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60여 년 만에 눈물의 상봉
■ 김희준, 통일·외교 전문기자 /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앵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화면 함께 보시죠.
[기자]
오늘 오후 우리 시각으로 3시 반에서 5시 반까지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행사 화면이 드디어 4시간여 만에 들어왔습니다.
[앵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죠?
[기자]
원래는 1시간 정도 뒤에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그 화면 전송과정에서 북측과의 가벼운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 65년 만에 남편을 만난 이순규 할머님의 모습입니다. 남편 오인세 씨를 만났는데요. 49년에 결혼했는데 6개월, 그러니까 7개월 만에 헤어졌습니다. 당시 뱃속에는 5개월된 아들이 있었고요.
[앵커]
아들을 만난 거죠, 아버지가?
[기자]
그렇습니다. 아들 오장균 씨입니다. 아드님 오장균 씨, 아버지라는 세글자를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요. 처음 보는 아버지의 얼굴. 하지만 어디에선가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죠. 이순규 할머님. 오랜동안 남편을 기다리면서 단 6개월, 7개월 살았는데 그동안 재가를 하지 않고 이 남편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앵커]
결혼식 때 신은 신발을 아직도 갖고 있다라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분이 제 기억으로는 이분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남편의 물건을 아직 버리지 않았고요. 이번에는 당시 어렵게 살던 시절에 시계가 아주 귀했다고 해서 남편을 위한 시계, 60여년만에 전달하려고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얘기 듣지 않게 아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삯바느질과 그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아들을 지금까지 키워왔는데요. 지금 웃는 모습은 마치 소녀같습니다. 신혼 때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앵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것을 봤을 때 지금 저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장면, 이건 이제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흔하게 보는 장면은 아니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많거든요.
물론 이미 만나신 분들도 많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많기 때문에 저런 극적인 장면 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점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는, 그런 장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 계속 오인세 씨와 이순규 할머니의 만나는 장면이 계속 나오고 있죠.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산가족 고령화가 아주 심각합니다. 현재 정부에 등록돼 있던 13만 명 중에 6만 6000명이 생존해 있는데요. 이 가운데 70세 이상이 거의 80%가 넘습니다. 이번 이산가족들도 95%가 이번 1진 상봉에서 80세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모, 자식 간의 직계가족 상봉이 다섯 가족에 불과합니다, 이번 상봉의 경우 그렇습니다.
[인터뷰]
저는 저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보면서 2박 3일 동안 6번 만나지 않습니까, 저 가족들이. 그리고 나서 또 기약없는 이별을 또 해야 되잖아요. 그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편지라도, 우리가 서신이라도 좀 자유롭게 서로 소식을 물을 수 있고 거기에 사진 같은 것을 동봉해서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위해서 달러 같은 것을 보낼 수가 있고 그렇게 서신왕래라도 빨리 좀 남북 당국자간에 협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기자]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도 통일 25주년을 맞았는데 1970년대 서로 교환한 편지만 2억 통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 교류들을 통해서 통일의 밑바탕을 쌓아왔던 것이고요.
말씀 잠깐 들어보실까요? 사실 오인세 할아버지는 이미 재가를 해서 2남 3녀 자식들을 두고 아주 잘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앵커]
저 시계를 아마 만나는 기념으로 당에서 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기자]
그럴 수도 있죠.
[앵커]
그런데 지금 독일 얘기를 하셨습니다마는 독일 같은 경우에 왕래가 자유롭다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독 사람이 동독을 방문하려고 했을 때는 한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요. 동독 사람이 서독을 방문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최소한도 왕래는 가능했다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상당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겠고요. 어쨌든 우리나라처럼 저런 장면을 볼 수밖에 없다라는 거. 이건 제가 생각할 때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사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기자]
그래서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세계유네스코 유산으로도 등록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건 서신교환도 좋지만 일단 전면적인 생사확인이 절실합니다.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이 북측의 가족들이 살았는지 또 사망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할머님은 눈물을 흘리고 아주 담담한 모습으로 상봉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아들과 함께 며느리도 함께 갔습니다.
[앵커]
지금 이산가족 상봉 장면 모습을 보고 계신데요. 아까 김희준 기자가 다섯 가족밖에 없다, 직계가족은.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을 할 때 물론 추첨을 합니다마는 우선순위가 있죠. 고령순, 그리고 직계가족순, 이렇게 되는데. 이분들은 아마 맨처음에 할 때는 연령 때문에 밀렸을 겁니다.
[기자]
그러실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게 해서 지금 만나는 것인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사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는 특히 고령자에 가산점을 많이 부여를 했습니다. 특히 90살 이상된 분들 가산점을 많이 부여했고요. 현재 6만 6000여 명이 생존해 있으니까 이번에 100명이 만난다고 했을 때 거의 660 대 1의 경쟁률. 거의 복권 당첨의 경쟁률이라고 얘기하는데요. 그렇게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63년 만에 이산가족 만남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어려운 경쟁률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게 우리나라는 저 문제를 인권문제로 접근하는데 북한은 정치적 문제로 접근을 하고 있어요. 생사확인, 북한이 응해준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전산화 같은 게 잘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가서 직접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터뷰]
실제로 지난 번에 북에 남측의 여동생이 오빠를 찾는 것을 북측에 보냈는데 그분이 이미 사망했다, 그렇게 통보를 받아서 아예 제사까지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오빠가 동생을 찾는 연락이 왔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됐기 때문에 북측은 지금 제대로 저것이 정리가 안 될 가능성이 첫 번째 있고요.
또 하나는 거기에서 사상이나 이런 것이 불순하다고 해서 남쪽 사람들한테 생사 여부를 제대로 안 알려주는 그런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기자]
이건 88번 북측의 최훈식 씨의 가족인데요. 아들 상봉하는 경우입니다. 다섯 가족, 직계가족 상봉하는 가족 중에 한 가족입니다.
[앵커]
다섯 가족 중 하나죠.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아들이 갓 돌 지난 상황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고요. 부모는 결혼 5년차였는데 아내 이옥연 씨께서는 남편이 혹시나 돌아올까 해서 살던 집에 계속 대를 이어서 살고 있고요. 같은 집에다 다시 아버지가 돌아올까 고대하면서 다시 집을 지어서 아들이 똑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앵커]
지금 이분들도 직계가족인데. 사연은 저 밑에 나와 있죠. 북측에 계신 분들이죠, 김일성훈장 갖고 나오신 분.
[기자]
그렇습니다. 채훈식 할아버지, 88살로 북측의 최고령 상봉자입니다.
[앵커]
재혼을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기자]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요. 대부분 경험으로 본다면 남편분들은 다 재혼을 하셨더라고요. 보통 아내 같은 경우는 6개월 살고 1년만 살았어요 남편을 기다린 경우가 많은데요. 남편분들은 보통은 재혼들을 많이 하셨는데 이번에 아내와 아들, 며느리까지 지금 현재 상봉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88살 고령이다 보니까 아직 잘 안 들리는 것 같고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내 말 없이 아들과 잡은 손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앵커]
지금 이게 문제가 되는 게 뭐냐하면 가족을 만나는데 자꾸 훈장 같은 것 가지고 오고 표창장 같은 거 가지고 와서 이쪽 가족들은 굉장히 만나고 싶어서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얘기가 자꾸 다른 데로 간다는 거예요.
제가 통일부에서 과제를 받아서 과거에 1, 2, 3, 4차 이산가족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20개 항목 가지고 조사한 적이 있는데 제가 그때 느낀 것이 뭐냐하면 가족들이 실망하는 이유가 대부분 표창장과 훈장, 이것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기자]
북측 입장에서는 이렇게 남측 가족을 만났을 때 남측의 자본주의나 풍요로움, 그런 데 물이 들까 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고요.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이 열린다면 보통 1, 2주 전에 모아서 사상교육도 다시 한 번 시키고 또 잘 먹이고 또 좋은 옷들 다 맞춰 입혀서 보낸다는 얘기가 있죠. 그러니까 더더욱 이렇게 수령의 은혜로 잘 살고 있다, 이렇게 과시하기 위해서 훈장도 내밀고 하게 되는 것이죠.
[인터뷰]
그런 것 말고도 그럴 것 같아요. 북측의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내가 잘 살고 있노라라는 것을,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거잖아요. 김정은 수령의 공여를 받았고 그 엄격한 체제 아래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잘 살아 왔다고 얘기를 하겠습니까? 꺼낼 것이 없고 결국 우리가 잘 살았다는 것을 훈장을 보여주면서 알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인터뷰]
말씀을 들어보면 저렇게 상봉을 하지않습니까? 저게 끝나고 나면 본인들끼리 모여서 총화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지적하고 그러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게 됩니다. 저 상황에서도 자유로부터 가족들을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기자]
이 가족은 누나와 상봉하는 그 가족의 모습입니다. 모여서 서로 돌아가신 부모님 얘기, 함께 나누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얘기를 할 텐데요.
[앵커]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를 보면 최초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북측이었습니다. 북한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우리가 북한보다 좀 경제적으로 떨어져서 우리가 거부를 하다가 70년대부터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데요.
그런데 이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인권 문제에 있어서 경제력이 무슨 상관이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아직도 북한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게 뭐냐하면 저렇게 만나서 정말 며칠 밤 지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금방 바뀌니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단 2박 3일의 만남인데다 그것도 6차례 상봉, 2시간씩 해서 약 12시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상봉입니다. 그나마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현재 현지에서 만찬상봉을 하고 있을 텐데요.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 그렇게 두 차례만 상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누나와 형제가 서로 상봉하는 모습인데요. 지금은 담담한 모습일 텐데. 이 정규환 할아버지, 북측의 최고령 중 한 명이고요. 88살이시고요. 형은 돌아가시고 형수, 조카들과 함께 만나는 그런 모습입니다. 고령으로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측의 가족들은 정규현 할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제사를 많이 지내왔다고 하고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있다 북측에 끌려갔다 소식이 영영 두절됐다고 합니다.
[앵커]
현장 소리 한번 들어볼까요.
[인터뷰]
돌아가셨어요. 오빠 다음에 언니가 그랬잖아요.
[기자]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지금 전해 듣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시동생을 만나러 온 것이죠.
[기자]
남측 가족 입장에서는... 60여 년의 세월, 얼마나 오랫동안의 세월 동안 궁금해하며 지냈을까요?
[앵커]
그 사이에 여러분, 너무나 잘 아시는 한반도평화재단의 한화갑 총재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한 대표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시작한 이산가족 상봉. 지금 이산가족 상봉 장면, 이 장면 보시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많으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인터뷰]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는 1985년인가요. 전두환 정권 때 처음으로 그때 상봉을 해서 세계 사람들이 다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의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이 돼서 결국 그때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금강산 면회소도 그때 만들었고. 물론 이것을 제대로 발전시켜왔더라면 지금쯤 정례화 됐을 지도 모르죠.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서로 교류협력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산가족은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신청만 12만 명 했고 지금도 6만 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는 12만 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것이 우리 대북관계의 급선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뭐든지 돕겠다고 했는데 이 문제 이상 세계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번을 계기로 해서 완전히 남북간에 지난 8. 25 합의를 더 연장시켜서 더 좋은 합의를 도출해서 이걸 정례화시키고 그리고 상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제 개인 생각으로는 북한이 돈 때문에 하고 안 하고 이런 일은 없겠지만 그러더라도 북한 형편을 봐서 우리가 대주는 그런 방법이라도 써서 실향민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가, 이것을 전세계 사람이 다 느끼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는 그 문제에 남북관계 긴장완화를 하는 최대의 활력소로 활용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조금 전에 지나간 장면이 리흥겸 할아버지, 딸을 만나는 모습이었고요. 다시 지금은 북측의 누나가 남측의 남동생들을 상봉하는 장면들입니다. 박룡순 할머니. 서울대병원의 간호사를 지내다가 인민군 후퇴 때 이별을 하게 됐는데요. 동생들이 기억하는 모습, 누나가 운동을 잘해서 육상선수도 했다.
[인터뷰]
누나 봤다!
[인터뷰]
몇 십년 동안 쌓였던 절규 아닙니까, 한의 폭발이고요.
[기자]
부모와의 상봉보다는 감동이 덜하다 하지만 형제자매의 정도 어떻게 끊을 수 있겠습니까?
[앵커]
나이가 들수록 형제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쨌든 한화갑 대표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지금 어떻게 보십니까? 과거에는 교차상봉이라고 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까, 상봉을. 그런데 지금 금강산에 가서 우리가 상봉을 한다는 말이에요.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면서요?
[인터뷰]
저는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금강산에 면회소를 세울 때 북한에서 내려오는 것을 꺼려하니까 남한에 계신 분들이라도 올라가서 가족을 만나는 게, 그렇게 해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닌가라고 해서 금강산 면회소를 만든 것 아닙니까.
[기자]
사실 평양을 가서 보면 참 좋겠습니다마는 2000년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성명 이후에 서울과 평양 상봉이 3차례 이뤄진 뒤 그 이후로 금강산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실 동시상봉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북측 입장에서는 북측 주민들이 남측에 와서 남측의 발달된 문명, 이런 것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꺼려서 그러는 건데요.
어쨌든 장소는 서울, 평양도 오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금강산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더 정례화해서 자주 만날 수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겠습니다.
[앵커]
지금 이게 따님 만나는 것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무슨 얘기하는지 조금 들어볼까요?
[인터뷰]
오빠 보고 싶었어.
[인터뷰]
남동생 하나 있는데...
[기자]
지금 두 살배기 딸과 동생들을 만나는데요. 지금 동생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다 돌아가셨다고 하고요. 이분도 리용종 할아버지, 북측 최고령자입니다. 88살입니다. 비교적 정정하게 말씀은 나누고 있습니다. 6.25 발발하던 해에 행방불명 처리가 됐고요.
[인터뷰]
이렇게 정례화를 시켰으면 좋겠고 우리가 북한에서 못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걸 북한이 차츰차츰 인정해가는 추세가 아닙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우리가 돈 주고 사와도 돼요. 이해하기 쉽게 우리가 이런 표현을 씁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인권에 있어서 세계적인 선진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는 것이고 또 이렇게 하다 보면 북한도 인권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의 인권 개선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앵커]
지금 이분들도 부자지간 만나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부자상봉, 부부상봉 화면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아들과 아버지가 손을 꼭 붙잡고 아들이 아버지한테 가장 처음 묻는 말이 건강 좋지 않냐고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동생도 만나고 있습니다. 아까 오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는 모습도 잠시 지나갔는데요.
[앵커]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기자]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로 알았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멍하기만 한 상황이다. 사실 어머니도 계신데 어머니는 재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뜻 상봉장에 나오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이렇게 모습을 보면 역시 좀 많이 닮았고요. 혈육의 정은 정말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사실 아드님도 나이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인터뷰]
그렇죠, 몇 십년 만인데.
[기자]
어떤 따님도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나도 할머니 됐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여동생의 애끓는 한,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던 오빠였겠습니까.
[인터뷰]
우리가 과거에 먹고 살기에 모두들 여념이 없었고. 그리고 나라 발전에 모두 기여하느라고 애쓴 그런 국민들이지만 이렇게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벌써 해결했어야 될 문제를 아직도 해결을 못하고 있다는 게 이게 우리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풀어가야 할 문제, 우선순위가 이렇게 미뤄져 있다는 겁니다.
[앵커]
아까 대표님께서 국군포로, 납북자 얘기를 하시스템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 문제를 따로 풀고 싶지만 북한측이 워낙 완강했기 때문에 특수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범주 내에서 이산가족 상봉 때 실제로 몇 퍼센트의 퍼센테이지를 정해서 만나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인터뷰]
그것도 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몇 퍼센트라도 들어줬다는 것은 국군포로를 인정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시작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 외연을 넓혀가면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무조건 끌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원하는 게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으면 해 주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야죠.
[기자]
이번에 상봉자를 뽑을 때, 100명의 상봉자를 뽑을 때 200명을 선정을 했는데요. 북측은 200명이었지만 우리는 250명이었습니다. 그 50명이 국군포로와 납북자였고요. 그가운데 일부가 상봉을 하게 됐습니다. 그건 1차 상봉 때는 없고 2차 상봉 때 상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앵커]
사실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들. 그쪽 가족분들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불만이었어요. 왜 우리가 이산가족 범주 내에서 다뤄져야 되느냐.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을 가졌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것을 고집했다가는 더 문제가 안 풀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인터뷰]
이렇게 만난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죠.
[앵커]
그게 굉장히 안타깝죠.
[기자]
82번 정세환 할아버지.
[앵커]
따님 만나는 거네요?
[기자]
딸 상봉 사례입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이고요. 아버지가 마을의 모임을 간다고 하고 행방불명이 돼버렸는데요. 어머니는 고령이었고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이 자리에 오지 못했고요. 딸만을 상봉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속보가 나왔는데요. 북한이 사전검열을 시도해서 이게 늦게 도착했다. 아까 김희준 기자가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이게 북한이 화면을 다 보겠다, 뭘 찍었는지. 그런데 저기에 중요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기자]
아무튼 이번 행낭 과정에서 북측이 그림을 보자, 너무 많이 촬영된 것이 아니었냐. 그래서 행낭을 보자고 했고 그 과정에서 남측과 약간 마찰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북한은 저런 정권인 거예요. 그걸 알고 우리가 북한을 다뤄야 합니다.
[기자]
저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산가족 상봉 취재차 여러 번 금강산을 갔는데 당시에는 중계차가 현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측에서 좀 마음에 들지 않는 화면이나 이런 게 있을 때 중계차까지 들어와서 화면을 삭제하라고 했었는데요.
[인터뷰]
안내원의 허가 받고 사진 찍는 곳 아닙니까? 그런 곳이에요.
[기자]
북측이 이번 상봉에 순조롭게 많이 협조를 해 주는 것으로 알고 다들 마음을 놓았는데. 첫날 화면 전달은 약간 지연돼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터뷰]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장면을 북한 동포들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이런 장면들이 북한 모든 동포들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고 그렇게 해서 얼마나 세계 사람들이 남북한의 이산가족 상봉에 있어서 찬사를 보내고 박수를 보내는가, 이런 걸 보여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정말로 유감스럽습니다.
[앵커]
그런데 사실 지금 검열을 시도했다라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이 이번에 상당히 위험하게 나온 부분이 있죠. 우리가 상봉 시간을 2시간 늘리자고 얘기를 했는데 그걸 수용을 한다든지 과거 같으면 턱도 없는 소리를 한다고 했을 텐데. 이런 속내를 뭐라고 보세요?
[기자]
이번에 북측이 이산가족 작별상봉 시간을 2시간으로 늘려준 것은 물론이고 북한 가족의 사망일자를 정확하게 처음으로 알려줬는데요. 북측 입장에서는 지난주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 등을 위협을 하면서 조금 긴장을 고조시켰는데. 북측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산가족 상봉을 무산시키거나 협조를 하지 않을 경우에 쏟아지는 남측에서의 비난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비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북측에서 국제적인 비난, 그런 것을 두려워하는 정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 UN에서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 다루고 오바마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 공동성명도 발표하고 그랬잖아요. 이건 처음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8월 25일 합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70주년 행사 때 미사일도 안 쏘고 핵실험도 안 하고 넘어갔어요. 북한이 세계여론에 굴복했다, 이렇게 선전하면 북한은 자존심 상해합니다. 이것을 잘 활용해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얻어올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것을 북한을 인정을 해 줘야 돼요. 인정하면서 그 대가를 요구하면 우리가 합당하면 주는 겁니다.
[기자]
북측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원활하게 치러낸 뒤에 지난 8. 25 고위급 합의사항에 따라서 남북 고위급 회담도 계속 열게 될 것이고요. 그러면서 대화 남북관계도 발전시키고 국제정세 차원에서도 북측이 원하는 바를 얻어가려는 그런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산가족 문제,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권적인 문제라는 사실 그리고 인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을 때 북한은 전세계로 부터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터뷰]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얻을 건 많습니다.
[앵커]
오늘 도움 말씀 여기까지 듣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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