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 겪어보니 알겠다, 물은 순환해야 한다는 걸 [다른 삶]
[경향신문]
고백하자면 나는 인간의 개체는 좋아하되 ‘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로서 인류에는 조금 혐오스러운 감정이 있었다. 24시간 아무 때고 수도를 틀면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오는 세상을 누리면서 그 무슨 오만이었나 싶다. 문명은 축복이다, 어떤 면에서는. 물 부족에 시달리는 섬에서 건물을 짓다보니 사람이 이렇게 겸손해진다.

누사프니다의 우기는 서너 달이면 끝난다. 땅이 건조하고 비탈져서 빗물이 제대로 고이지도 않는다. 큰 계곡이나 호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이 섬은 대대로 가뭄과 기근으로 유명했다. 1920년대에는 오염된 물 때문에 이웃섬 누사렘봉안에서 30여명이 사망하고, 누사프니다 한 마을에서는 집단 불임이 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1990년대 수도가 본격 보급되기 전까지 남쪽 지대 사람들은 샘물에 가려고 목숨 걸고 절벽을 오르내렸다. 곳곳에 저수지가 지어진 지금도 물이 넉넉하진 않다. 3~4년 전부터 급속히 인구가 유입되는 바람에 이제는 수도관이 지나는 위치라도 사용 허가를 얻기 힘들어졌다.
자, 그럼 어떻게 물을 구할 것인가. 물론 수도가 가장 좋지만 안정적이지 않다. 저수지와 수도관이 오래되어 곳곳에서 누수가 일어나고, 정전으로 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단수가 되기도 한다. 내가 2017년에 잠시 머물던 집이 그랬는데, 매일 한두 시간씩 정전과 단수가 벌어졌다. 2018년에는 여러 마을이 수도가 끊긴 채 2주를 보내기도 했다. 어디선가 수도관이 파손되었는데 그 위치를 파악하고 수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호텔들은 문을 닫고, 기왕에 들어와있던 손님들은 생수를 사서 이를 닦았다. 2020년은 이례적으로 일 년 내내 비가 왔고 관광객이 끊겼는데도 연말이 되자 섬 전체의 물 저장량이 위기 수위에 다다랐다. 지자체가 일제 점검을 해서 저수지와 수도관 여러 곳의 누수를 찾아냈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노출된 채 이리 휘고 저린 휜 가느다란 플라스틱 수도관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공 수도가 있건 없건 물 탱크 설치는 필수다.

내가 지금 사는 건물에도 자체 물 탱크가 있다. 공공 수도로 탱크를 채웠다가 사용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2018년 수도 대란 때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최근 주택을 짓는 친구들은 주로 이웃에게 물값을 주고 기존에 허가난 수도관을 연장해서 물 탱크를 채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열대지방에서 탱크에 보관된 물의 상태가 어떨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 때문에 필터 시스템까지 갖춰야 하니 개인 주택으로선 저렴한 해결책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직접 우물을 파는 것이다. 북쪽 저지대에 해당된다. 이곳은 해수가 땅에 스며들어 담수화된 물에 접근하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하지만 북쪽 마을이라도 조금만 언덕으로 올라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 친구는 굴착기를 동원해 땅을 수백 미터나 파내 물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쭈방(Cubang,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쿠방’이라 게재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발음은 ‘쭈방’이다. 인도네시아는 영어와 동일한 알파벳을 사용하지만 발음이 다르다)’이라는 재래식 물 탱크가 있다. 이것은 수도가 보급되기 전, 수원지에서 먼 고지대 사람들이 주로 쓰던 방식이다. 우물처럼 4~5m 깊이로 땅을 파고 석회와 시멘트를 이용해 방수 처리를 한 다음 경사 지붕을 얹어서 빗물을 모으는 시설이다. 물론 우기에 여기 모은 빗물만으로 긴긴 건기 동안 일가족이 밥을 하고 목욕을 하고 농사를 짓기는 힘들다. 이로 인해 옛날 누사프니다 사람들은 물을 아끼는 게 생활화되어 있었다. 목욕은 몇 시간 거리의 우물에 가서 하거나 코코넛 한 통 정도의 물만 사용했다. 요즘도 누사프니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쭈방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은 수도 보급 후 그냥 방치되거나, 농업용으로만 사용된다. 그런데 요즘 이 동네 외국인들 사이에서 쭈방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도 사용 허가 더는 안나는 곳서
집짓기는 물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재래식 물탱크 ‘쭈방’에 빗물 모아
흙·식물로 정화해 다시 사용하고
하수 순환 시스템 통해 돌려쓰고
최소의 물로 최대 효용 꾸리면서
한 줄기 수도에 드는 노력을 체감
누사프니다보다 앞서 개발된 인근 섬들은 물 부족 문제도 먼저 겪었다. 누사렘봉안이나 길리 에어의 해변 호텔에 가면 샤워할 때 물에서 짠내가 나거나 기분 나쁜 미끈거림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해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수도에 섞어 쓰는 것이다. 누사프니다에도 곧 벌어질 일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유예되었을 뿐이다. 이건 내 집에 수도 허가가 나느냐 마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끊긴 동안에도 누사프니다의 건축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아서 주택과 리조트가 계속 지어지고 있다. 나만 해도 리조트 한 곳에 투자를 했고 아직 외국인이 살지 않는 한적한 산꼭대기에 집과 개인 수영장을 짓고 있다. 물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관여한 리조트에서는 자체 물 순환 시스템을 개발했다. 흙과 식물을 이용해 빗물을 정화해서 상수와 수영장에 사용하고, 하수는 다시 자연 정화해서 상수에 합류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방 여섯 개짜리 리조트에 수영장만 두 개가 되었고, 그 두 수영장과 맞먹는 크기의 식물 필터 시설이 필요했다. 흙과 식물을 이용하는 에코 수영장이 듣기에는 좋은데 막상 가보면 녹조가 끼고 시야가 탁해서 몸을 담그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미 지어진 에코 수영장에 뒤늦게 일반 수영장처럼 화학 약품을 썼다가는 애써 키운 정화 식물들이 죽어버린다. 이 때문에 대지의 낙차를 이용해 끊임없이 물을 순환시키고, 최악의 경우 소량의 약품을 쓸 수 있도록 정화 시설과 수영장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멋진데 이게 실제로 구현될지는 모르겠다. 같은 방식을 사용한 수영장을 발리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영장은 아직 막바지 작업 중이다. 4월 말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가 잃을 것은 각자가 투자한 적은 돈이고, 성공하면 얻을 것은 앞으로 이 섬에 지어질 다른 건물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훌륭한 견본, 그리고 에코 리조트라는 간판이다.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집을 짓는 지역은 수도 사용 허가가 더 이상 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쭈방이 중요해졌다. 같은 지역에서 나와 동시에 공사를 시작한 친구는 땅을 샀더니 농구장 크기 쭈방이 딸려 왔다고 한다. 쭈방 공사도 돈이 많이 드는데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다. 내 땅에는 작은 쭈방이 있다. 여기에다 우기에는 빗물을 받고, 건기에는 도로 건너 사는 집주인에게서 수도를 얻어 물을 채울 계획이다. 우기 동안 보다 많은 가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수영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자연 정화시설과 하수 순환 시스템은 여기에도 적용될 것이다. 최소의 물로 최대 효용을! 그게 지상과제다.
한국에서도 물을 아껴 쓰거나 수질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여기서처럼 절실하진 않았다. 물 부족을 현실로 겪어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욕실용품이나 세제를 고를 때면 ‘이게 물에 흘러 들면 잘 정화가 될까?’ 걱정부터 든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하면 세제를 쓰지 않는다. 손빨래 후 헹굼물을 모았다가 변기에 사용하기도 한다. 샤워는 5분 안에 끝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디서 흠씬 두드려 맞거나 고민에 빠진 주인공이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거울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요즘은 이게 고문처럼 다가온다. ‘아 제발 물은 잠그고 고민하시라고요!’ 그러니 누사프니다를 여행하게 된다면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이 흘려버리는 한 줄기 수돗물을 모으기 위해 이 섬에서는 아주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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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