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의 지배자 마이클 조던③] 떠났다 돌아와도 황제는 황제
<창공의 지배자 마이클 조던② 하늘을 나는 사람을 보았다>에서 이어집니다. 1편과 2편은 페이지 하단 관련기사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이면과 은퇴
1993년 10월, 마이클 조던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정황을 볼 때 그를 은퇴로 밀어붙인 계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인기와 모티베이션의 부조화였다. 그는 당시 하루에 10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은 대게 "저에게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라는 식이었다고 하며 조던은 자신의 유명세와 그것에 기생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게 지쳐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룰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판단이 그의 에너지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집필하던 작가 밥 그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알콜 중독자가 되어 모든 것을 잃는 꿈을 꿉니다. 그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죠."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그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도박문제로 인한 미디어의 공격이었다. 92-93시즌의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던 중 조던의 카지노 방문이 대서특필 되었는데, 카지노에서 큰 액수를 걸고 도박했다는 것과 또 골프 내기로 백만 달러 이상을 잃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조던의 대중적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이 발생했다. 자신의 도박은 위험하지 않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조던의 반대편과 일부 팬들은 여론을 통해 융단폭격을 가했다.
그리고 결정타는 역시 아버지의 비극적인 최후였다. 조던의 부친은 엔지니어로, 공장에서 기계 장비를 검수하는 일을 하면서 가정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녀들에게 충분한 여유와 기회를 주었고 조던도 그런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조던의 부친은 아들의 중요한 경기에 항상 나타났으며 대학에서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아들의 가장 확실한 우군이었다. 조던 특유의 '혀 내밀기'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한다. 그런 아버지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자 조던의 상심은 무척 컸다.
MLB로 뜻밖의 여정
6세 때 야구로 운동을 시작한 조던은 아버지와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찾아 다시 한 번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94년 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조던은 이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간에 경기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개인연습을 하는 게 좋았어요. 제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죠."
조던을 지도했던 타격코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나중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붙들고 뭔가를 배우려 했어요.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것을 집요하게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게 '이제 감 잡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가르쳐 주세요.', '이번에는 진짜 될 것 같아요'라는 세 마디를 지겹도록 반복했습니다. 정말 끈질겼죠"
나이키는 그의 이런 모습을 광고에 써먹었다(*스파이크 리, 스탠 '더 맨' 뮤지얼, 윌리 메이스, 캔 그리피 주니어 출연 광고).
리: 아무래도 그는 스탠 뮤지얼 만큼은 안 될것 같아요.
뮤지얼: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리: 아무래도 그는 윌리 메이스처럼은 못될 것 같아요.
메이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리: 아무래도 그는 캔 그리피 주니어처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피 주니어: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조던은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 첫 해 .202의 타율과 3홈런, 51타점 30도루를 기록했다. 94년 아리조나 가을리그에서는 .251의 타율을 마크했다. 그리고 94-95 NBA 시즌의 말미에 단 세 단어로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I'm Back

그리고 당시의 한 뉴스에서는 대담 중 다음의 언급이 나왔다. "단 한명이 '내가 돌아왔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전 세계가 불타오르고 있네요.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조던이 떠난 93-94 시즌에서 불스는 55승 27패를 기록했다. 피펜은 본인 커리어 최고의 득점(경기당 22포인트)과 리바운드(경기당 8.7개)를 기록하며 고군분투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에 패하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94-95시즌의 3월, 조던이 컴백하기 전까지 불스는 반타작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 중이었다. 인디아나 페이서스를 상대로 했던 조던의 컴백전에서는 닐슨 리서치 조사결과 1975년 이후 NBA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던의 득점은 19점에 불과했다. 컴백 2차전에서 27점을 넣었지만, 세 번째 경기에서 다시 21점으로 내려갔고 네 번째 경기에서 30점 고지를 넘겼다. 다섯 번째 경기에서 무려 55점을 넣으며 예전의 명성에 걸맞은 플레이를 했지만 이후 12경기에서 그가 30득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는 2회에 불과했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득점능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17경기 평균 26.9득점). 그를 상대해본 선수들은 '45번의 조던은 23번의 그보다 못하다'라는 견해를 내놓기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의 컴백 이후 불스의 성적은 13승 4패로 개선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조던의 고향팀 샬럿 호넷츠를 스윕한 불스는 올란도 매직과 컨퍼런스 준결승을 가졌다. 두 명의 슈퍼 신인 오닐과 하더웨이가 이끄는 젊은 매직은 시리즈 스코어 4:2로 불스를 누르고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이 시리즈의 하더웨이는 조던을 능가하는 선수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샤킬 오닐의 공룡 플레이에 의해 불스의 인사이드는 초토화 되었다. 시키고를 꺾고 올라간 올란도는 페이서스를 누르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케츠에 4전 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조던의 시대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었다.
95-96 시즌, 불스는 조던의 오랜 친구인 BJ 암스트롱을 보냈다. 그리고 NBA에서 가장 괴이한 선수 중 한명인 데니스 로드맨을 영입했다. 슈팅가드로 뛰던 론 하퍼가 포인트 가드를 맡았고 호주 출신의 빅맨 룩 롱리가 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청각 장애를 가진 포인트가드와 리바운드는 강하지만 슈팅이 형편없는 파워 포워드, 그리고 변방 출신의 어리숙해 보이는 백인 센터라는 조합은 대단히 언밸런스해 보였는데, 과연 조던의 실력이 회복되고 피펜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들 과연 그들이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모든 선수의 개성이 너무 강해 하나의 팀으로 융화되는 것이 절대 쉬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조던 걱정이었다는 사실이 곧 밝혀진다. 시즌 전에는 걱정거리로 보였던 특징은 조던의 지휘 아래에서 강력한 매력 포인트로 재해석 되었다. 롱리의 강력한 포스트와 로드맨의 신들린 리바운드는 삼각편대를 지키는 인사이드의 수호 부적이 되었고, 들리지 않아도 경기장을 넓게 보는 하퍼는 의외로 훌륭한 배급 전문 포인트가드였다. 그리고 조던과 피펜의 콤비 플레이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거기에 '크로아티안 센세이션' 토니 쿠코치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불스는 무려 72승 10패라는 NBA 최고 승률 신기록을 작성하며 시즌을 마쳤다. 조던은 시즌 MVP와 올스타 MVP를 전부 가져갔다.
▲ 조던의 95-96시즌 성적
30.4 포인트, 6.6 리바운드, 4.3 어시스트, 2.2 스틸, 0.5 블록
플레이오프의 1라운드에서 불스는 마이애미를 스윕했고 2라운드에서는 뉴욕 닉스를 4:1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지난해 조던과 시카고에 치욕을 안겼던 올란도 매직과 재회했다. 젊은 하더웨이와 오닐은 1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나은 선수가 되어 있었다. 이 당시 NBA 게임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최고 능력치와 점수를 가진 선수들로 표현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카고 불스는 이방지대에서 나타난 몬스터 크루였다. 올란도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넉넉한 점수 차의 스윕패를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NBA 파이널에서 시카고는 레인맨 숀 캠프가 이끌던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대면했고 시리즈 전적 4:2로 레인맨을 울린 후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이 결정되던 날은 마침 파더스 데이였다. 조던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첫 우승이 물론 달콤하셨겠죠. 그러나 이번 우승은 도대체 얼마나 더 달달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습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파더스 데이에 이렇게... 아버지께서 보고 계셨을 거예요. 이 승리를 아버지께 바칩니다."
조던은 챔피언시리즈에서도 MVP를 석권했다. 네 번째 시리즈 MVP로 매직 존슨을 뛰어넘었으며, 해당 시즌 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은퇴 후 1년 6개월 만에 복귀하고 다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는 미션 임파서블을 성공시킨 조던에게 세계는 전보다 더 큰 열광과 지지를 보냈다.
시카고 불스 제 2왕조
96-97 시즌 불스는 다시 한 번 69승 13패라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조던은 경기당 평균 29.6 득점과 5.9 리바운드, 4.3 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유타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에 밀려 MVP의 수상에 실패했다(*말론의 성적: 27.4 득점, 9.9 리바운드, 4.5 어시스트). 그리고 농구의 신은 버릇처럼 파이널 무대를 위해 조던과 말론의 승부를 기획했다.
1차전에서 조던은 버저비터를 터뜨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2차전도 불스의 승리였다. 하지만 재즈의 홈에서 벌어진 3, 4차전에서 불스가 내리 패하면서 시리즈 전적은 2:2로 동률이 되었다. 그리고 5차전을 앞두고 조던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조던은 그러나 출장을 강행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리더로서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슛을 할 수 있다면 경기에 나서야 했습니다. 전 언제나 그랬어요. 아픈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경기의 종반부, 동점 상황에서 피펜의 패스를 받은 조던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냈다. 그의 3점 슛이 바스켓을 통과했고 그것이 5차전의 결승점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조던은 피펜에게 안겨 경기장을 떠났다.
이 승리로 시카고는 기세를 올리더니 결국 6차전에서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었다. 조던의 다섯 번째 우승이었으며 그는 이번에도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97-98 시즌, 조던은 28.7의 평균득점을 마크했다. 리바운드는 5.8, 어시스트는 3.5였다. 그렇지만 3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 경기에 출장해 최선을 다한 그에게 NBA는 다시 한 번 MVP를 수여했다. 통산 다섯 번째였다. NBA 올타임 탑 50에 선발되었고 베스트 디펜시브 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스타전에서도 MVP는 그의 것이었다. 시카고는 62승 20패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조던은 시즌 막판 상태가 좋지 못했다. 잭슨은 당시 조던의 컨디션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시즌의 마지막 6경기를 모두 원정으로 치렀습니다, 그의 허리 아래쪽에 경련이 일어났어요.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를 들어서 옮겨야 했습니다. 버스에서 비행기로, 비행기에서 버스로, 버스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다시 버스로요."
1라운드 상대는 뉴저지 네츠였다. 시카고는 3:0으로 네츠를 돌려세운 후 샬럿 호네츠를 상대했다. 호넷츠도 4:1로 조용히 물러섰다. 하지만 동부 컨퍼런스의 결승전에서 대면한 인디아나 페이서스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터프한 인사이드 플레이와 레지 밀러로 통하는 강력한 외곽포는 마치 불스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처럼 보였다.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불스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손실이 막대했다. 비교적 손쉽게 서부를 정벌한 유타 재즈는 이미 10여일간 충분한 휴식을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던과 불스의 피로상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고 그 걱정은 그대로 도박판의 배당률로 이어졌다. 시카고의 배당률은 유타에 비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이 조던의 내면에 남은 마지막 연료탱크에 불을 붙였다.
1차전은 연장 접전 끝에 유타가 가져갔다. 하지만 2~4차전을 전부 시카고가 쓸어 담았다. 아직도 시카고가 언더독이라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던은 "아니요. 우리가 우세합니다. 이제 끝장을 봐야죠"라고 대답했다. 5차전에 앞서 시카고의 홈 유나이티드 센터는 벌써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칼 말론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5차전에서 그는 39득점과 11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카고를 분쇄하고 6차전을 자신의 홈으로 끌고 갔다. 조던의 마지막 시카고 홈경기는 패전으로 역사에 남았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벌어진 6차전, 이 경기는 미국에서 벌어진 모든 종목 파이널 시리즈 역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마크했다. 그리고 5차전의 후유증은 피펜의 악화된 등 부상으로 표면화 되었다. 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게 되자 시카고의 화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조던은 어떻게든 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교체 없이 거의 계속 뛰었고 팀 득점의 절반가량을 혼자 책임졌다. 하지만 경기 종반 무렵 그의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슛의 정확도가 하락했다. 그 사이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의 명품 픽 앤 롤 플레이가 주도권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4쿼터 41.9초를 남긴 시점에서 불스는 86:83으로 밀리고 있었다. 최후의 최후가 다가오는 순간, 조던이 스탁턴의 스틸시도를 무산시키고 뛰어올라 수비수 두 명을 공중에서 재치며 레이업슛을 성공시켰다. 스코어는 86:85가 되었다. 다음 공격에서 유타는 말론에게 공을 넘겼다. 데니스 로드맨이 말론과 끈질긴 접근전을 벌였다.
"데니스와 칼이 모든 것을 건 승부를 하고 있었죠. 저는 칼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칼은 데니스에게 신경을 쓰느라 공이 어디 있는지를 잠시 잊은 것 같았어요. 그때 전 스틸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경기 종료를 16초 남긴 시점, 조던이 암살자처럼 말론의 후방을 파고들어 NBA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틸을 성공시켰다. 그날만 네 번째 스틸이었다.
"관중석이 조용해 졌어요.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전 제 자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찰나였죠."
경기 종료를 5.2초 남기고 조던은 점프슛을 성공시켰고 경기를 86:87로 뒤집었다. 스탁턴이 마지막 순간 필사적인 3점슛을 던졌지만 바스켓은 유타 재즈를 외면했다. 그것으로 시카고 제 2왕조의 3시즌 연속 우승이 결정지어졌다.
조던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01-02 시즌과 02-03 시즌에 위싱턴으로 잠시 복귀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커튼콜과 같은 이벤트였다.
시대의 증언

06년 조던은 첫 부인인 와니타 베노이와 이혼하면서 1억 6천 800만 달러를 위자료로 지급했다. 그것은 당시 스포츠 스타의 이혼 역사상 최대의 위자료였다. 와니타와 마이클 사이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2013년 그는 쿠바계 모델 출신인 이베트 프리에토와 재혼했다. 2014년 프리에토는 쌍둥이를 낳았다. 06년과 13년 사이 조던은 비밀 연애를 했다. 하지만 상대가 25만 달러짜리 기밀유지 약속을 깨고 소송을 걸었는데, 그녀의 아이는 DNA 검사결과 조던의 자식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조던에게는 꼬리날개에 에어 조던 마크가 새겨진 자가용 제트기가 있다.
아래는 조던에 관해 여러 사람들이 남긴 인용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다.
저기에 마이클 조던이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우리 모두는 여기에 있죠. -매직 존슨
신이 조던으로 변장해 강림한 것 같았죠. -래리 버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힘을 내는 불가사의한 선수였어요. -필 잭슨
그 친구는 리그 전체를 창피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뛰어났죠. -존 댈리(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전 감독)
심장을 통째로 도려내기 전까진 그를 꺾을 수 없습니다. -조지 칼(밀워키 벅스 전 감독)
조던은 궁극의 농구선수였습니다. 그건 웹스터 사전에 수록되어야 할 어휘라고 생각해요. -그랜트 힐
경기장 안에는 저의 경기를 처음으로 보러 오셨고,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보는 제 경기일 그런 팬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 분들을 위해 뛰었어요. 그 모든 분들께 멋진 마이클 조던 모먼트를 선물해 드리기 위해서 전 언제나 최선 이상의 것을 추구했습니다. -마이클 조던
그가 어떤 친구인지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 께요. 저희가 솔트레이크에서 시카고와 경기를 했는데, 한번은 조던이 스위치를 해서 스탁턴 쪽으로 갔고, 터닝하며 그를 피한 후 덩크를 꽃은 거예요. 그런데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조던과 함께 사이드라인을 달리며 "이봐 조던, 본인하고 사이즈가 좀 맞는 상대랑 하지 그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음 공격에서 그가제 위에다 덩크를 꽃아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아까 소리 질렀던 그 사람을 향해 "어때 이정도면 사이즈가 충분했나?" 라고 한방을 먹이더군요. -칼 말론
그가 플로어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X됐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도니미크 윌킨슨
전 언제나 얼굴을 감싸 쥐고 '오마이 갓. 방금 내가 뭘 본거지?'라고 말했죠. -스코티 피펜
그는 센터처럼 힘이 좋았어요. 신적인 힘을 가졌다고 해도 좋을 거예요. -매직 존슨
마이클이 사이드에서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그를 밀어붙여 사이드라인 밖으로 몰아내려했죠. 그런데 잠시 후에 갑자기 그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걸 봤습니다. 신비로운 체험이었어요. -래리 버드
마지막으로 조던이 출연했던 나이키 광고 중 한편을 소개한다.
저는 커리어 전반에서 9000개 이상의 슛을 실패했습니다. 거의 300경기에서 패배했습니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회를 스물여섯 번이나 날려버렸습니다. 살면서 전 계속, 계속, 계속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성공의 비결입니다.
※ 참고자료
Come Fly With Me(1989 다큐멘터리)
Unstoppabulls(1997 다큐멘터리)
His Airness(1999 다큐멘터리)
ESPN Sports Century(1999 다큐멘터리)
To Tha Max(2000 다큐멘터리)
Obsession(2014 다큐멘터리)
The Lateshow(1986)
Jimmy Kimmel Show(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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