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진의 애프터게임] 박정태 "유두열 선배, 오래 사셔야 됩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2015. 12. 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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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열 전 김해고 감독과 박정태 전 롯데 2군 감독. 박정태 제공
유두열 전 김해고 감독과 박정태 전 롯데 2군 감독. 박정태 제공
유두열 전 김해고 감독. 박정태 제공

이별의 아픔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지난 2011년 9월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이었던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과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떠났을 때 야구계 전체가 슬픔에 휩싸였다.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이 갑자기 닥쳤기 때문이다.

박정태 전 롯데 2군 감독도 슬픔에 빠졌던 야구인 중 한 명이었다. 다시는 야구계의 선배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두 달 전 박 전 감독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롯데의 원년 우승을 이끌었던 유두열 전 김해고 감독이 신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유 전 감독은 1984년 롯데의 초대 우승을 이끌었던 주인공이다. 당시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3-4로 뒤진 8회초 삼성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려 롯데에 우승을 안겼다.

화려했던 순간은 잠시였다. 세월이 흐르고 팬들에게 우승의 추억이 잊혀진 사이 유 전 감독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유 전 감독은 지난해 9월 병원에서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미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이후 유 전 감독은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경기 김포시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날 날만 기다렸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고통에 시달렸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소식을 접한 박 전 감독은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다. 또 다시 갑작스럽게 선배를 떠나보낸다면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더 큰 상처가 생길 것 같았다.

박 전 감독은 유 전 감독의 상태를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레인보우 희망재단’이 마련한 ‘유두열 전 감독 돕기 자선행사’를 기획했다. 박 전 감독은 삶의 의지를 잃은 유 전 감독에게 “선배님,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팬들도 많이 찾을 겁니다”라고 알렸다. 수화기 넘어 유 전 감독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행사는 지난 22일 부산에서 진행됐다. 유 전 감독은 직접 차를 끌고 경기도 김포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한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야구인과 팬들이 유 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SK 김용희 감독도 행사장을 방문해 많은 액수의 성금을 내놓고 갔다. 조성환 KBS N 해설위원도 참여했다. 조 위원은 “신인 때 2군에서 타격의 기본기를 가르쳐 주신 기억이 있다”고 떠올렸다.

유 전 감독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을 잊지 않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통증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유 전 감독은 “너무 고맙다. 지금부터 오래오래 살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세상을 떠날 날만 기다리던 유 전 감독이 삶의 의지를 다시 붙든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존심이 재산이다. 자존심이 없으면 승부욕도 없다. 자존심 하나로 경기를 치르고 업적을 쌓는다.

하지만 큰 병에 걸리고 난 뒤에는 자존심이 독이 된다. 왕년의 스타였던 이들은 자존심 때문에 세상과 단절한다. 야구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위풍당당했던 이들은 병마에 쓰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 병원비는 물론이고 식생활도 바뀌기에 일반인보다 많은 식비가 필요하다.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은 있으나 그만큼 경제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좌절하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힘들어하는 가족을 보는 본인이 더 고통스럽다. 때문에 큰 병에 걸리더라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던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 전 감독은 그런 선배들을 위해 투병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 박 전 감독은 “장효조, 최동원 선배들을 그렇게 보낸 것은 100% 후배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그들을 아는 모든 이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유 전 감독을 위한 모금 활동 등을 계속할 계획이다.

유 전 감독은 그날 행사를 계기로 다시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여러번 했다. 1년이든 2년이든 좀 더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 전 감독은 “최선을 다해 병을 이겨보겠다”라며 손을 다잡았다. 언제든지 부산으로 내려와 박 전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유소년 야구 교실에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 전 감독의 휴대폰 모바일 메신저에는 ‘때로는 살아있는 것 조차 용기가 될 때가 있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더이상 야구계의 별들을 그냥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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