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여름, 페라리가 국내에서 812 슈퍼패스트를 선보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800마력 V12 엔진의 페라리 기함(대량생산 모델 중)이 드리프트 하는 모습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밤(한국시간), 페라리가 812 슈퍼패스트를 기본으로 만든 한정판 모델을 공개했다. 이름하여 ‘812 컴페티치오네’와 ‘812 컴페티치오네 A’다. ‘컴페티치오네(competizione)’는 우리말로 경주를 뜻하며, ‘812 컴페티치오네 A’의 A는 ‘Aperta’ 즉 오프탑이라는 의미다.

812 컴페티치오네의 핵심은 역시 엔진. 1,000마력짜리 PHEV 하이퍼카인 SF90이 나온 마당에 어쩌면 마지막 순수 내연기관 자연흡기 V12가 될지 모를 812 슈퍼패스트의 심장을 개선했다. 최고출력은 830마력, 최대토크는 70.56kgm다.
812 슈퍼패스트와 비교하면 최고출력은 30마력 올랐고, 최대토크는 2.66kgm 줄었다. ‘컴페티치오네’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도록, 보다 레이스 환경에 어울리도록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사이에서 적정 값을 찾은 결과다. 8,900rpm에서 9,500rpm으로 높아진 엔진 최대회전수도 이를 증명한다.

기존 V12 엔진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부품을 손봤다. 커넥팅 로드를 티타늄으로 만들어 40% 무게를 줄였으며, 마찰계수를 줄이기 위해 피스톤 핀과 캠, 슬라이딩 핑거에 DLC(Diamond-like Carbon) 코팅 처리를 했다. 이 밖에도 흡기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저점도 엔진오일을 사용했으며, 가변 배기량 오일펌프를 적용했다.

높아진 출력과 빨라진 회전은 그만큼 식힐 열도 더 많다는 얘기. 812 컴페티치오네는 냉각수 회로를 바꿔 냉각 효율이 812 슈퍼패스트보다 10% 향상됐다. 재설계한 엔진오일 탱크로 812 슈퍼패스트 대비 1kg의 오일을 절약했으며, 덕분에 812 컴페티치오네는 현행 V12 페라리 중 가장 엔진오일을 적게 사용하는 모델이 됐다.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비도 있었다. 분사되는 연료 양과 타이밍을 보정하고, 분사 압력을 높였으며, GPF(Gasoline Particulate Filter)가 장착된 새로운 배기관을 추가했다. 새로운 배기관은 GPF로 인해 약해진 중-고주파 사운드를 되살려 기존 V12 엔진이 들려주던 황홀한 소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했다.
변속기는 7단 듀얼클러치. 기어비는 812 슈퍼패스트와 동일하지만, 제어 방식을 보정해 변속 시간을 5% 단축시켰다.

제동성능도 향상시켰다. 휠과 차체의 연결 부위를 재배치한 덕분에, 812 슈퍼패스트 대비 브레이크 오일의 작동 온도를 30℃ 낮출 수 있었다. 보다 강력해진 성능에 어울리는 변화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 변화도 도드라진다. 앞범퍼 하단 흡기구가 한층 넓어졌으며, 엔진의 뜨거운 열기는 보닛 상단을 가로지르는 카본 블레이드를 통해 빠져나가도록 했다. 앞범퍼 측면 하부 작은 날개들, 카본 블레이드에서 이어지는 듯한 프론트 펜더 하단 카본 공기통로, 뒷바퀴 뒤 주름 등 많은 곳이 달라졌다. 배기구 역시 후방 하단 양 끝에 사각형으로 자리시켜 리어 디퓨저의 폭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812 컴페티치오네에서 공긱역학을 가장 고려한 곳은 바로 리어스크린이다. 전체를 한 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덮고 세 쌍의 보텍스 제너레이터를 달았다. ‘와류 생성기’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리어 스크린을 타고 내려오는 공기 흐름을 유난히 볼록 솟은 리어스포일러 측면으로 틀어 다운포스를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보통 이렇게 특별한 고성능 버전에서 공기역학과 함께 자랑하는 게 바로 경량화다. 812 컴페티치오네가 812 슈퍼패스트보다 줄인 몸무게는 38kg. 가벼운 크랭크축과 리튬-이온 배터리를 얹고, 운전석에는 탄소섬유 트림과 경량 직물 마감재를 썼으며, 방음 소재까지 덜어냈다. 앞뒤 범퍼와 리어 스포일러, 여러 공기 흡입구에 탄소섬유를 확대 적용했다. 카본 휠은 812 슈퍼패스트의 경량 단조 휠보다 3.7kg이 가볍다.

812 컴페티치오네에는 4륜 조향 기능이 포함됐다. 일반적인 4륜 조향은 뒷바퀴가 앞바퀴와 속도에 따라 같거나 반대 방향으로 틀어지는데, 812 컴페티치오네의 4륜 조향 기능은 좌우 뒷바퀴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페라리는 이를 통해서 앞바퀴 반응성을 높이고, 뒷바퀴 그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합 전자제어 시스템인 SSC도 눈길을 끈다. 사이드 슬립 컨트롤 7.0과 전자식 디퍼런셜(E-Diff 3.0), 마찰력 제어(F1-Trac), SCM-Frs 자기유동식 서스펜션, 브레이크 압력, 전자식 독립 후륜 스티어링, 버추얼 쇼트 휠베이스(Virtual Short Wheelbase) 3.0 등 전부 알 수도 없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온갖 전자장비를 하나로 아우르는 장비다.

페라리는 이번에 812 컴페티치오네와 812 컴페티치오네 A를 동시에 선보였다. 이렇게 쿠페 버전과 타르가 모델을 동시에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보통 쿠페를 먼저 공개하고 그 뒤에 오픈탑 버전을 추가하는 식이었다. 덕분에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모델을 처음부터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얼마냐고? 페라리가 밝힌 대략적인 가격은 812 컴페티치오네가 50만 유로(약 6억 8천만 원), 812 컴페티치오네 A가 57만 8500유로(약 7억 8천만 원)다. 생산 대수는 812 컴페티치오네가 999대, 812 컴페티치오네 A가 599대이며, 모두 계약 끝났다. 당신에게 돈이 있든 없든 이미 늦었단 뜻이다.
812 컴페티치오네를 계약한 행운의 999명은 내년 1분기부터, 812 컴페티치오네 A를 선택한 복 터진 599명은 22년 4분기부터 자신의 ‘애장품’을 받아볼 수 있다.
이광환 kwanghwan.lee@car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