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미아리 텍사스촌'의 기억과 흔적들..'알로호모라, 아파레시움'

배문규 기자 2015. 10. 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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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1968년 사창가의 대명사였던 ‘종삼(종로 3가 사창가)’ 소탕 작전이 실시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은 미아시장 근처인 월곡동 일대에 터를 잡았다. 2003년에는 본격적인 ‘뉴타운 사업’이 시작됐다. 이듬해 ‘9·23 사태’라 부르는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많은 여성들이 이 곳을 떠났고, 현재도 남은 업소들이 골목에서 간간이 영업을 하고 있다.

서울 하월곡동 옛 집창촌 가옥에서 열리고 있는 ‘미아리, 더 텍사스 전’의 모습. | 이준헌 기자
서울 하월곡동 옛 집창촌 가옥에서 열리고 있는 ‘미아리, 더 텍사스 전’의 모습. | 이준헌 기자

미아리 텍사스촌에는 1970년대 중반 건축된 ‘더텍사스프로젝트’라는 건물이 있다. 한때 성매매업소로 쓰였지만 이제는 작가들의 전시 공간이 된 폐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에 이르는 공간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작은 방들. 사람 없는 이 방들은 동네 고양이들의 아지트가 되어있었고, 고양이 배설물, 곰팡이 냄새 그리고 한기와 음산함으로 채워져있었다.

이 곳은 과거 어떤 공간이었을까. 전시 기획자 김현주씨는 “위험을 무릅 쓰고 몸만 팔기 위한 공간이 아닌, 어떤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몸을 보호해주고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기도 했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 그녀들에게 바깥 세상이란 이 좁은 성매매업소보다 더욱 살얼음판 같은 위험한 곳”이지만 “업소일은 최소한 어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경우 포주나 기둥서방이 손님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안위해주기도 하며, 험난한 몸 관계 이후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파렴치들로부터 방패막이 역할을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보험을 든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집단 안에도 여러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비슷한 작업은 있어도 똑같지 않은 것처럼 그녀들도 성매매업소에서 일하게 된 경위나 그녀들 각자가 자신의 직종에 대한 생각들은 모두 같지 않다”고 봤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집단화하여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매우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현재나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뚜렷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현재 공존하는 이웃의 일상과 삶을 옆에서 관측하고 보듬어 공생하고자 하는 바람”이라며 “성매매 업소들과 작고 오래된 가옥들이 즐비한 골목에 납작 껴있는 이 공간에 ‘예술’이라는 텅 빈 우주가 초대되어 소박한 우정을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다. ‘Aparecium, Alohomora! 미아리 더 텍사스!’

*Aparecium(아파레시움) : 투명인 물체를 형태가 보이게 하는 주문. *Alohomora(알로호모라) : 잠긴 문을 열거나 자물쇠를 푸는 주문.

노동으로서의 성매매

‘언니모자’가 20일 서울 하월곡동 옛 집창촌 가옥에서 성매매 퍼포먼스 ‘분홍 노동’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자에 대해 쉽게 낙인을 찍는 반면, 성 매수자와 성노동 중개업자 등 성매매에 관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성매매가 성립하도록 하는 체계적 과정에 대해서는 묵인한다. 언니모자는 성매매 환경 설치와 성매매 퍼포먼스를 통해 성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대상화의 방향을 바꾸어 보고자 한다. 즉 성노동자의 입장을 고려한 성매매 공간이 설치되고, 성매수 자격을 심사하는 등의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성매매공간은 다양한 체위를 소화할 수 있도록 푹신한 벽과 바닥을 갖고 있으며, 벽에는 가능/불가능한 체위가 시각적 도식으로 제시된다.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여성주의 상담번호와 화재시 필요한 방독면과 소화기 등도 준비된다. 이러한 환경을 통해 노동으로서의 성매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다.”

언니모자, ‘분홍 노동’(이미지), 가변설치, 퍼포먼스, 2015. | 더 텍사스프로젝트

“성매매 퍼포먼스에서, 성 매수자는 도검 및 총기류 휴대유무를 체크받고, 성병 등 위생 관련 점검을 받고, 인권 선서를 암송한다.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관객은 성노동자가 아닌, 성 매수자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성매수 심사의 점검자는 언니모자 구성원으로 여성 성매매 중개업자이다. 성매매 노동자가 나이 혹은 체력적인 문제로 성노동을 그만둔 후, 이들은 흔히 성매매 업소의 호객꾼이나 성매매 중개업자로 일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 고리에서도 하나의 상상을 감히 떠올려 본다. ‘여성주의적 성매매’는 가능할 것인가?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고 하루의 노동에 대해 대화하며, 착취하지 않으면서 이윤을 남기며 영업을 하는 중개업자의 상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존재가 만나는 공간의 크기

정원연, ‘백육십에 이백’, 160 x 200㎝, 설치, 실,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남자가 총각 딱지를 떼러 왔든, 연모하던 여성에게 고백했으나 거절 당하고 아픈 마음을 위로 받고자 왔든, 성욕을 풀려고 왔든, 술김에 2차로 왔든, 여자가 집구석에 있을 수가 없어서 집을 나와 살기 위해 결국은 이곳에 흘러 들었든, 두 사람은 이 방에서 살을 섞었는데, 방이 너무나 좁다. 살로 만나고 돈으로 마무리 되는 관계. 성이 개입된 모든 인간관계의 수순이다. …… 두 존재가 만나도 자기보호와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기 틀 안에서 맴맴 돌다 돈을 운운하고 헤어지고 마는 관계의 크기는 실로 이만 하다.”

수많은 감정의 흔적들

홍유경, ‘덩어리’, 세라믹, 네온조명, 가변설치,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지금은 휑하게 비어버린 이 집에서 쏟아져 나왔을, 그리고 토해내고 싶었으나 토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의 흔적들을 더듬어 짚어보려 한다. 이곳에 거주하고, 드나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배출하였던 수많은 감정들은 아직 이곳의 많은 방들 구석구석 남아있고 도는 어딘가에 응고되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형체를 알 수도 없고, 어림짐작하여 상상하는 감정들이지만, 그 감정들을 어루만지듯 하나하나의 조각들을 이 낡고 오래된 공간에 설치하려 한다.”

걸레질

김도희, ‘걸레질’, 단채널 비디오, sound, color,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작가는 오래 전 화재로 전소된 후 10년 이상 방치된 성매매 업소에 들어가 여러 작업을 했다. 이것은 그들 중 하나로 집창촌 주변과 업소에서 걸레를 얻은 후 홍등을 연상시키는 조명과 헤드랜턴 아래에서 잿더미를 치우고 구석구석 걸레로 닦아낸 것이다. ‘걸레로 타서 버려진 집창촌 건물 닦는 행위는 염殮없이 사회적으로 화장된 너의 주검을 지금에서야 염殮하는 과정이다. 두꺼운 재 아래에 함구된 너의 입술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모든 사자死者에 대한 제의가 그러하듯 너를 통해 나를 닦고 위로한다. 홍등은 이제 너의 육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붉게 비춘다. 그리고 저곳을 향하던 손가락을 이 곳으로 돌린다. 새카맣게 때가 묻고 너덜너덜한 걸레는 아껴 둔 비단보다 아름답다. 수십, 수백번을 닦기 위해 다시 빨아 넝마가 된 걸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실재를 품은 세계이다.’ ”

악몽을 걷어내는 부적

권기예, ‘Dreams are my reality’, 구슬, 비닐, 빨대, 와이어, 채집한 끈, 61 x 11 x 111㎝, 2015 | 더텍사트프로젝트

“미아리 텍사스촌에 얽매여 있는 악몽을 걷어내어 줄 인디언의 부적인 ‘드림캐처’(Dream catcher)를 만들었습니다. 나쁜 꿈은 걸러주고 좋은 꿈만 구슬에 맺혀 깃털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는 이 부적은 만들어지는 중에도 효력을 발휘하였는데 최근 몇 년간 시달려온 작가의 악몽을 적당히 꾸어볼 만한 꿈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 부적이 악몽도 악몽같은 현실도 꿈같은 현실로 바꾸어 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모두 좋은 꿈꾸세요!”

내가 여기 있었다고

이재원, ‘Self-Portrait’, 다채널 영상 설치, 2014~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이재원, ‘Self-Portrait’, 다채널 영상 설치, 00:05:30, 2014~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연민이라는 감정은 이곳의 장소성에 앞서 지금도 앞으로도 잘 보이지 않을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으며, 또한 이런 구조를 만든 사회에 대한 것이기도,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이 공간에 짙게 드리운 ‘소외’라는 상태에 나는 어떠한 동질감을 받았다. ‘미아리텍사스’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가장 먼저 사라지고 지워질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곳을 지나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즉 개인들의 서사일 것이다.”

누군가 떠난 곳

손이숙, ‘수돗가’, 80 x 80㎝, C-print, 2014. | 더텍사스프로젝트

“언니의 고향, 고향은 언니가 떠난 곳이면서 동시에 언니가 남겨진 곳이다. 떠난 사람이 있다 해도 아직 그 곳에 남은 자가 있는 고향집 수돗가 한 쪽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매발톱꽃이 다소곳하게 피었다. 이 집으로 언젠가 한 사람이 올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 마당에는 꽃나무 대신 잡풀과 수목이 무성하다. 그 무성함을 충만함이라 말할 수는 없다. …… 하지만 끝내 부재의 공간이 되어 버렸어도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다면 남아있는 땅의 기억이 있다. 이곳으로 그 바깥 풍경을 가지고 온다.”

다른 장소

조광희,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미아리’, 종이 위에 펜,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정릉 청수장 계곡으로부터 내려온 계곡을 끼고 미아리텍사스와 나의 학교는 마주보고 있었다. 서라벌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2년차 겨울의 야간자율학습시간, 나와 친구는 선생님 몰래 교실을 빠져나와 비어져 컴컴한 학교를 탐험이라도 하듯이 이곳저곳을 배회하였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밤의 학교 풍경과 담장너머로 보이는 아랫마을의 반짝이는 불빛들, 겨울옷 속으로 송송 맺히던 땀과 입김을 내불며 놀았던 그 겨울. …… 땀을 식히며 창밖으로 내려 본 낮은 집들과 네온사인의 불빛은 개천 위로 아름답게 반사되어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 하였다. 학창시절의 어리고 아름다운 아련한 추억이다. 개천 위로 비춰진 그 곳의 풍경에는 아직도 나와 나의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아스팔트 속에 시간들이 묻혀가고, 사라져버린 개천과 학교로 미아리는 다른 장소가 되었다.”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이선애, ‘옆집’, 40 x 50㎝, C-print,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피와 살이 알알히 박혀 있는 듯한 방들을 뒤로 한 채 2층으로 달려갔다. 털썩 주저앉은 옥상 옆 빈집이 보였다. 무심코 내딛은 그 집은 곰팡이와 동물의 배설물, 잿더미의 악취가 뒤섞여 있는 불탄 집이다. 그 집에서 드세진 내 숨은 서서히 잦아졌다. …… 옆집엔 붙박이 집주인인 것 마냥 시멘트를 뚫은 듯 나무와 덩굴, 소소한 식물들이 있다. 더 텍사스의 볕 좋은 창과 옆집의 오동나무가 보이는 창을 틀로 삼아 살풍경인 미아리 텍사스에서 좀 더, 한번 더, 긴 호흡으로 앉아있고 싶다.”

보이지 않던 어떤 풍경

달로김현주, ‘넓이116높이174깊이201㎝’, 장지 위에 프로타쥬 퍼포먼스, 사운드인스톨레이션, 2015. | 더텍사스프로젝트

“넓이 116㎝, 높이 174㎝, 깊이 201㎝의 공간은 미아리 텍사스촌 성노동자가 얼마 전까지 일하며 지내던 방의 크기이다. 겨우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이 작은 방은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먹방이나 1인 공부방으로 설계된 스터디큐브 그리고 사람이 죽어 누워 들어가는 관의 모습과 닮았다. 이 네 공간의 크기와 모양, 설계된 구조는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듯 경제적이지만 거주하는 사람의 정체성이나 삶과는 무관하다.”

“1970년대 중반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더 텍사스’ 공간과 처음 대면했던 지난 겨울 시멘트가 머금은 음습한 곰팡이와 고양이 배설물에서 나오는 역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문을 열어 공간 안으로 들어가던 순간은 마치 타자의 몸 안에 내 몸이 들어가는 듯 하였고 몸이 공간에 맞닿아 숨을 쉬자 정체 모를 역한 기운들이 내 몸안으로 쑤욱 들어오는 듯 하엿다. 부정하는 몸의 격렬함과 뒤틀림, 폭력과 허기진 욕망의 일상이란 무엇일까? 비릿하고 냉기 어린 시멘트 벽들은 분명 사람의 몸이었다. 나는 ‘몸’이 품고 있는 한기와 곰팡이들, 공간의 신음소리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떠한 기운들을 만나고자 했다.”

“어떤 기운으로 가득 찬 오래된 벽의 표면과 나의 몸이 마찰하자 ‘소리’를 낸다. 사방의 시공간으로 튀어 나와 흩어지는 소리들은 마치 과거의 시간과 이름 모를 타자들에게 보내는 주문의 소리인 듯 하다. 마찰음이 반복되면서 종이 위에 보이지 않았던 어떤 풍경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진제공 : <알로호모라, 아파레시움! 미아리, 더 텍사스> 전시(2015년 10월17일~10월30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290번지)

관련기사 : 우리 사회에 묻는다, 성노동자 보호하는 ‘여성주의적 성매매’는 불가능하냐고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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