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과잉의 얼간이가 필요한 세상

2013. 11. 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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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선천적 얼간이들>의 가스파드 작가

10월은 이별의 계절인가 보다. 지난주 김규삼 작가의 <쌉니다 천리마마트>가 완결된 것에 이어 가스파드 작가의 일상 개그만화인 <선천적 얼간이들> 시즌1이 끝났다. 매주 목요일(<선천적 얼간이들>이 업데이트되는 요일)에 박장대소할 일 하나가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선천적 얼간이들>은 수많은 일상 개그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일 정도로 웃음의 파괴력이 강력한 작품이었다.

나와 함께 매거진 <아이즈>(IZE)에서 웹툰 리뷰를 연재중인 김낙호 평론가는 일상 만화를 웃기는 소재를 가져온 경우와 평범한 이야기도 웃기게 하는 경우로 구분하며 <선천적 얼간이들>을 후자로 설명했다. 백퍼센트 동의한다. 최근 에피소드인 ‘탐욕의 성배’ 편은 거창한 제목과 달리 따지고 보면 친구들끼리 자취방에서 10원짜리 내기 도박을 한 이야기다. 명절마다 화투판이 벌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10원이 차곡차곡 쌓이는 곰돌이 저금통에 대한 휘황찬란한 묘사와 그것을 탐하는 캐릭터들의 욕망을 과장되게 그리면서 정말 이 저금통은 탐욕의 성배처럼 느껴진다. 특히 높은 수준의 작화는 이 만화적 과장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림 자체의 세밀함도 세밀함이고 보통 색상 하나를 톤 하나로만 채색하는 다른 일상 만화와는 달리 두 개, 세 개 톤을 쓰는 채색은 소위 ‘쓸데없는 고퀄리티’의 모범 답안처럼 보일 정도다. 바로 이러한 잉여적으로 넘쳐나는 의욕과 에너지야말로 이 작품과 가스파드 작가의 가장 큰 힘처럼 보인다.

앞서 <선천적 얼간이들>의 에피소드가 사실 특별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대신 주인공이자 작가 본인인 가스파드와 그의 친구 산티아고, 선배인 로이드 등은 효율성의 기준에서는 불필요해 보이는 이상한 열정을 보여준다. 십대들의 선도에 이상할 정도로 열정을 바치는 산티아고나 뭐든 꽂히면 뒤도 안 보고 실행하는 로이드, 무시무시한 먹성을 지닌 펠 등은 그 자체로 ‘쓸데없는 고퀄리티’를 실현하며 사는 존재들이다. 가스파드 작가는 어떤 믿을 수 없이 황당한 순간보다는 이런 잉여적 열정의 순간을 역시 극도의 고퀄리티로 극대화해 웃음을 준다. 앞서 말한 ‘탐욕의 성배’에서 중요한 건 로이드가 얼마나 신들린 듯 돈을 땄느냐가 아니라, 그 사소한 승부에 목숨을 거는 캐릭터들의 불필요한 열정이다. 모든 것이 효율성으로만 재단되는 웃음기 없는 세상에서, 웃음이란 가치는 이처럼 효율성 너머에서 출현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얼간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아쉬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가스파드와 <선천적 얼간이들>의 새 시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그와 그 친구들이 더 많은 ‘삽질’을 하고 돌아올 때까지.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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