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④ KO 한 방은 '한진의 눈물'.. 초대형 항공사 산파役 김앤장·화우의 '이인삼각'

이종현 기자 2021. 2.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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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화우, 한진해운 파산 사례 들며 “유증 필수불가결한 조치” 태평양, 대한항공 파산설에 “5공시절 ‘평화의 댐’ 같은 과장”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발표는 지난해 국내 산업계 최대 화두였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던 한진그룹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어려움을 겪던 산업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세계 7위 초대형 국적 항공사 출범이 가능해졌다.

유일한 걸림돌은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던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였다. KCGI 측은 한진칼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KCGI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고, 한진칼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화우를 내세워 방어했다.



로펌업계 순위권을 다투는 대형 로펌들의 정면승부였지만 승패는 한진칼의 ‘KO 한방’으로 싱겁게 끝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지난해 12월 1일 "한진칼의 신주 발행은 상법 및 한진칼 정관에 따라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 및 통합 항공사 경영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한진칼의 손을 들어줬다. 한진칼과 산업은행은 예정대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작업을 추진했고, KCGI는 항고 없이 물러났다.

◇단판승부 재판… 국내 대표 변호사 총출동 한진칼과 KCGI의 재판은 급박한 합병 일정 탓에 단 한 차례만 열렸다. 지난해 11월 25일 재판이 열린 법정 앞은 양측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재판이 소법정에서 열린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방청객을 제한해 대부분의 관계자가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에 미처 재판을 보지 못하게 된 KCGI와 한진칼 관계자들이 법정 앞에서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법정 밖과 달리 법정 안은 긴장감 섞인 침묵이 가득했다. 전초전이나 신경전을 벌일 여유가 없었다. 일합(一合)에 승부가 갈리는 상황이니 양측 변호인단은 변론 내용을 가다듬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재판에는 KCGI를 대리하는 태평양과 한진칼을 대리하는 김앤장, 화우의 대표 변호사들이 총출동했다. 태평양에서는 기업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송우철 변호사(59·사법연수원 16기)가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송 변호사는 태평양 송무그룹 총괄 변호사로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다.

한진칼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앤장의 김용상(왼쪽부터)·고창현·정지영·조현덕 변호사.



김앤장에서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으로 기업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김용상 변호사(17기)와 회사법과 자본시장법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고창현 변호사(19기), 굵직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여러차례 성사시켰던 조현덕 변호사(33기) 등이 나섰다. 화우에서는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유승룡 변호사(22기)를 중심으로 한 경영권 분쟁대응팀이 나섰다.

◇한진의 눈물 vs 평화의 댐… 유상증자의 목적은? 이번 재판의 쟁점은 한진칼의 '증자 목적'이었다.

KCGI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한진칼이 시급한 경영상 목적 없이 증자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한진칼이 증자를 통해 산업은행을 우호주주로 끌어들여서 KCGI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에 서려 했다는 것이다. 증자를 통해 신주가 발행되면 KCGI 측의 지분율은 45.23%(워런트 포함 46.71%)에서 40.41%로 낮아지고, 조원태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우호주주 지분율은 41.78%에서 47.99%로 높아진다. 47.99%는 조 회장 등 우호주주 지분율 37.33%에 산업은행이 갖게 될 지분율 10.66%를 합친 것이다.

반면 한진칼 측은 이번 증자는 정부의 산업정책에 따라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해 대한항공의 경영정상화와 국내 항공산업 재편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맞섰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중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이뤄지는 경우, 경영권 방어를 위한 편법으로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KCGI의 승소를 예상하는 전망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앤장의 조현덕 변호사도 "승소를 100%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진칼 변호인단으로 나선 김앤장과 화우는 이번 증자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는 걸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변론 시간을 썼다. 법리적인 문제를 지적한 태평양과 달리 김앤장과 화우의 변론 전략은 기업과 산업의 환경에 보다 집중했다. 여기서 '한진의 눈물'이 등장했다.

김앤장의 고창현 변호사는 항공산업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중 한진해운의 파산을 언급했다. 그는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기업이었고 영업이익이나 부채비율 어느 부분을 봐도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우량했다"며 "그런데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아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고 한진해운은 결국 파산했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항공산업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만 맡기면 공멸하는 게 자명하다"며 "한진칼 입장에서는 한진해운이라는 뼈아픈 과거의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진해운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한진그룹 입장에서 항공사에 대한 정부의 적시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 지 강조한 것이다.

태평양은 산업은행의 지원이 없으면 대한항공이 파산할 수 있다는 설명을 5공시절 '평화의 댐' 같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수공(水攻) 가능성이 있다며 발표했고 이를 언론이 받아 '서울 물바다론'으로 집중 보도하면서 국민모금운동이 벌어져 평화의 댐을 강원도 화천에 짓게 됐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대한항공과 항공산업의 위기를 '평화의 댐' 같은 과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했다. 17쪽에 달하는 법원 결정문에는 한진해운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재판부는 사실상 김앤장과 화우의 변론을 대부분 인정했다.

◇승소 비결은? 소송 접수 전부터 시나리오별로 '방어 전략' 준비 재판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오랜 기간 꼼꼼하게 재판을 준비한 게 승소의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급박하게 진행돼서 재판도 단 한 차례만 열렸는데 어떻게 '오랜 기간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까.

김앤장과 화우는 이번 소송이 시작되고 한진칼의 법률대리인에 합류한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한진칼과 손발을 맞춰왔다. 김앤장은 2013년 대한항공 분할 및 지주회사 한진칼을 통한 그룹지배구조개편 작업 자문을 시작으로 한진칼과 꾸준히 함께 했다. 김앤장 경영권분쟁송무팀은 KCGI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한진그룹에 자문을 해왔고, 김앤장 M&A팀도 한진그룹이 대한항공 기내식 및 기내면세판매사업을 매각하는 거래를 자문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도 김앤장이 초기 단계부터 참여했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의 인수구조가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자 이때부터 김앤장은 KCGI의 공격을 예상하고 방어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앤장 조현덕 변호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구조 검토 단계부터 KCGI측의 가처분 공격을 예상하고 김앤장 M&A팀과 기업지배구조팀, 경영권분쟁송무팀이 소송을 미리 대비해왔다"며 "대응 논리와 입증 방법을 미리 마련하고 분쟁 준비를 병행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신속하게 진행된 이번 가처분 소송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진칼 법률대리인을 맡은 화우의 유승룡(왼쪽부터)·류정석·강혜림·김성진 변호사.



화우도 마찬가지다. 화우는 지난해 3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KCGI 측의 공격이 시작되자 한진칼과 함께 성공적으로 방어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KCGI 측의 가처분 신청이 접수되자 화우는 송무부문장인 유승룡 변호사를 필두로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인 시진국 변호사(32기), 삼일회계법인 출신의 류정석 변호사(31기) 등이 전면에 나서서 재판을 준비했다.

화우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서면을 준비하면서 로펌이 아니라 맥킨지와 같은 컨설팅 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광범위한 리서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류정석 변호사는 “화우는 경영권 분쟁이 예견되거나 현실화된 상황에서는 기업법무그룹을 중심으로 예상되는 쟁점의 분야에서 그 동안 전문성을 쌓아온 변호사들로 팀을 구성해 자문과 송무 전 영역에서 종합적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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