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뷰티풀 군바리>-경계를 넘어 광장으로 나온 '모에' 코드
‘모에’는 일본어로 ‘싹이 나다’는 의미지만, 일본 서브컬쳐(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오타쿠(마니아)들은 캐릭터가 지닌 특정 시각적 속성과 그에 대한 몰입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뷰티풀 군바리>는 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에 연재될 때부터 격렬한 찬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찬반 의견은 복잡한 결을 드러내는데, 크게 구분하면 여성에 대한 입장과 태도 문제, 그리고 그동안 만화에서 묵인되어 왔던 성적 기호들의 수용 문제로 나눌 수 있다. 두 문제 중에서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뷰티풀 군바리>의 ‘여성에 대한 입장과 태도’다. 작품에서 드러난 여성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현존하는 여성차별은 무시되고 여성혐오가 구체화되는 2015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격렬한 논쟁을 낳는 게 당연하다.
여성도 군대에 가게 되었다는 설정을 정리한 도입부에 대해 “<뷰티풀 군바리>는 군필 여성을 추앙하는 동시에 군 관련 지식이 부족하거나 복무태도가 미숙한 여성을 ‘무개념’으로 묘사해 효과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혐오 자체를 마치 정당한 단죄인 양 주장하고 카타르시스를 유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최지은, ‘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이것이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ize>) 때론 작품의 수정을 권고하기도 한다. “조회수 100만 단위에 육박하는 네이버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다면 더욱 문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편견들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지 않다면, 부디 1화라도 수정해주길 바란다.”(선우훈, ‘<뷰티풀 군바리> 네이버에서 연재가 된다는 것’, <크리틱엠>) 9월 20일 31화 ‘집합2’편이 게재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주인공 정수아가 선임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에서 선정적인 표정과 앵글이 동원되었다며 “맥락없이 성적 연상을 유도하는 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을 강화하는 행위”로 연재 중지를 요청하는 온라인 청원이 9월 21일 시작되어, 10월 1일 현재 약 8000명에 이르는 인원이 서명에 참여했다.

| 설이·윤성원 작가의 만화 <뷰티풀 군바리>의 한 장면 |
여성들의 군대이야기에 대한 논란
반면, 위와 같은 문제제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웹툰을 구독하고 있고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한 작품을 두고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보여준다. <뷰티풀 군바리>는 여성들도 군대에 가게 된 가상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넘어서 여성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불러낸다.
주인공의 훈련소 생활을 그린 초반부는 군대 버라이어티 <진짜 사나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진감래’의 성취를 보여준다. 앞에서 소개한 최지은과 선우훈의 비판이 유효한 지점이다. 그런데 훈련소를 나와 의경 부대에 배치되면서부터 훈련소와 비교할 수 없는 군대의 불합리가 도드라진다. <진짜 사나이>의 영리하게 계산된 낭만이나 성취, 감동은 사라지고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이 난무한다. 이런 전개라면 군대폭력을 고발하거나 더 과장되게 해석하면 징병제의 부당함에 대한 논쟁이 나와야 될 텐데, 연재 중지 청원이 등장했다. 그것도 군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성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여성(으로 추정되는 젊은) 독자들에게서 말이다.
연재 중지 청원문에 따르면 <뷰티풀 군바리>는 “군대 내 폭력 장면을 망가와 같이 연출”했다. 망가는 모든 일본만화가 아니라 일본의 포르노 만화(정식 출판된 성년만화와 동인만화를 포괄해 인터넷에서 일반적으로 헨타이 망가라고 부름)다. 청원문은 일본 포르노 만화처럼 연출한 사례를 “망가 페티시 요소인 ‘배빵’, 성적인 쾌락에 젖은 표정, (중략) 성적 연상을 유도하는 피해자의 자세”라고 적시했다.
<뷰티풀 군바리>의 작가들이 헨타이 망가처럼 <뷰티풀 군바리>를 그리려 했던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뷰티풀 군바리>의 작가들은 다양한 모에 요소를 담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을 뿐, 헨타이 망가를 모사하지는 않았다.
‘모에’는 일본어로 ‘싹이 나다’는 의미지만, 일본 서브컬처(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오타쿠(마니아)들은 캐릭터가 지닌 특정 시각적 속성과 그에 대한 몰입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명사이자 동사로 활용되는 단어인데, 요모타 이누히코는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에서 “대중소비사회의 가상현실 환경에서 발현된 피그말리온 콤플렉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오타쿠들은 서브컬처에 등장하는 안경을 쓴 미소녀, 메이드 복장을 한 소녀와 같은 특정 요소를 지닌 캐릭터에 몰입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 일본 서브컬처 시장이 불황에 빠지자 안정적인 오타쿠 시장을 겨냥해 모에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모에 콘텐츠는 타깃에 따라 전혀 다른 두 세계로 갈라진다. 남성(오타쿠)를 위한 모에 콘텐츠는 남성들의 페티시즘 욕망을 구체화시켰다. 다양한 성격(누님, 츤데레, 도짓코 등), 강조된 특정 신체부위(가슴이나 엉덩이, 허벅지 등)가 다양하게 분화되어 조합되었다. 여성(후죠시)을 위한 모에 콘텐츠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의 역할놀이(커플링)로 구체화되었다. 아키하바라로 대표되는 남성향 모에와 이케부쿠로로 대표되는 여성향 모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며, 서로 콘텐츠를 공유하지 않는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표현을 빌리면 “양자 사이에는 무관심의 강이 흐를 뿐”이다. 게다가 모에 콘텐츠는 특정 취향을 소비하는 독자들에게만 공유되었다.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
하지만 <뷰티풀 군바리>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담은 모에 콘텐츠를 광장에 전시했다. 공개적 여성혐오 정서의 출발점인 군복무 문제(1999년 군가산점제 위헌소송은 반페미니즘 담론을 구체화시켰다)를 소재로 가장 많은 독자들이 관람하는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다는 건 필연적으로 논쟁을 불어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모에 코드가 보이지 않는 독자들은 평이하게 서사를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남성향 모에 코드를 풀어낼 수 있는 독자들은 만화에서 모에 요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다양한 성격, 강조된 특정 신체부위는 이미 익숙한 규칙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향 모에 코드의 밑바탕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숙하지만 귀엽고 순종적인 여성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이 환상은 모에를 소비하는 남성 독자들의 페티시즘의 욕망이다. <뷰티풀 군바리>의 그녀들은 모에 코드로 해석되고 수용되는 순간 주체적 여성이 아니라 대상화된 여성이 된다. 여성 독자들이 유독 <뷰티풀 군바리>를 불편해 하는 까닭은 만화에서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독자의 시각적 쾌락에 종사하는 도구로 대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을 성적도구로 생각하고,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객체화시키는 경향이 여성혐오(misogyny)다.(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은행나무, 2010)
그동안 모에 콘텐츠는 특정 취향의 독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곳에서 판매되었다. 또한 그렇게 판매된 모에 콘텐츠의 모에 캐릭터들도 작품 안에서 현실에 개입하지 않았다. 싸우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가죽끈 옷을 입은 가슴 큰 여성 전사들은 누가 보더라도 현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의 세계에서 활동했다. 일본의 경우 잡지, 라이트 노벨, 그리고 동인지를 통해 모에 콘텐츠들이 창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에 콘텐츠들이 창작·수용될 공간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광장에서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묵인된 상태에서 소비했던 여성의 성적 재현(모에화)이 경계를 넘어왔다.
‘모에’를 통해 안전하게 봉인하고 은폐했던 성적 욕망이 대낮 광장에 풀려버린 것이다. 현실과 대면하기를 꺼려했던 모에가 청원의 법정에 섰다. 모에 콘텐츠를 현실의 이면으로 숨겨 은폐하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미 우리가 다 관람해버렸기 때문이다. 독자와 작가 모두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모에가 주는 이미지의 뒷면에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판단하는 여성혐오가 똬리를 틀고 있다. 나 역시 불편하다. 모에 콘텐츠들을 부담 없이 즐기다 <뷰티풀 군바리>를 통해 강제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요모타 이누히코는 “심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와이이’ 이미지가 억압하고 은폐해온 것들이 가까운 장래에 일제히 지상으로 회귀하여 득의양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본질적인 파국을 맞는 때일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귀엽다는 뜻의 ‘가와이이’를 ‘모에’로 바꿔 읽어 보자.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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