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고독이 스며들 땐, 고양이에게 부탁해

백영옥·소설가 2015. 11.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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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품 그 도시]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외로운 사람들의 도시

가을비가 자주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 2년 넘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타이베이에서 보낸 여름 한철의 사진들이었다. 타이베이에서 7월과 8월을 보낸다는 건 서울과 차원이 다른 더위와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타이베이에 유독 야시장이 발달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낮에는 사람들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식당들은 늦게까지 열려 있고, 나 역시 9시가 넘어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우육탕면 같은 것으로 저녁을 먹곤 했다. 가격은 (더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2500원. 타이완 비어와 함께 먹어도 4000원을 넘지 않았다. 내가 있던 곳이 대학 근처였기 때문에 혼자 늦은 저녁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샘하는 사람들'의 타이베이판이라고 해야 하나.

타이베이는 서울과 여러 면에서 비슷했다. 내가 머물던 타이베이 예술대학 안에는 길고양이도 제법 눈에 띄었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J와 함께 봤다. 고양이 애호가이기도 한 하루키의 에세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에는 '네코야마씨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거기엔 '빌려온 고양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째서 고양이를 빌려와야 하죠?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게, 어째서 굳이 고양이를 빌려와야만 할까? 힐링 같은 것과 관계가 있는 걸까? 아니, 틀렸다. 쥐를 퇴치하기 위해서다.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있으면, '실례하지만 댁의 고양이를 잠시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이웃이 부탁해 온다. 옛날에는 집집이 쥐가 많았던 탓에 고양이를 쥐잡이로 키웠던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는 이따금 쥐를 잡아 입에 물고 와서는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그러니까 고양이는 집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뉴욕에 사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엄청나게 꼬리가 긴 쥐를 목격한 이후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뉴욕 같은 도시에 쥐가 있단 말이야?"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쥐뿐이겠어? 수퍼 빈대 출몰 지역도 뉴욕이야!"라며 울상이었다. 그녀는 120년이나 된 파크 슬로프의 3층집에서 고양이와 5년째 동거 중이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온종일 집에 있는데도 어째서 답답해하지 않는 걸까? 이런 걸 늘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애인은 없어도 고양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서울이나 도쿄, 타이베이에는 이제 쥐가 거의 없다(그렇지 않은가?).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일본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이 도쿄인지 오사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외로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왜 외로울까. 그렇다면 농촌에 사는 사람은 외롭지 않을까.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하다가, 영화 속 주인공이 리어카에 가득 든 고양이를 끌고 다니며 "고양이를 렌털!!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 빌려드려요! 냥이, 냥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봤다. "있잖아, 나 저 흰색 고양이를 빌리고 싶어." 영화를 보던 J가 중얼거렸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파리에 간 고양이'의 주인공 노튼 같은 고양이(귀가 접힌 스코티시폴드!)를 찾던 중이라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뒤만 돌아보면 남자 대신 고양이가 쫓아왔다는 사요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뻥 뚫린 마음의 구멍을 메워준 건 바로 고양이들이었다. 툇마루가 있는 그녀의 집에는 정말이지 고양이가 바글바글한데, 사요코는 그런 고양이들과 행복하게 동거 중이다.

사요코는 고양이가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인지를 심사한 후, 고양이를 빌려주는 독특한 사업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심사를 핑계로 고양이를 빌리려는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모모코라는 이름의 오래된 고양이를 잃고 상심하다 사요코의 고양이를 빌리기로 한 할머니는 "아들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자꾸 만들게 된 푸딩을 이젠 내가 더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자신이 만든 푸딩을 권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며 점점 외로워진 아저씨의 구멍 난 양말을 메워준 것도, 12년째 자동차 빌려주는 회사에서 홀로 앉아 일하며 링 도넛을 먹던 여자의 구멍 난 마음을 메워주는 것도 사요코에게 빌린 고양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 마음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데 사요코는 아무래도 그것이 외로움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고양이를 빌리는 기간은 '원할 때까지', 고양이 렌트 비용은 1000엔밖에 안 한다.

"그렇게 조금 받으면 생활이 힘들지 않아요?"

고양이를 빌리려는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사요코의 앞일을 걱정해준다. 하지만 씩씩한 그녀는 주식도 투자하고 고양이 타로로 사람들 연애 점도 봐주고, (그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 지갑이에요! 헤어지세요!), 음악도 작곡하면서 그럭저럭 먹고산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그녀의 뜻대로 언젠가 결혼할 날도 곧 올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 좋아하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눈을 뜬 채 죽은 걸 목격한 후부터였다. 고양이보다 개! 마당이 생기면 늘 레트리버를 키우겠다고 결심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주변엔 고양이를 키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며칠 전, 호수 공원을 걷다가 꽤 괴상한 풍경을 목격했다. 고양이 목에 목줄을 걸고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여자아이였다.

"혹시 집보다 산책을 더 좋아하는 고양이인가요?"

고양이처럼 새침한 얼굴이라 다가가 그렇게 묻진 못했지만, 정말이지 궁금해서 발바닥이 다 가려울 정도였다.

고양이계에도 '소요학파'처럼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나? 아님 말고.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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