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 미녀가수' 노수현 "탈북 이유? 정부 아닌 국민 위한 노래 원했다" [인터뷰]
[스포츠경향]

가수 노수현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노수현의 인생사는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서사의 출발점은 1999년 탈북을 결심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사를 걸고 시도한 탈북 과정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가 하면 소중한 동생을 눈앞에서 잃어버렸다. 매분 매초 북한군에게 잡혀갈까 봐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2006년 한국 땅을 밟기까지 7년간 노수현이 지새운 나날은 하나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파란만장의 삶이 내 인생의 전부인가 싶었던 순간 우연히 출연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가 노수현의 인생을 바꿨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탈북 사연이 알려지면서 동생을 찾을 수 있었던 것. 동생을 찾게 되면서부터 드디어 웃을 수 있었고, 이를 동력 삼아 가수의 길에도 성큼 다가갔다. 노수현이라는 이름을 내건 첫 앨범 ‘니꺼야’가 베일을 벗은 2017년은 해피엔딩의 BGM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데뷔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게 먼저인 만큼 여전히 신인 같은 마음이다. 인생사만큼이나 가수 생활 또한 멋진 해피엔딩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찬 도약을 시작했다. ‘함흥 미녀 가수 노수현’의 시작을 스포츠경향도 함께했다.

■“자유로운 노래를 찾아 떠났어요”
노수현은 어릴 적부터 동네 이웃 할머니들과 노래 부르고 춤추는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커서도 이런 직업을 갖게될 것이란 생각은 어쩌면 해 보였다. 그는 함경남도의 청년동맹 선전부 해설대 소속 가수에 지원해 합격했다. 꼬마 시절부터 갈고닦았던 끼는 심사위원들에게도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불렀던 정일봉의 ‘우레소리’가 호평을 받으며 잠재력을 증명했다.
“운 좋게 오디션에 덜컥 합격하면서 그때부터 노래를 업으로 삼게 됐어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어요. 선전부 소속 가수의 경우 북한에선 엄지를 치켜세울 수 있을 만큼 대우받는 직업이에요. 다만 가수로서의 자유는 없었어요. 체제를 위한 곡만 부를 수 있었고, 고정된 안무만 따라야 했어요. 정해진 동작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자본주의 날라리 바람이 들었다고 비판 받게되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춤바람이라고 비판 받는 현실은 노수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노래를 불러도 행복하지 않은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다. 또 당시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가 지인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받으면서 고향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그러던 찰나 한 브로커로부터 중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게 해준다는 제안을 받아 탈북을 감행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농장원 복장을 하고 분장한 채 산을 타고 국경을 넘었다.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중국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또 위기를 맞았다. 하나뿐인 동생과 생이별을 하게 된 것. 가까운 사람을 눈앞에서 놓친 아픔은 온전한 행복을 느낄 여유를 없게 했다.
“알고 보니 브로커가 아닌 돈을 받고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는 사기꾼이었어요. 사투를 벌인 끝에 저와 엄마는 탈출했지만 동생은 끝내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후 저와 엄마는 중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어요. 그러면서 동생을 찾으려고 수소문했지만 되돌아온 건 죽었을 것이란 말뿐이었어요. 결국 동생 찾는 걸 단념하고 엄마와 함께 한국에 가기로 했어요.”
당시 중국에서 다녔던 성당의 도움으로 심양 영사관에서 일 년 반 정도 생활한 모녀는 북한을 떠난 지 7년이 지난 2006년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었다. 낯선 말투와 외래어에 고향이 그립기도 했지만, 눈치 보지 않고 노래 부를 수 있는 환경에 환희를 느꼈다.
“직접 모집한 탈북민, 조선족 이웃들과 예술단을 구성했어요. ‘노수현 한민족 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행사 무대에 올랐어요. 장르 불문하고 노래를 불렀고, 어울리는 무용도 곁들였어요. 그때가 되어서야 자유로운 무대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어요. 어떤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꾸짖지 않았어요. 또 노래를 부르다 흥이 오르면 마음껏 춤을 출 수도 있었고요. 정해진 노래와 안무에 순응해야 했던 북한에서의 갈증을 제대로 해소했죠.”
자유롭게 노래하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이 늘 아렸던 것은 동생의 빈자리가 컸기 때문이다. 우연히 작가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동생과의 사연을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지, 진짜 찾으리라는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동생의 지인이 제가 나온 방송을 보고 동생에게 전달해줬어요. 이후 동생이 프로그램 측에 직접 연락해 재회의 기적이 이뤄졌죠. 처음엔 동생을 만나러 제가 직접 중국을 건너갔다가 시간이 지나 동생도 한국에 입국했어요. 지금은 어머니와 동생, 온전히 세 식구가 함께 살아요. 동생은 제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가수 활동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어요.”

■“슬픈 목소리가 내 매력”
내 노래를 들려주는 성취감 또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노수현이었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음반도 발매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알아봐 주는 이가 없었기에 직접 발품 팔아 작곡가를 구하러 다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니꺼야’라는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앨범 발매 하나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힐 뿐이었다. 이를 이겨내는 건 오롯이 가수 노수현의 몫이었다.
“예술단을 떠나 저 혼자만 무대에 서고 나니 가수 노수현에 대한 시선이 냉정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앨범을 냈다고 해서 가수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칼만 뽑았을 뿐 휘두를 수 없는 상태였죠. 노래 부르는 내내 제가 받는 싸한 시선이 싫었어요. 제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고 매일 울면서 연습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관객들의 마음을 끌어내는 방법을 익혔어요. 관객들이 먼저 호응해주고 칭찬도 건네줘요. 어머님 관객들은 저를 친딸처럼 대해요. 그래서 함께 웃고 떠드는 이 무대에서의 시간이 마냥 재밌기만 해요.”
가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며 이제는 장미빛 미래를 그려보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앞에 새로운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8년 진단받은 루프스병은 가수 생활에 치명적인 존재였다. 틈만 나면 몸 전체가 부었고, 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졌다. 무엇보다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픈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못해 서글펐다.
“꾸준히 치료받은 덕에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몸이 붓기는 해요. 무대나 방송이 많은 날에는 오전 일찍 약을 챙겨 먹곤 하죠.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힘을 내려고 해요. 사실 아직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욕심이 많아서 일을 줄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활동 영역을 무대에서 개인 방송으로 넓혔어요. 유튜브 채널을 따로 만들어 노래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려주는 시간을 가져요. 고정 시청층이 생기면서 그들과 함께 대화 나누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환경적, 신체적 제약을 이기고 노래하게 된 만큼 노수현에게 가수라는 직업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인지 노래 부를 때만큼은 구김살 없는 10대 소녀처럼 맑은 기운을 얻는다. 이젠 그 어떤 시련도 두렵지 않다는 노수현. 그의 가수 인생은 해피엔딩일 게 분명하다.
“지금 집중하고 있는 유튜브 활동에 매진하면서, 무대 활동도 활발히 할 거예요. 그 사이에 제게 꼭 어울리는 신곡을 만나면 더없이 좋고요. 앞으론 트로트 장르를 떠나 발라드 장르에도 도전해보려고 해요. 제 목소리엔 기본적으로 슬픈 분위기가 담겨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매력을 잘 살려보고 싶어요. 발라드 가수 노수현의 모습도 보여드릴 테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황채현 온라인기자 hch572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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