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연이..' 유명한 이색 등번호의 숨겨진 이야기 TOP13
[STN스포츠=이원희 기자] 축구선수들에게 등번호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중 이색 등번호로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게 하는 선수도 있다. 과연 이들은 무슨 이유로 특별한 등번호를 달게 되었을까. 이에 유럽축구 전문매체 '90MIN'가 유명한 이색 등번호의 숨겨진 이야기 TOP13를 선정했다.
13. 비센테 리자라쥐 / 69번
리자라쥐는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풀백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빠른 돌파와 정확한 크로스. 리자라쥐는 월드컵 우승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리자라쥐는 등번호 69번을 달고 뛰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리자라쥐가 1969년도에 태어났고 키가 169cm였으며, 당시 몸무게도 69kg였다. 리자라쥐는 뮌헨과 함께 리그 우승과 DFB 포칼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12. 니클라스 벤트너 / 52번
2009/10시즌 아스널에서 활약하던 벤트너는 등번호를 26번에서 52번으로 바꾸었다. 이전 등번호가 새겨진 자신의 유니폼을 산 아스널 팬들을 위해서 벤트너는 사비까지 털어서 보상을 해줬다. 당시 구단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벤트너는 "이전부터 등번호 26번을 바꾸고 싶었지만 올 시즌에야 꿈을 이뤘다. 개인적으로 52번은 특별한 숫자다. 새로운 시즌에 좋은 일이 가득할 것만 같다"고 전했다. 현재 벤트너는 볼프스부르크에서 등번호 3번을 달고 있다.
11. 스티븐 바이워터 / 43번
바이워터가 즐겨 쓰는 등번호 43번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바이워터가 16살 때 웨스트햄에 입단. 골키퍼 코치인 레스 실리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실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톤 빌라에서 활약했다. 바이워터는 실리의 영향을 받으며 선수로서 성장했다. 하지만 2001년 43세의 나이로 실리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 이후 바이워터는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나의 멘토셨고 내 모든 삶을 가르쳐 주신 분이다. 경기장 밖에서도 훌륭하신 분이었다. 항상 그를 기억하겠다"며 등번호 43번을 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10. 이반 사모라로 / 18번
인터 밀란에 이적한 사모라노는 등번호 9번을 달고 싶었지만, 당시 9번은 브라질 공격수 호나우두의 몫이었다. 차선책으로 사모라노는 등번호 10번을 원했지만 이마저도 로베르토 바조가 차지했다. 결국 사모라노는 등번호 18번을 선택. 사모라노는 1과 8사이에 +를 달아 9번을 만들었다.
9. 마리오 발로텔리 / 45번
사모라노와 비슷한 사례다. 이제 등번호 45번은 발로텔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2014년 리버풀 유니폼을 입었던 발로텔리는 "인터 밀란 시절, 나는 어린 공격수에 불과했고 3~4경기를 뛰는 것이 전부였다. 어린 선수들은 등번호 36번에서 50번 사이에서만 고를 수 있었다. 때문에 등번호 45번을 선택했다. 4와 5를 더하면 9번이 된다. 45번을 단 후 치른 네 경기서 모두 득점했다. 이 번호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고 계속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
8. 호나우지뉴 / 80번
바르셀로나에서 호나우지뉴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활약했지만, AC밀란 이적 후에는 등번호 80번을 받았다. 이는 호나우지뉴의 출생연도인 1980년에서 따온 것이다. 이외에도 밀란은 안드레이 셰브첸코가 자신의 출생연도인 1976년을 따와 등번호 76번으로 팀에 복귀했고, 1984년 생인 마티유 플라미니도 84번을 달았다. 1992년 생인 엘 샤라위도 마찬가지. 92번을 등번호로 삼았다.
7. 오시 아르딜레스 / 1번
토트넘의 전설이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였던 아르딜레스는 1982년 월드컵에서 등번호 1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아르딜레스의 포지션이 미드필더였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선수들의 알파벳 순서대로 등번호를 부여했기 때문. A로 시작했던 아르딜레스는 꼼짝없이 1번을 받았다(단, 디에고 마라도나의 10번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등번호였다). 아르딜레스는 1978년 월드컵 정상에 올랐을 때도 등번호 2번을 달고 뛰었다. 1974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수비수 조지 카라스코사와 루벤 글라리아, 라몬 에레디아는 등번호 7번, 9번, 10번을 달았다. 네덜란드 대표팀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드필더 뤼트 헤일스가 등번호 1번, 골키퍼 얀 용블루트의 등번호는 8번이었다.
6. 다니엘 알베스 / 22번
바르셀로나에서 알베스는 등번호 2번을 달고 5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세계 수준급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2013년 놀랍게도 알베스는 자신의 등번호로 22번을 선택. 당시 알베스의 소속팀 동료 에릭 아비달이 간암으로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갔고, 알베스는 아비달을 적극적으로 도왔다(알베스가 아비달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해주겠다고 했다는 비화도 있다). 이후 알베스는 아비달이 사용했던 등번호 22번을 물려 받았다. 아비달은 "우리는 좋은 친구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알베스는 좋은 사람이며 언제나 나를 지지했다"며 고마워했다. 올 시즌 알베스는 등번호 6번을 달았다.
5. 지안루이지 부폰 / 88번
2000/01시즌 파르마에서 부폰은 등번호 88번을 달았다. 당시 부폰의 등번호를 두고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았는데 이유는 등번호 88번이 나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알파벳 H가 앞에서 8번째 글자이고, 'HH'는 '하일 히틀러(Heil Hitler)'를 의미했다. 이에 부폰은 "88이라는 숫자가 축구공 4개처럼 보여서 선택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강한 힘과 집중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복귀하고 싶은 의지가 담겨있다. 처음에는 00번을 달려고 했지만 협회에서 불가능하다는 통보가 있었다. 01번도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88번을 선택했다"고 반론했다. 하지만 한 시즌이 지나고 부폰의 등번호는 77번으로 바뀌었고 유벤투스에서는 1번을 달았다.
4. 안드레아 피를로 / 21번
21번은 피를로의 상징적인 등번호다. 그렇다면 피를로는 왜 등번호 21번을 선호할까. 이 같은 질문에 피를로는 "나의 아버지가 21번가에서 태어나셨다. 또한 나의 결혼기념일이며 세리에A 데뷔 일이기도 하다. 일찍이 나의 등번호는 정해졌고 앞으로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2011년 피를로는 카타르 리그 이적설에 휘말렸을 때 이적 제의를 거절. 당시 시간이 21: 21분이라고 밝혔다(물론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후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 좋은 생활을 보냈고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경험했다.
3. 데이비드 베컴 / 23번
199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베컴은 등번호 7번을 달고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2003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는 등번호 7번이 아닌 23번을 받았다. 이미 레알의 전석적인 선수 라울 곤잘레스가 7번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농구계에서 23번은 '그분'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로, 농구선수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번호다. 이후 베컴은 등번호 23번에 대해 "모든 것은 대체될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등번호 23번은 쉬운 선택이었다. LA갤럭시로 이적할 때도 23번을 유지하고 싶었다. 레알에서 23번을 뛰고 훌륭한 나날들을 보냈다. 또한 나는 마이클 조던의 팬이다"고 전했다.
2. 펠레 / 10번
펠레의 존재로 등번호 10번의 가치는 귀중해졌다. 펠레는 22년의 선수 생활 동안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터트린 축구계의 전설이다. 브라질 국가대표로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77골을 기록. 월드컵 14경기에 나서 12골을 넣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펠레는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선수로 출전.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해 브라질에 월드컵 우승컵을 선사했다. 하지만 펠레의 등번호 10번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 대표팀은 무작위로 선수들의 등번호를 지정했고, 우연히 펠레가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물론 이 단순한 일화가 축구 황제의 서막을 알렸다.
1위 ---- / 14번
때는 1970년, 아약스 소속이었던 한 선수가 PSV에인트호벤전에서 등번호 14번을 달고 나왔다.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그 선수의 본래 등번호는 9번이었고, 11번 보다 높은 등번호는 후보 선수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간 그 선수의 등번호는 소속팀 동료 게리 뮤렌이 달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경기 전 뮤렌이 라커룸에서 자신의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찾지 못했고,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그 선수는 자신의 유니폼(9번)을 뮤렌에게 줬다. 대신 그 선수는 등번호 14번을 선택. 시간이 흘러 2012년 그 선수는 "똑같은 번호인데 무엇이 대수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 그 선수는 토탈 사커의 창시자이자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3차례 수상한 요한 크루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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