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사건 유일한 생존자, 그녀는 왜 21년 만에 입을 열었을까
[인터뷰] 한겨레 고나무 탐사기획팀장 "가해자와 사건 중심이 아니라 피해자의 마음의 재난에 집중"
1994년 9월8일 새벽 지존파로부터 납치당해 8일간 붙잡혀있다 탈출한 생존자 이정수씨(가명, 당시 27세). 이씨는 지존파 5명으로부터 성폭행 당했고, 다른 피해자의 시신훼손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21년 전 기자들은 그녀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숨었다. 21년 뒤, 고나무 한겨레 탐사기획팀장이 그녀를 만났다. 죽음과 생존의 경계에 있었던 정수씨의 실화를 흡입력 있는 심리묘사로 풀어낸 ‘지존파 생존자 증언’ 연재는 그렇게 탄생했다.
연재는 ▶1994년 9월8일 ▶지하 ▶탈출 ▶재판 ▶그날 이후 ▶치유 총 6편으로 구성돼 한겨레와 다음뉴스펀딩에 실렸다. 정수씨의 치료비로 쓰일 뉴스펀딩후원금은 600여만 원이 넘게 모였다. 이번 연재는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였다. 1995년, 이정수씨가 사형집행을 앞둔 지존파 김현양을 면회하는 자리에서 ‘나를 일부러 풀어줬느냐’고 묻는 장면에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녀가 복기해낸 8일간의 지옥 같은 순간에 대한 감정도 문장 곳곳에 서려있었다.
10월29일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고나무 기자를 만났다. 고나무 기자는 기사에서 “범죄-수사-재판-이후의 삶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이씨의 마음의 재난을 담담히 옮기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차 문을 열고 이 땅만 밟으면’이라고 마음먹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어요.” 질문-답변의 인터뷰 형식 대신 가상 1인칭 서술로 구성해 납치피해자의 관점에서 본 지존파 사건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기술되던 기존 지존파 사건과는 달랐다. 프레임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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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9월12일자 1면. | ||
사람들이 흔히 기억하는 지존파사건은 ‘토막살인’과 ‘인육’이다. 지존파는 중소기업 사장 부부의 사체를 훼손하는 과정에서 살점을 살짝 도려내 씹었는데 먹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인육사건이라 명명하긴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21년 전 저널리즘은 ‘경악’ 프레임으로 지존파의 극악무도함만을 강조했다. 2015년 이정수씨의 눈으로 본 지존파는 복합적이다.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는 이도 있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스토리펀딩 ‘지존파 납치 생존자의 증언’ 바로가기>
고나무 기자는 이번 연재를 “구술사와 인터뷰의 중간정도”로 소개했다. 기사는 정수씨가 겪은 참혹함에 비해 정제된 단어를 구사하고 있다. 연재 과정에서 가필은 없었다. 장면 묘사는 정수씨 표현을 그대로 따랐다고 했다. 고 기자는 정수씨 요청에 따라 완성된 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기사의 화제성보다 우선했다.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고 기자는 “1차로 기사를 보내면 정수씨가 토씨하나까지 다 봤다”고 전했다.
고 기자는 “이번 연재는 심리묘사 중심이었다. 살리고 싶은 묘사도 있었지만 덜어냈다. 사체 훼손 과정도 더 담고 싶었지만 덜어냈다”고 전했다. 고 기자는 “그분의 프라이버시 중에 더 공개하면 더 많은 독자들이 볼 만한 팩트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었다. 애초에 콘셉트가 피해자의 심리였다”며 “이번 연재의 새로운 앵글은 심리였다”고 전했다. ‘충격’, ‘경악’ 같은 단어로 피해를 강조하려 덧칠하는 일련의 보도태도와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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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나무 한겨레 기자. ⓒ이치열 기자 | ||
고 기자는 2003년 한겨레에 입사해 지난 7월 탐사기획팀장을 맡았다. 그는 언론계에서 논픽션(사실을 바탕으로 쓴 산문) 글쓰기로 유명하다. 본인도 자신의 직업을 ‘기자와 논픽션 작가’로 소개한다. 문제적 인물 김종필과 전두환의 안티평전 격인 '휴먼스케일'과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등을 썼다. 블로그 ‘픽션이 아니다’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도 ‘기자 고나무’ 특유의 서술기법이 묻어났다는 평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역사’와 ‘범죄’에 꽂혀있었다. 범죄를 피해자의 시선으로 다루는데 관심이 있었다. 사회면 단신으로 보도하는 범죄기사를 벗어나고 싶은 문제의식이 있던 차에 지존파를 검거했던 고병천 전 반장을 알게 됐고, 운 좋게 정수씨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정수씨는 왜 21년 만에 취재에 응했을까. 고나무 기자의 답은 싱거웠다. “저 말고도 (다른 기자도) 그 시험을 통과했을 텐데 운 좋게 신뢰를 준 것 같다.”
고 기자가 만난 정수씨는 짐작했던 것보다 고통과 아픔이 컸다. 두 번의 만남과 짧지 않은 소통을 통해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 계획은 한 번 엎어지기도 했다. 과거, 영화감독이 그녀를 접촉해온 적이 있었다. 정수씨에겐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왜 안 좋았냐고 물었더니, 나를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존파 사건 이후 5년까지는 기자들이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기사거리가 되니까. 그 뒤로는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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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11월3일자 경향신문 기사. | ||
두 사람은 사건 이후 21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인 공익성에 대해 고민하고 합의했다. 고 기자는 “엽기로 가선 안 된다고 했다. 상처를 팔아먹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들은 사건의 가해자가 벌을 받으면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은 영화처럼 단순하지 않다. 정수씨는 사건 이후 공황장애를 겪으며 삶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를 위해 공권력은, 사회제도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는 그녀에 대한 오해도 푸는 계기였다. 1995년 당시 정수씨가 지존파 김현양의 면회를 간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논란으로 비춰졌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언론은 그녀를 두고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정수씨는 21년 만에 당시 면회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설명했다. 고 기자는 “(정수씨가 김현양에게) 미안함을 느낀 거다. 그 미안함조차 범죄의 트라우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정수씨에게) 납치한 것부터 죄인데 살려준 걸 고마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녀는) 어쨌건 미안함을 느꼈다고 했고, 미안함조차도 돌이켜보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했다. (연재를 통해) 오해들이 많이 풀린 것 같다”고 했다.
고 기자의 이번 시도는 업계에서 새로운 기사쓰기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고 기자는 “1인칭 자체가 혁신은 아니다. 기자가 1인칭으로 쓰는 거 자체를 대단한 문체실험으로 보는 것 자체가 편집국이 글쓰기에 무지하고 관심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지존파 인터뷰는 (단신보도보다) 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잊혀질 것이다. 기사는 잊혀진다. 그게 데일리 저널리즘이다. 그래서 (기사 대신) 책을 쓰는 것이다. 지존파 이슈도 책을 쓸 것이다. 책은 더 오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블로그에 담겨있는 '뉴 저널리즘'(톰 울프 피카도르, 1975)의 한 대목을 옮긴다. 이번 ‘지존파 생존자 증언’ 연재를 이해하는데 유의미해서다.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으로 옮겨가려는 사람은 장면이 기본적 취재단위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리포터로서 당신의 중요한 과제는 당신이 취재하고자하는 장면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취재원 옆에 머무를 수 있느냐다. 다른 취재 비결이나 장인의 취재 비법 같은 것은 없다. 이건 순전히 기자의 품성에 대한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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