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농장에서 만나는 마세라티의 역사, '움베르토 파니니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 이탈리아편 첫 테이프를 끊었던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서 불과 5분 거리에는 또 하나의 명차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마세라티인데요. 본사와 공장이 오래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면이 이 도시를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만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사진1> 마세라티 본사 / 사진=마세라티

그런데 궁금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 모든 자동차 회사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마세라티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사엔 쇼룸만이 있을 뿐 주변을 포함해 아무리 둘러봐도 마세라티 간판이 걸린 박물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마세라티 역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마세라티의 역사적 자동차 일부가 전시된 곳이라고 해야겠군요. 마세라티 본사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정도 외곽으로 나가면 파니니 가족 운영의 유기농 농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진2> 파니니 유기농 농장 입구 / 사진=이완

이 농장 안에 움베르토 파니니(Umberto Panini)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개인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독특하죠? 자동차 박물관이 젖소를 키우고 치즈를 생산하는 농장 안에 있다니 말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젊은 시절 기계 만드는 일을 하던 움베르토 파니니는 결혼 후 형제와 함께 파마산 치즈를 생산하는 가족 농장을 운영합니다.

그가 치즈 생산에 몰두하는 사이 1993년 피아트는 마세라티 주식을 전부 인수하며 새로운 마세라티의 주인이 되죠. 이때 마세라티엔 자동차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시트로엥으로부터 마세라티를 인수했던 아돌포 오르시가 개인적으로 모아오던 자동차를 대중에 공개한 게 계기였죠.  

그런데 피아트에 마세라티를 매각한 드 토마소(아르헨티나 출신의 자동차 사업가로 마세라티에서 레이서로도 활약) 아들이 마세라티 박물관에 있는 자동차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마세라티는 반납 요청에 응했고, 일부를 제외한 19대의 역사적인 마세라티 자동차가 반납됩니다. 돈이 필요했던 드 토마소 집안은 19대 모두를 런던에서 경매로 처분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데나시 관계자들은 급하게 회의를 소집합니다. 지역 유산이라고 여긴 자동차들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논의 끝에 파니니 그룹에 도움을 청하기로 합니다. 드라마처럼 경매가 열리기 직전 마세라티 모델 모두를 구입하는 과감한 결정을 한 움베르토 파니니 덕에 차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치즈 농장 한 건물로 옮겨진 19대의 마세라티 모델들은 그때부터 움베르토 파니니 컬렉션으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사진3> 파니니 가족이 운영 중인 농장 / 사진=이완


<사진4> 매표소 안에 걸려 있는 움베르토 파니니 포스터 / 사진=이완

  

◆ 치즈공장 견학부터 박물관까지

파니니 마세라티 박물관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미리 신청을 해야 합니다. 일종의 투어 형식을 하고 있는 박물관 견학은 오전 9시부터 약 1시간 간격을 두고 모두 5회에 걸쳐 옴브레 농장과 마세라티 콜렉션을 함께 둘러보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죠.

<사진5> 스케줄표. 현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운영되고 있다 / 사진=이완

자동차 보러 왔다가 뜬금없이 치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치즈 한 덩이씩 사 들고 가는 낯선 광경도 보게 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파니니 마세라티 박물관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수동 변속기가 달린 피아트 500을 끌고 옴브레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같은 시간 투어를 신청한 이들은 약 스무 명 정도. 이탈리아, 미국, 한국 등 방문자들 국적도 다양했습니다.

<사진6> 이탈리아에서 피아트 500은 당연했다 / 사진=이완

직원의 안내에 따라 먼저 치즈 저장 창고로 갑니다. 어떻게 치즈를 생산하는지부터 지역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치즈와 각종 유기농 제품 판매점으로 갑니다. 치즈 시식도 가능한데, 저도 치즈 1kg을 샀습니다. 젖소들 우유를 짜는 모습 등을 약 30여분에 걸쳐 둘러보고 나면 모두가 원하던 그곳, 마세라티 클래식카들이 전시돼 있는 전시관으로 건물 앞에 도착합니다. 

<사진7> 치즈저장고 / 사진=이완


<사진8> 파니니 자동차 박물관 건물과 주변 풍경 / 사진=이완

2층으로 되어 있는 전시관은 오래됐고 작았습니다. 하지만 사연을 알고 만나는 마세라티 모델들이라 그런지 차를 보는 느낌이 조금은 남다르더군요. 들어서면 밟게(?) 되는 마세라티 로고와 고전적인 느낌의 기둥들 사이에 늘어선 마세라티 모델들이 전체적으로 엔틱한 느낌을 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빗길을 뚫고 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진9> 박물관 내부 전경 / 사진=이완

이제부터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자신만의 관람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저는 가장 먼저 중앙에 나란히 자리한 ‘마세라티 6C/34와 귀여운 카우보이 캐릭터 그림이 박힌 마세라티 420M/58에 눈이 갔습니다. 붉은색의 마세라티 6C/34는 1934년 레이싱을 위해 만들어진 6대의 레이싱 자동차 중 하나로, 당시 F1은 경주차의 무게를 750kg으로 제한합니다. 마세라티는 이 규정을 지키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세라티 8CM(8기통 엔진)을 개조했는데 이게 6C/34 (34년에 만들어진 직렬 6기통 엔진의 6C라는 뜻)였습니다.

<사진10> 6C/34 (사진 왼쪽)와 420M/58 / 사진=이완

마세라티는 이처럼 레이싱 자동차 제작이 그 역사의 시작입니다. 1914년 기계 엔지니어와 레이서 등으로 활약하던 5명의 마세라티 형제들이 고향 볼로냐에 자동차 생산 공장 문을 엽니다. 경주용 자동차를 제작이 목적이었던 만큼 마세라티는 레이싱과 밀접했죠. 1차 대전 이후 5형제 중 알피에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경주용 자동차 제작에 들어갔고, 1926년 티포 26이라는 차를 내놓는데 이게 마세라티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 모델이었습니다.

<사진11> 마세라티 형제들 / 사진=위키피디아

그렇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마세라티는 20여 회에 이르는 각종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립니다. 하지만 수석 엔지니어였으며 마세라티 사업의 핵심이던 알피에리 마세라티가 레이싱 대회 사고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뜨자 기업은 동력을 잃고 맙니다.

결국 1937년 모데나 출신의 사업가 아돌포 오르시가 인수하면서 마세라티 형제들의 경영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볼로냐에 있던 마세라티 본사를 자신의 고향 모데나로 옮긴 오르시는 처음에 성공적인 레이싱 역사를 써 내려 가는 마세라티를 자신의 다른 사업체 홍보에 활용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싱 자동차 제작과 대회에 빠져들었고, 1960년대 후반 시트로엥에 회사를 넘기기 전까지 30여 년 회사를 이끌며 의미 있는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420M/58, 일명 엘도라도는 레이스용 자동차 제작을 중단한 마세라티가 엘도라도 수드(Eldorado Sud)라는 아이스크림 회사의 의뢰로 1958년에 만든 단 1대만 제작이 된 귀한 경주용 자동차입니다. 4.2리터 엔진은 무려 410마력의 출력을 자랑하죠. 이 차는 2년간 실제로 대회에 참가했는데 당시 레이서는 스털링 모스였습니다. 마세라티는 스털링 모스뿐만 아니라 타지오 누볼라리, 후안 마누엘 판지오 등의 세계적인 카레이서들과 함께 레이싱 대회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사진12> 아이스크림 회사가 운영한 레이싱팀이어서 그랬을까?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 사진=이완


<사진13> 스털링 모스가 마세라티 250F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2기통 엔진이 들어간 마세라티 대표 레이싱 자동차 250F 역시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 사진=마세라티

하지만 레이싱 자동차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오르시 가문은 고급 쿠페를 내놓기 시작합니다. A6는 마세라티가 지금의 고급 스포츠 세단 브랜드가 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빠르고 큰 세단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고급 세단 콰트로포르테 1세대 역시 오르시가 경영자일 때 나온 모델이었습니다. 오르시의 이런 선택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마세라티는 레이싱 카 생산 브랜드로 짧게 머물다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사진14> 1953년부터 3년 동안 생산되었던 A6의 파생 모델 A6GCS. 피닌 파리나의 차체 디자인이 아름다운 베를리네타(쿠페)는 페블비치 콩코드 델레강스에서 수상하는 등 여전히 인기가 높다. 52대만 생산 / 사진=이완


<사진15> 1956년에 생산된 A6G/54 (사진 상) 전면에 있는 유명한 로고는 마세라티 형제 중 하나인 마리오가 고향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 있는 조각상 바다의 신 삼지창(트라이던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 하) 차명 A6에서 A는 알피에리에서 따왔으며 숫자 6은 6기통 엔진을 뜻함 / 사진=이완

마세라티 경영권이 시트로엥으로 1968년 넘어오면서 많은 변화를 맞게 되지만 오르시 가문 때부터 계획되었던 기블리(Ghibli) 출시 계획은 예정대로 이뤄졌습니다. 미국 매체가 196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 TOP 10에 넣을 만큼 멋진 디자인의 이 GT카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기아(Ghia)에 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손끝에서 나왔죠.

<사진16> 2도어 2+2 쿠페인 기블리. 5년 동안 약 1,200대가 생산됐다. 기블리는 이집트 사막 폭풍의 이름

1세대 기블리 등장 후 2세대가 나오기까지 약 2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사이 디자인은 크게 변했죠. 그리고 2013년 기블리는 다시 한번 큰 폭의 변화를 맞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그 기블리가 이때 나온 것입니다. 2도어 쿠페로 시작한 이 차는 이제 고급 세단으로 성격을 달리하며 브랜드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사진17> 시트로엥이 마세라티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티포 124 프로토타입 (1974년) 결국 생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 사진=이완


<사진18> 캄신(Khamsin) 역시 시트로엥 시절(1975년)에 나온 모델로, 같은 시기에 등장한 메락(Merak), 보라(Bora) 등과 함께 너무 소수의 독특한 취향만을 고려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사진=이완

기블리로 활기를 되찾나 싶었던 마세라티는 석유파동 등의 영향으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결국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트로엥은 마세라티 매각을 결정합니다. 자칫 공장 폐쇄까지 갈 수 있는 위기 속에서 드 토마소가 1975년 마세라티를 인수해 부활을 선언하는데요. 그런 드 토마소 역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피아트에(1993년) 마세라티를 넘깁니다.

이후 피아트 그룹에 속한 마세라티는 페라리와 피아트의 지원에 힘을 얻어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화제 속에 420M/58 엘도라도에서 영감을 얻은 MC20과 같은 스포츠카를 내놓기도 했죠. 페라리 의존도를 줄이는 등, 마세라티 전통을 유지하며 동시에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진19> 2018년 굿우드 페스티벌에 질주하고 있는 엘도라도 (사진 상)와 그것에서 영감은 얻어 만든 MC20 (사진 아래) / 사진=마세라티

이곳에는 마세라티의 자동차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품들, 그리고 1, 2층에 나뉘어 전시돼 있는 바이크와 자전거 등을 둘러보는 재미 또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954년에 생산된 마세라티 바이크 160 T4가 눈길을 끕니다.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마세라티 로고가 달린 오토바이가 별도의 공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사진20> 1954년에 만들어진 마세라티 오토바이 160 T4 / 사진=이완



<사진21> 2층 전경


<사진22> 자칫 죽은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조차 정성을 들여 꾸며 놓았다

파니니 마세라티 박물관은 공간이나 전시 규모 등에서는 보잘것없지만 현존하는 가장 의미 있는 마세라티 컬렉션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지역 유산을 지켜냈다는 열정이 만든 공간이라는 점에서 어느 곳 못지않게 소중한 박물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적한 농촌 지역에 있는 치즈 농장을 둘러보는 색다른 경험도 함께 할 수 있는 파니니 마세라티 박물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자동차 박물관을 찾을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일정 속에 이곳을 포함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진23> 2층에서 본 파니니 자동차 박물관 전경 / 사진=이완

 

글, 사진/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움베르토 파니니 자동차 박물관 (Umberto panini motot museum)

브랜드명 : 마세라티

국가명 : 이탈리아

도시명 : 모데나

위치 : Str. Corletto Sud, 320, 41123 Modena MO, 이탈리아

건립일 : 1997년

휴관일 : 일요일 (내부 사정에 따라 휴관하기 때문에 미리 이메일 등을 통해 확인 필요)

이용시간 : 현재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입장료 : 5유로 입장료를 받았으나 최근에는 무료입장으로 바뀜

홈페이지 : paninimotormuseum.it

  

* 농장 안에 편하게 주차가 가능하며, 렌터카가 아닌 경우 대부분 택시를 타고 방문합니다. 또한 현지 농장에서 만든 다양한 유기농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이 있습니다. 농장 상황에 따라 박물관 운영이 자주 바뀌는 편이라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는 게 좋으며,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