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에 家長 된 큰언니.. 30년 희생의 代價가 병든 엄마 수발이라니

2015. 11. 1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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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누군가의 희생이 절실히 요구될 때, 우리는 잔인해집니다. 지금까지 희생해온 사람, 희생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아는 사람, 희생하느라 자기 인생은 거의 남아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무언의 요구를 하지요. 한 번만 더 희생하라고…. 그런데 그러한 부당한 요구가 뜻밖에도 쉽게 수용되곤 하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오랜 세월에 걸친 희생이 그 사람의 자아를 바꾸어놓고, 사고의 틀마저 규정해버리기 때문일까요?

어머니가 버리고 간 동생들을 돌보느라 청춘을 잃어버린 한 여인이, 이제는 죄 많은 어머니를 간병하려 합니다. 일방적 헌신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그녀. 형제들은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홍 여사 드림

평범한 마흔한 살 직장맘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별별다방 홍여사님을 찾은 것은 자식 교육 문제나 시집 스트레스 때문이 아닙니다. 제 진짜 문제는 늘 친정입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친정 때문에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져 사는 여자의 마음을요.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일곱 살부터 열네 살까지 2남2녀의 자식들을 남겨놓고 그렇게 가버리셨지요.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제 인생 최악의 사건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삼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엄마가 저희 넷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겁니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자식 넷 딸린 과부가 되었으니 막막하기 했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요? 아버지 돌아가시고도 술과 신세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생활이 한계에 달하자 혼자 내빼버린 겁니다. 정신력은 그 지경인데, 인물은 또 그렇게 좋았다 합니다. 아마 모든 걸 잊고 멀리 가서 새 사람과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하여간 그날 이후로 저희는 부모 없이 살아왔습니다. 열일곱 살이던 큰 언니가 부모 대신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고 철없는 나이인가요? 그러나 언니는 참 의젓하고 강했어요. 지금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언니에게서 받은 사랑과 헌신이 여느 엄마한테서 받는 것 못지않았다는 겁니다. 그 덕에 저는 지금 착한 남편 만나 살고 있고, 작은 오빠도 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인생은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었습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돈을 벌러 다녔어요. 큰오빠 역시 희생됐습니다. 공부를 그렇게 잘했는데 대학은 못 가고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니까요. 그나마 오빠는 지금 가정을 꾸려서 재미나게 살고 있지만,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언니입니다. 동생들 뒷바라지하다가 때를 놓친 게, 오십이 내일모레인 지금까지 결혼을 못했습니다. 가게가 잘돼서 먹고사는 건 걱정이 없지만 앞으로 닥쳐올 노년이 너무 안됐습니다. 저는 아이 둘 낳고 오순도순 사는데, 언니가 저렇게 혼자 나이 먹어간다는 것이 너무 미안해요. 그렇다고 지금 제가 언니에게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언니 인생이나 좀 즐겼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 말이 꼭 모질게 나갑니다.

그런데 얼마 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겨서 제 마음이 더 어지럽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언니가 형제들에게 말도 없이, 엄마를 찾았었나 봐요. 결국 지방 어디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는데, 문제는 엄마의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먹고살 길도 막막했고, 설상가상 병이 깊었다니까요. 같이 살던 사람은 벌써 도망가버렸고요. 인과응보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지만, 애통한 마음도 안 들더군요.

그런데 언니의 마음은 다른 모양이더군요. 형제들에게 상의도 없이, 엄마를 떡 하니 언니 집에다 모셔다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지극정성으로 수발 중이에요. 오빠들과 제가 펄쩍 뛰며 요양시설로라도 보내버리라고 했지만 언니는 도무지 듣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에게 엄마 좀 자주 들여다보라고 합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어떤 꼴을 하고 있나 가보기는 했습니다만, 거기서 본 장면이 저는 잊히지가 않습니다. 언니는 의무감에 억지로 그 일을 하는 게 아니었어요. 엄마의 식사 시중을 드는데, 세상 어느 딸도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당당하고 편안한 태도로, 어리광까지 부리며 딸의 시중을 받고 있는 엄마였습니다. 저는 거기 가 있어도, 엄마가 아예 거들떠도 안 보더군요. 철모를 때 떼어 놓고 간 막내딸이건만, 도움이 안 되면 다 필요 없나 봐요. 하긴 저 역시 말 한마디 안 건넨 건 마찬가지네요.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사남매 중에 엄마 원망이 제일 커야 할 사람이 언니잖아요. 엄마와의 기억이 별로 없는 저와는 달리 언니는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걸까요? 그런데 큰 오빠는 또 좀 다르게 이해를 하더군요. 지금 누나한테 누가 있느냐? 우리 다 각자 가정이 있고, 막내 너까지도 혼자 잘 살아가는데. 누나한테도 마음 붙일 누군가 필요한 거니까, 당분간 가만 놔둬라.

누군가 필요하면 이제라도 좋은 짝을 만날 생각을 하지, 왜 하필 도망간 엄마일까요? 희생만으로 살아온 삼십년 세월에, 이제는 희생도 중독이 된 것인지…. 우리 중에 제일 성격 좋고 야무졌던 언니가 너무 아깝습니다. 그리고 양심 없는 엄마가 새삼 밉습니다. 언니를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노인 병 수발이라는 게 앞으로 나날이 힘들어져 갈 텐데요.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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