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형제를 기리기 위해 방한합니다"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2015. 10. 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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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노리타카
일제강점기에 도자기 공예를 연구하고 산림 보호에 앞장서는 등 조선을 진심으로 아꼈던 일본인 형제를 기리고자 일본 지방자치단체와 추모회가 한국을 방문한다.

시민단체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설립위원회'는 일본 야마나시(山梨)현 호쿠토(北杜)시 시라쿠라 마사시(白倉政司) 시장 등 호쿠토시와 '아사카와(淺川) 형제 추모회' 관계자 30여명이 2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을 사랑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와 그의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敎·1884∼1964)의 넋을 기리고 한일 양국 협력을 도모하고자 한국땅을 밟는다.

이번 행사는 2001년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JR신오쿠보역에서 철길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당시 26세)씨를 추모하기 위한 이수현재단설립위와 교감 속에 성사됐다.

아사카와 형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건너와 도자기 공예 연구와 보존, 식목사업에 헌신하며 진심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던 의인으로 평가받는다.

1913년 경성의 남산심상소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아사카와 노리다카는 조선 도자기에 심취해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국 700여곳을 답사하며 조선 도자기 역사의 맥을 정리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조선 도자기 귀신'이다.

당대 다른 일본인은 조선 문화재 도굴과 반출에 열을 올렸지만 노리다카와 다쿠미 형제는 소장했던 도자기와 공예품 3,500여점을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흡수된 국립민족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떠났다.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 는 형의 권유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임업기사로 일하며 황무지였던 한반도의 녹화 사업에 헌신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그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오엽송(잣나무) 노천매장법'이라는 양묘법을 개발했으며, 민둥산밖에 없었던 한반도 녹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식 장례로 조선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서울 중랑구 망우리에 묻혔다.

묘는 지난해 일본 호쿠토시의 재정지원으로 잔디로 덮인 조선식 묘로 재단장했다.

올해 4월에는 이수현재단설립위 주최로 이 묘역에서 그의 84주기 추모제가 열리기도 했다.

추모 방한단은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한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을 방문하고 인근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집터도 답사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한이 서린 서대문형무소와 망우리 아사카와 다쿠미 묘역, 천안 독립기념관 등지도 찾고 아사카와 형제를 재조명하는 포럼도 개최한다.

이수현재단설립위 노치환 사무총장은 "아사카와 형제를 재조명해 이수현 의인에 이은 한·일 의인을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선린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kisangl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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