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히스토리] 렉서스, 품질로 승부하다

서클 F

“우리는 세계 최고에 도전할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습니까?” 1983년 8월 도요다 에이지 회장이 임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당시 토요타는 대중차 시장에서 명성을 쌓고 있었지만, 고급차 시장엔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값싸고 좋은 차’로 승부 해온 기존 토요타 이미지 때문이었다. 고급 브랜드가 절실했다.

그러나 대중차 브랜드가 고급 브랜드를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상류층의 지갑을 열려면 깊은 역사와 명성, 뛰어난 품질의 삼박자가 필수였다. 후발주자인 토요타에겐 ‘깊은 역사와 명성’이 없었다. 그래서 품질만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무한 투자, 무한 기간 프로젝트. 렉서스 첫 신차 개발 프로젝트 ‘서클 F’는 그렇게 시동을 건다.

최고속도 시속 250㎞, 공기저항계수값 Cd 0.28~0.29, 시속 60마일(97㎞)로 달릴 때 실내 소음 58㏈ 이하. 당시 서클 F 프로젝트 수석 엔지니어 스즈키 이치로가 선언한 개발 목표다. 당대 어떤 세단도 도달하지 못한 수치였다. 토요타는 고급차 시장에서 걸음마 떼기도 전에 달리기 1등을 목표로 삼았다.

토요타는 전사적인 역량을 쏟아 붓는다. 6년간 1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1조 1,800억 원)를 들여 테스트카 450대를 만들고, 누적 434만㎞의 시험주행을 거쳤다. 최고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돌 테스트용 프로토 타입만 100대나 만들어 박살냈다. 1989년 1월, 최초의 렉서스 LS 400이 모습을 드러낸다.

  

위기를 뒤집다

LS 400은 등장과 동시에 화제를 일으켰다. 최고출력 250마력대 성능을 내는 V8 4.0L 엔진을 바탕으로, 최고속도 시속 250㎞로 달릴 수 있는 성능과 고효율까지 만족시켰다. 거대한 차체에도 불구하고 무게를 1,700㎏대로 묶은 결과였다. 더욱이 시속 100㎞로 달릴 때 정숙성은 동시대 대형세단을 초라하게 만들 만큼 빼어났다.

뛰어난 품질은 곧 인기로 이어진다. 1989년 9월 4,500대, 10월 3,400대로 값비싼 대형 세단이 대중 세단처럼 팔려나갔다. 당시 미국 한 자동차 전문지는 토요타가 고급 자동차 업계에 악몽을 안겼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렉서스의 등장으로 정체 중이던 미국 고급차 시장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LS 400은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1989년 9월부터 예상치 못한 고객 불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 고객은 테일램프 변형, 다른 고객은 배터리 방전, 또 다른 고객은 정속 주행 고장을 알려왔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렉서스 브랜드엔 출범 후 첫인상을 망칠 수 있는 치명적 상황이었다.

1989년 12월, 렉서스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그간 팔려나간 LS 400 8,000여 대를 전량 회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위기 전담반을 만들어 렉서스 기술자 전원을 리콜 업무에 투입한다. 목표 기간은 단 20일.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목표였지만, 렉서스는 20일 이전에 모든 차를 리콜하는데 성공했다.

전례 없는 신속한 대응이었다. 당시 <타임>지는 “렉서스가 단번에 브랜드 로열티를 만들어냈다. 고급차 시장에서 볼 수 없던 일이다”라고 평가했고, 훗날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렉서스는 재앙이 될 뻔했던 상황을 맞아 오히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고객 서비스 명성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이후 잠깐 주춤했던 판매량은 리콜 사태로 도리어 날개를 달아 이듬해인 1990년 미국 고급 대형세단 판매 1위로 우뚝 선다. LS 400은 이후로도 꾸준히 판매를 이어가 총 생산량 16만5,000대를 넘어서며 렉서스 브랜드의 초석을 단단히 다진다. 뛰어난 품질과 섬세한 서비스,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렉서스 두 번째 성공 신화

렉서스는 LS 400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 럭셔리 자동차 판매 1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충격은 점차 무뎌지기 마련, 1990년대 중반 렉서스 판매량은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정통 SUV LX와 스포츠 세단 GS가 잇따라 등장했지만, 획기적인 반등을 이루진 못했다. LS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파격이 다시금 필요한 때가 다가왔다.

기회를 포착한다. 90년대 중반 급성장했던 SUV 인기가 잦아들고 있었다. 다재다능한 실용성이 반짝 주목받았으나, 털털거리는 승차감과 게걸스럽게 기름을 붓는 연비, 비싼 가격이 다시금 세단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렉서스가 고급 SUV라며 내놓았던 LX 450도 SUV 본질은 넘어설 수 없었다.

렉서스가 내놓은 해답은 ‘고급 세단 승차감을 품은 SUV’다. SUV 본질부터 다시 의심했다. SUV 승차감이 나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다리꼴 프레임 골격. 렉서스는 과감히 뼈대를 발라내고 준대형 세단 ES를 밑바탕 삼는다. 아울러 사륜구동 시스템, 조향 장치, 서스펜션을 모두 험로가 아닌 도로 위에 맞춰 조율한다. 당시 SUV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1997년 12월 마침내 RX 300이 등장한다. 제각각인 언론 반응에서 이 차의 남다른 개성을 엿볼 수 있다. <윌 스트리트 저널>은 “이도 저도 아닌 차”, <USA 투데이>는 “지루한 RX 300은 트럭다운 강점은 하나도 없는 차”라고 비난한다. 반면, <뉴스데이>는 “SUV 타느니 세단을 탔을 이들을 겨냥한 주인공”, <뉴욕 타임스>는 “개인적으로 SUV 중 구미가 당기는 유일한 자동차”라고 호평을 내놓기도 했다.

시장 반응은 후자에 가까웠다. RX 300은 1998년 출시 첫해 4만2,191대를 판매고를 올렸고, 이듬해엔 7만3,498대를 판매하며 브랜드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다. 이에 힘입어 1999년 렉서스 전체 판매는 18만5,890대를 기록했다. RX 출시 전인 1997년 매출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RX는 렉서스를 다시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 꼭대기에 올려놨다. 나아가 도심형 SUV 바람을 일으켰다.

  

하이브리드


오늘날 렉서스의 가장 큰 무기는 하이브리드다. 렉서스는 2004년 2세대 RX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 중 처음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었다. 2007년엔 LS 600h에 세계 최초로 V8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적용해 앞서나갔다. 오늘날 렉서스는 콤팩트 해치백 CT 200h부터 대형 세단 LS 500h까지 거의 모든 라인업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는다.

렉서스 미래 이야기에서도 하이브리드를 떼어놓을 수 없다. 렉서스는 2004년부터 도입해온 농익은 하이브리드 기술을 바탕으로 전동화 미래를 꿈꾼다. 하이브리드에 들어가는 배터리와 파워 컨트롤 유닛, 전기 모터는 모든 전동화 자동차가 공유하는 핵심 기술이다.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다. 렉서스는 전기차, 수소 연료 전지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자율주행 기술과 전동화 비전을 그린 LF-30 일렉트리파이드 콘셉트를 선보였다. 또한,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양산차 UX 300e도 해외 시장에서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글/로드테스트 편집부

사진/렉서스

  

*참고문헌

<도요타 존경받는 국민기업이 되는 길> |살림| 이우광

<렉서스 세계를 삼킨 거대한 신화> |거름| 체스터 도슨

<렉서스 신화 창조의 비밀> |동양문고| 밥 슬리버

<도요타 끝나지 않는 도전> |아사히 신문사| 중앙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