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유 국립 자동차 박물관이 위치한 영국 남동부 햄프셔는 바다와 가깝고 드넓은 평지와 숲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곳엔 많은 포유류와 조류의 서식지이기도 한 뉴 포레스트 자연 국립공원이 있죠. 특이하게도 오늘 소개할 박물관은 이 자연 국립공원 내 있습니다.

작은 기차역에 내려 차편을 알아보는데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택시를 타든가, 아니면 국립공원을 둘러보는 투어용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택시를 탔고, 20분 이상 달려 도착했습니다.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마치 공원을 방문한 느낌이었습니다. 입구 우측으로 난 울창한 숲길을 보니 ‘이곳이 자동차 박물관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보리유(Beaulieu) 국립 자동차 박물관은 7개 테마로 이뤄진 복합 공원이고 자동차 박물관은 그 중 한 부분입니다. 수도원, 자동차 박물관, 탑기어 월드, 온 스크린 자동차들, 팰리스 하우스, 비밀군 전시관, 영국식 정원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이 테마파크 안에는 모노레일이 있는데 자동차 박물관 건물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1203년에 세워진 보리유 수도원이 그 시작으로 무려 800년이 넘는 역사가 이 테마파크 안에 있습니다. 보리유 수도원은 소수의 수도사가 생활하던 곳으로 1538년 헨리 8세의 명령에 따라 폐쇄될 때까지 운영되었습니다.

수도원이 문을 닫자 토마스 라이어슬리 사우샘프턴 지역 백작은 수도원 주변 땅까지 사들입니다. 그리고 팰리스 하우스로 불리는 작은 성을 짓게 되죠. 성은 자손들에 의해 두 번에 걸쳐 보수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현재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자동차 박물관의 경우 팰리스 하우스를 대중에 공개하던 시점부터 시작됐습니다. 1952년 백작 후손인 에드워드 몬태규 남작은 역사적인 집을 공개하면서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5대의 클래식 자동차를 함께 전시했습니다. 이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남작은 아예 별도의 건물을 짓고 그곳에 자신들의 역사가 담긴 많은 자동차들을 전시했습니다.

자동차 박물관 주변에는 자동차 관련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 중 ‘탑기어 월드’는 방문객이 우선 찾는 곳인데요. 영국 BBC 간판 자동차 프로그램 탑기어에서 소개됐던 다양한 자동차와 소품들이 있습니다. 정식 박물관처럼 잘 꾸며진 곳은 아니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탑기어 월드 전시실 가까운 곳에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자동차들을 모아놓은 ‘온 스크린’ 전시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즐거워할 만한 그런 공간으로 <미스터 빈>, <제임스 본드> 등에 나온 여러 종류의 자동차가 전시 중입니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영화 <해리 포터>에 등장한 플라잉 자동차가 아닐까 싶네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편에 나온 플라잉 자동차는 위즐리 남매 아버지인 아서 위즐리가 주문을 걸어 놓은 마법의 차였죠. 해리를 구출할 때, 또 론과 해리가 함께 기차역으로 갈 때도 등장해 낯익은 이 차는 포드 앵글리아라는 모델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1939년에 처음 등장해 1968년까지 생산된 앵글리아는 영화 덕분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잘 가꿔진 영국식 정원과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길을 따라 팰리스 하우스 쪽으로 가면 작지만 의미 있는 전시실을 보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비밀 작전을 펼친 특수 작전 본부(SOE) 소속의 특수 요원들이 활약상이 담긴 기록과 소품들이 있는 곳이죠.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곳에 이런 2차 대전 관련 기록들이 전시된 걸까요? 바로 보리유에서 3천 명 이상의 요원들이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리유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독특한 점이 많은 지역입니다. 참고로 뉴 포레스트는 과거부터 유령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동차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팰리스 하우스는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으로 아쉽게도 제가 방문했을 때는 문을 닫아 그 안을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잘 복원된 주방이나 서재, 화려한 거실은 물론, 전시돼 있는 레이디 몬태규의 그림과 자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 시설이 마련돼 있으며, 넓은 식당에서 즐기는 커피와 음식도 꽤 괜찮은 편입니다. 유아 기저귀 등을 교체할 수 있는 공간과 장애인들을 위한 화장실까지, 곳곳에서 방문자를 배려한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하이라이트인 자동차 박물관으로 가보겠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보리유 국립 자동차 박물관의 역사는 1952년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박물관 건물이 완성돼 본격적으로 방문객을 맞은 것은1972년부터인데요. 개인의 수집품으로 시작됐지만 영국 정부의 도움으로 현재는 약 280여 대 이상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수집, 전시돼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이전에 소개했던 영국의 박물관들과는 달리 영국 자동차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자국산 자동차가 주를 이루지만 영국 외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브랜드의 다양한 전시물이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볼거리가 풍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이런 다양한 전시물 구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자동차들이 전시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중앙에는 미국 브랜드 오번이 1936년에 내놓은 Boattail 스피드스터(또는 851 스피드스터)가 놓여 있습니다.(중앙 전시차량은 수시로 바뀝니다.) 천재 디자이너 고든 뷰리히의 작품을 만나는 일은 언제든 반가운 일이죠.

전시 본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 놓인 몇 대의 초창기 희귀 모델들도 관심의 대상인데요. 다양한 역사적, 공학적인 의미를 지닌 자동차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관람객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멈춘 곳은 바로 1875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그렌빌 증기 마차 앞입니다.

로버츠 네빌 그렌빌이라는 발명가가 철도 엔지니어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 증기 마차는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승객용 자체 추진 자동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구동이 될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데요. 약 20마력의 출력을 자랑합니다.
증기 마차 옆에 있는 자동차도 새롭습니다. 에드워드 조엘 페닝턴이라는 미국인 발명가이자 사업가가 1896년 런던에서 만든 ‘페닝턴 자동차’로 마치 자전거처럼 맨 뒤에 손잡이가 있는 곳에 운전자가 앉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최대 4명까지 탑승이 가능했는데 첫 시험 운행 중 타이어가 터졌고,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드 디옹 부통, 다임러, 르노 등에서 만들어진 초기 모델들을 거쳐 전시실 본관에 들어오면 그곳을 가득 채운 클래식카들에 놀라게 됩니다. 전시 공간만 넓고 잘 꾸몄다면 그 어떤 박물관 못지않게 다양하고 희귀한 자동차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를 그런 컬렉션이 아닌가 합니다.


총 2층으로 구성된 전시실을 가득 채운 자동차들 속에서도 유독 시선을 받는 건 1층 중앙에 있던 영화 속 자동차였습니다. 1968년에 제작된 <치티치티뱅뱅>은 영국산 뮤지컬 영화로 제임스 본드의 이언 플레밍 소설이 원작인데요. 이언 플레밍은 실제로 1920년대 경주용 차로 존재했던 치티뱅뱅에서 영감을 받아 하늘을 나는 차라는 소재로 소설을 썼습니다.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을 밥 먹듯 했지만 고철로 팔릴 위기에 처한 고물차를 발명가 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다시 만들고, 이 차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게 영화의 주된 내용으로, 영화 관련한 영상 자료들, 그리고 함께 나온 자동차와 소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 차는 약 10년 전 경매를 통해 최소 20억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포드의 3리터 V6 엔진이 장착돼 있고, 번호판까지 있는, 실제 도로 위에서 운전이 가능한 자동차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에겐 추억이, 아이들에겐 호기심 불러일으킨 특별 전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층에서 또 눈여겨볼 부분은 F1 머신을 포함한 레이싱 자동차들과 100여 대 이상의 다양한 오토바이들입니다. 많은 자동차 박물관을 돌아다녔지만 이곳처럼 다양한 오토바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독일의 P.S SPEICHER 박물관 정도가 아닐까 싶더군요. 옛날 오토바이부터 최신 오토바이까지 종류도 다양해 바이크 좋아하는 분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가득 들어찬 오토바이 전시 공간에는 1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층계가 있습니다. 이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마치 런던 시내 어디를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되죠. 잘 재현된 옛 도시, 그리고 그 옆에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 하나가 보입니다. 윌리엄과 존 터커 부자가 1939년부터 운영했던 정비소로, 1985년에 문을 닫자 정비소에 있던 소품 거의 그대로를 가져왔다고 하네요.

이곳엔 다양한 배달 및 홍보용 차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1972년 미니를 개조해 만든 아웃스팬(Outspan) 오렌지카인데요. 2년에 걸쳐 총 6대가 제작된 이 홍보용 차량은 남아프리카산 오렌지 아웃스팬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영국 내에선 이미 꽤 알려진 유명 자동차라고 하네요.

슈퍼카들도 당연히 전시 중입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런 브랜드의 모델들도 볼 수 있는데요. 1965년형 AC 쉘비 코브라 427이 개인적으론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드 V8 엔진이 장착된 이 멋진 클래식 자동차는 타르가 플로리오 등을 포함한 여러 유럽 레이싱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박물관에서는 잘 복원된 원형 모습으로 전시돼 있습니다.

보리유 자동차 박물관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자동차가 여러 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젠슨 인터셉터인데요. 1966년 런던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화제였습니다. 크라이슬러 V8 엔진이 들어간 이 차는 1930년대부터 차를 만들어온 젠슨 자동차의 대표 고급 쿠페였습니다. 5, 60년 대 인기를 높이던 젠슨 자동차는 하지만 석유 파동이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 수제 차 제작사로 명맥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자동차와 관련 소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데요. 내비게이션의 역사, 그리고 과거 상류층들이 자동차를 이용할 때 어떤 복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유독 기록을 깨기 위해 만들어진 레코드카들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보리유 자동차 박물관에서도 여느 영국 자동차 박물관들처럼 레코드카들이 별도의 전시실에서 방문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넓은 공원 내 마련된 자동차 박물관이라는 독특한 콘셉트, 그리고 보리유 지역의 오랜 역사를 함께 둘러볼 수 있다는 점, 가족이나 친구 누구와 함께 와도 쾌적하게 하루를 가득 보낼 수 있다는 점 등이 보리유 국립 자동차 박물관의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지만 나중에라도 영국에서 자동차 박물관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고민 없이 고려해야 할 곳이 아닌가 합니다. 후회 없는 방문이 될 겁니다.

글,사진/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보리유 국립 자동차 박물관 (Beaulieu National Motor Museum)
브랜드명 : 보리유 엔터프라이즈 Ltd
국가명 : 영국
도시명 : 햄프셔
위치 : Beaulieu, New Forest, Hampshire SO42 7ZN, 영국
건립일 : 1972년
휴관일 : 연중무휴
이용시간 : 겨울철 (오전 10시~오후 5시, 9월 7일~5월 22), 여름철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 성인 24.75 파운드, 어린이(5~16세) 12.50 파운드, 가족티켓(성인 2명, 어린이 3명 이하) 64파운드
홈페이지 : beaulie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