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그사건]34년만에 찾은 진실..이춘재·윤성여의 뒤바뀐 운명

정경훈 기자 2021. 1. 2. 09:5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경찰·검찰·법원은 모두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국가기관의 잘못으로 윤성여씨(53)가 이춘재(57) 대신 20년을 복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윤씨가 억울한 누명을 벗는데까지는 34년이 걸렸다. 윤씨는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8차 사건도 내 짓" 2019년부터 시작된 '이춘재 연쇄' 진실
(수원=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웃어보이고 있다. 2020.12.17/뉴스1

30년 묵은 진실은 2019년 9월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미제 사건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를 이춘재로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읍)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일이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살인한 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들에서 얻은 DNA를 같은 해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살인 10건 가운데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과 같았다.

범죄를 인정하지 않던 이춘재는 연이은 경찰과 프로파일러들의 조사 끝에 9월 혐의를 인정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14명이고, 34건의 강도·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이춘재가 입을 연 이유로 'DNA 기술 발달' '프로파일러와 이춘재 사이 친밀감 형성' '2009년까지였던 공소시효' 등이 꼽혔다.

이춘재는 이미 잡힌 '범인'이 20년 옥살이를 마친 8차 사건도 사실 자신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 태안읍 가정집에서 당시 중학생 박모양(13)이 희생된 사건이다.

담도 못 넘는데… 윤성여를 어떻게 희대의 살인마로 둔갑시켰나
8차 사건이 일어나던 해 22세였던 윤씨는 경기 화성 소재 농기구 수리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진범을 찾아 헤매던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찍었다. 경찰은 윤씨의 낮은 학력 등을 의심의 근거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들은 그해 5~6월 윤씨의 체모를 5~7번 뽑아갔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털과 윤씨 체모에서 모두 금속 성분이 나오자 경찰은 윤씨가 범인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당시 이춘재도 전기 부품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조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경찰은 윤씨 집에 들이닥쳐 저녁먹는 윤씨를 붙잡아갔다. 윤씨는 '담을 넘어 집에 침입해 박양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강압 수사 때문에 경찰이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말한 거짓 증언이었다.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윤씨는 나중에 애초에 담을 넘을 수도, 그 집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씨는 이 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사·사법기관 모두 윤씨에 사과…"다시는 이런 일 없기를"
[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하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2020.11.02. jtk@newsis.com

윤씨는 2009년 모범수로 출소했지만 20년 간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그를 맞이한 것은 전과자 낙인과 냉대뿐이었다. 그러다 이춘재가 8차 사건 진범이 본인이라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재심을 신청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지난해 5월 19일부터 8차 사건 재심 공판을 진행했다. 재심의 주요 관건은 이춘재, 윤씨 등 사건 관계자의 주장, 증언이었다.

재판부는 11월 2일 이춘재를 법정에 불렀다. '진범'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피고인이 아닌 증인으로서 재판장에 출석했다. 이춘재는"8차 사건을 포함해 화성·청주에서 발생한 14건의 진범은 나"라고 증언했다. 특히 8차 범행 과정에 대해 상세히 증언했다.

[수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있다. 2020.12.17. photo@newsis.com


법정에 나온 당시 사건 담당 형사도 "윤씨가 담을 넘었다"고 하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고 결국 윤씨에게 사과했다. 검찰도 11월 19일 윤씨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면서 사죄를 표했다.

재판부는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의 구성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윤씨 진술은 불법 체포·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져 증거 능력이 없다"며 "이춘재의 자백 진술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 증거들과 부합해 신빙성이 높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춘재를 포함한 모든 이를 용서한 윤씨는 "나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압수사를 했던 경찰도 이날 윤씨에 대해 공식 사죄하며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 조력을 실질화하고 수사 전반에 엄격한 심사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등의 방안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