20일 서울 강남구 구정중학교 교문 앞에서 수험생 어머니들이 합장을 한 채 자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학능력시험(수능)은 말 그대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며 쌓은 수학(修學)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1994년 수능이 도입됐던 목적은 학력고사 세대가 암기 위주였기 때문에 미래 인재 개발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었는데요. 수능은 이전과는 다르게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여러 정보를 해석해 답을 찾아내는 데 출제 목적을 뒀다는군요. 첫 수능이 치뤄진 1994년에는 수능을 1,2차로 나눠 치뤘습니다. 두 시험 중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1차 시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름에 치뤘는데요. 1차 시험에는 74만2668명이 지원해 71만6326명이 응시했습니다.

1994학년도 2차 수능(1993년 11월16일)

2차 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1993년 11월16일 서울경기상고의 한 교실에서 언어영역 듣기평가 도중 한 수험생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16일 밤 서울 종로2가의 한 전자오락실에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차 시험 평균은 98.3점, 2차 시험 평균은 89.0점으로 난이도 조절 실패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때문에 1995학년도부터는 연 1회 실시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두 차례 시험을 치르면 난이도 조절 어려움이 있지만 수험생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긴 하죠.

1995학년도 수능(1994년 11월23일)

수능시험 예비소집일인 1994년 11월22일 수험생들이 이화여고 운동장에서 수험표를 교부받은 뒤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기온이 떨어져 올해 역시 입시 추위를 실감케 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4년 11월23일 오후 서울경기상고에서 9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이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경기상고 교문 앞에 수험생들의 출신학교 재학생들이 아침 일찍부터 몰려와 고사장에 들어서는 선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5년에는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이 공통 출제됩니다. 수리·탐구 영역은 계열별 구분 출제됐구요. 문항당 배점도 다양화했습니다. 이 해 최고령 응시자는 만 71세 할아버지였다는데요 “못배운 것이 평생의 한이 돼 4년전부터 학원에 다녀 92년 국졸 검정고시, 93년 중·고졸 검정고시를 각각 거쳐” 수능시험을 봤다고 합니다.

1996학년도 수능(1995년 11월22일)

대입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1995년 11월21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수험생 어머니들이 촛불을 밝히고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5년 11월22일 서울 경기상고에서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들이 사설 입시기관에서 배포한 문제지와 답안지를 들고 자신이 쓴 답과 맞춰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2일 서울 이화여고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영어듣기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연소 수능 응시자는 13살 소년이었습니다. 컴퓨터광이라 정규수업 과정에 흥미를 두지 못했다는군요. 대구 도시가스폭발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영남중·고 교문앞에선 학부모들이 이른 아침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고 합니다.

1997학년도 수능시험(1996년 11월13일)

대학수학능력 시험일을 하루 앞둔 1996년 11월12일 밤 서울 성북구 도선사에서 수험생 학부모들이 촛불을 밝힌 채 자녀들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6년 11월13일 서울 배화여고에서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들이 교문 앞에서 문제지와 정답을 구해 맞춰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역대 최악의 ‘불수능’으로 꼽히는 시험입니다. 1994학년도부터 1996학년도까지 시행됐던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수능의존도가 크게 높아집니다. 총점도 400점으로 두 배로 늘어났구요. 문제로는 인문사회,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가 예시되고 시사적인 내용이 가미되면서 관심을 모읍니다. 이를테면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듀엣으로 불러 화제가 된 정지용의 ‘향수’가 언어영역 듣기평가에 등장하고, 당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를 반영해 호수 생태계 조사결과를 인용한 지문이 등장했다고 하네요.

1998학년도 수능(1997년 11월19일)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하루 전인 1997년 11월18일 올해도 예외없는 입시 한파 속에 서울 이화여고에 예비소집된 수험생들이 고사장 배치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시험당일인 19일도 계속 추울 것이라는 예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11월19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1998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한 여학생의 간절한 기도. 지난 3년간은 정말 힘들었다. 이제 고사장에 들어섰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을까. 아쉬움이 뇌리를 스치지만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제대로 쓰고 싶다. 그 다짐의 기도에 누군가 응답해 주리라.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일 오후 서울 경기상고에서 수능시험을 마치고 나온 수험생들이 시험에서 해방된 기쁨에 함성을 지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일 서울 경기상고에서 수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의 승용차 안에서 정답을 맞춰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년도 수능이 지나치게 어려웠다는 비판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됩니다. 하지만 만점자는 나오지 않았다네요. 1970년대생이 본 마지막 수능이기도 합니다. 외환위기 우려가 고조되던 19일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팀을 전격 경질합니다. 다음날 IMF와 협상을 벌이고 구제금융신청을 결정합니다.

1999학년도 수능(1998년 11월18일)

1999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을 하루 앞둔 1998년 11월17일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예비소집에서 목도리 등 두툼한 방한복장을 한 수험생들이 시험장 배치표를 든 채 유의사항을 듣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입 수능시험이 실시된 18일 서울 이화여고 고사장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기에 앞서 두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8일 서울 경복고 정문앞에서 오토바이 배송업체의 무료서비스로 가까스로 시험시작 직전에 도착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뒤어 들어가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6차 교육과정에 따라 치러진 최초의 수학능력시험입니다. 수리탐구II 영역에 선택과목 제도가 도입됩니다. 표준점수 제도도 시행됐습니다. “고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쉬운 수능 기조가 이어집니다. 수능 사상 최초의 만점자도 나옵니다. 한성과학고에 재학중이던 오승은씨입니다.

2000학년도 수능(1999년 11월17일)

수능시험이 실시된 1999년 11월17일 한 수험생 어머니가 고사장인 서울 풍문여고 교문 앞에서 딸이 시험을 잘 치르길 기원하던 중 시험이 시작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0학년도 대학 수능시험이 실시된 17일 서울 풍문여고에서 수험생이 시험을 마치고 나오자 한 학부모가 반갑게 맞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0학년도 수능 시험도 쉽게 출제됩니다. 변별력 논란도 이어지구요. 경기도 의정부에서 주경야독을 하던 22살 수험생이 고사장을 가다가 수험생수송차에 치여 숨진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네요. 대원외고 출신 박혜진씨가 역대 두 번째 수능 만점자가 됩니다. 수능 지원인원 89만6122명, 응시인원 86만8366명으로 수능 사상 가장 많았습니다.

2001학년도 수능(2000년 11월15일)

2000년 11월15일 서울시내 한 고사장에서 수험생이 시험을 앞두고 최선을 다짐하며 기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5일 서울 경복고 교문 앞에서 수험생들의 후배들이 선배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는 큰절을 올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5일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홀가분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고사장인 서울 풍문여고 교정을 한꺼번에 나서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1학년도 수능시험은 역대 최악의 ‘물수능’으로 꼽힙니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대표적인 수능시험으로 꼽히는데요. 만점자가 무려 66명이나 배출되었고, 380점 이상 고득점자도 전년도보다 5배 많은 3만5000여명에 달했습니다. 3~4개만 틀려야 하는 390점 이상 고득점자도 7941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특차전형에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제2외국어 영역이 처음으로 도입된 시험이기도 합니다.

2002학년도 수능(2001년 11월7일)

2001년 11월7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한 어머니가 교문에 기댄 채 자식이 수능시험을 치르고 있는 고사장을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능일인 7일 고사장인 서울 경기여고 교문에서 교사와 후배들이 합격을 기원하는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든 채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문제가 지난해보다 많이 어려워진 탓인지 지치고 침울한 표정으로 고사장인 서울 이화여고를 나서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듬해 ‘물수능’은 다시 ‘불수능’으로 반전됩니다. 고사장마다 당황해 울음을 터뜨리거나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했습니다. 이날 중도포기자는 2457명으로 전년도 1116명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실제 6차 교육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꼽혔던 언어와 수리영역의 경우 2001년 언어, 수리 1등급 컷이 원점수 기준 각각 116점(120점 만점), 75점(80점 만점)이었는데 2002년에는 98점, 61점으로 급락합니다. 특히나 ‘학력 저하’라는 오명을 쓴 ‘이해찬 세대’가 처음 치른 수능이어서 충격이 더 컸습니다. 당시 수능 성적 비관 자살이 61명에 달했다는 집계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죠.

2003학년도 수능(2002년 11월6일)

2002년 11월6일 아침 수능고사장인 서울 이화여고 교문 밖에서 응원나온 후배 학생들이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꿇어앉은 채 3학년 선배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기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2년 11월6일 서울 경복고 수능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한 문제라도 더 정확하게 풀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이화여고 3학년 학생들이 7일 교실에서 답안과 문제지를 맞춰보며 가채점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능 난이도는 전년보다 평이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균 점수는 오히려 3.6점 정도 떨어졌습니다. 불수능에 데인 수험생들이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요. 2000학년도, 2003학년도 수능에서는 원점수만 소수점까지 표기해 통보하고 대학에는 수험생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를 모두 반올림해 제공했다가 점수 역전 현상으로 소송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를테면 언어 영역은 1.8, 2, 2.2점 식으로 문제 배점이 주어졌는데 반올림을 해서 전체 과목 총점을 매기면 제공된 점수로는 같지만, 실제로는 탈락 학생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합격하는 경우가 발생한 겁니다. 당시 점수 정보공개 요구가 빗발쳤지만 교육부는 공개하지 않았죠.

2004학년도 수능(2003년 11월5일)

2004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열린 2003년 11월5일 서울국악예술고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여고에 선배들의 고득점을 기원하며 전통악기로 흥을 돋우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입수능시험이 치러진 5일 서울 개포고에서 한 수험생이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막판 시험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6일 서울 성덕여상에서 열린 대입수험생을 위한 뷰티 레슨에서 여학생이 메이크업 강사로부터 화장법을 배우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마다 수능을 둘러싼 ‘말말말’이 많습니다만, 이 해 수능은 유독 논란이 풍성했습니다. 우선 6차교육과정 마지막 수능이여서 수험생들의 부담이 컸는데요. 이전 수능을 망친 재수생, n수생들이 몰리면서 현역들이 굉장한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국 본격적인 ‘고교 4년 시대’가 열립니다. 또한 수능 사상 처음으로 복수정답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수능시험 출제자 명단이 사전 유출돼 신뢰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구요.

교육과정평가원은 ③미궁의 문을 정답으로 제시했지만, ⑤실이 답이라는 이의가 제기됐다. 결국 평가원은 시험을 치른 지 19일 만에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정답을 맞춘 수험생 460명이 평가원장을 상대로 복수정답인정취소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흔히 2002학년도 수능을 치른 1983년생을 이해찬 1세대, 1984년생을 이해찬 2세대, 1985년생을 이해찬 라스트세대라고들 했는데요. 당시 수능 난이도 등락과 교육과정 변화를 두고 분노와 원망의 목소리가 컸죠. 2005학년도부터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수능이 치러집니다.

강추위로 살얼음이 낀 한강철교 아래로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 김영민기자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 아영은 서울의 한 사립대에 특차로 합격합니다. 아영은 7년 뒤에는 번번히 낙방하는 취준생이 됩니다. 그리고 재수생때처럼 노량진을 다시 ‘지나가면서’ 상념에 잠깁니다.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이 정말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년이 지난 2005년 지금도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걸까. 짧은 정차 후,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한 여자가 내 밟을 밟으며 소리쳤다. ”밀지 마요!“ 우주 먼 곳 아직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항성 하나가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영아, 내 손 잡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열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따져보았다. 벌써 집 근처에 가까워져 있었다. 차고 깊은 가을 밤. 지하철은 여전히 그리고 묵묵히 -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기도 하죠. 하편에서 2005학년도부터 올해 수능까지 정리뉴스가 이어집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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