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미의 게임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좋게 말하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도전정신이 강한 기업이다. 나쁘게 말하면 돈 되면 아무거나 다 한다는 비난을 받기 딱 좋은 것이다. 대체로 코나미의 게임들은 비난을 받는 것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게임들이 많다.
코나미의 대표적인 게임들 중에는 '악마성' 시리즈나, '이얼쿵푸', '그린베레나 닌자 거북이', '미스터 고에몽', '크라임 파이터', '미스틱 워리어즈', '선센 라이더스', '콘트라(혼두라)' 시리즈, '특수부대 자칼', '트윈비' 시리즈, '그라디우스' 시리즈,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프로야구 스피리츠', '메탈기어' 시리즈 등 액션 게임과 슈팅 게임 외에도 격투 게임과 퍼즐 게임, 리듬 게임 그리고 레이싱과 스포츠 게임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출시했다.
코나미 로고(1986~2003)
코나미의 로고는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다. 아마도 저 당시의 로고가 가장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형태의 로고일 것이다. 1986년부터 2003년까지 사용된 저 로고가 많이 익숙한 이유는 1980~1990년대 코나미의 명작 게임들이 많이 출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통해 중견 기업으로 거듭난 코나미(コナミ, KONAMI)는 1979년 코나미 공업 시절 '스페이스 킹(Space King)'과 '스페이스 워(Space War)'라는 게임을 통해 게임 업계에 진출했다.
코나미에서 출시한 '스페이스 킹'과 '스페이스 워' 게임은 1978년 '타이토(TAITO)'의 '니시카도 토모히로(西角友宏)'가 개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라는 게임을 따라 만든 일종의 아류이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워낙 큰 인기를 얻고 사회적인 현상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스페이스 킹'고 '스페이스 워' 게임도 나름대로 재미를 보았다.
이때 '스페이스 킹'과 '스페이스 워' 게임을 출시한 회사의 이름은 코나미가 아니라 '레자쿠(Leijac)'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다. 재미있는 점은 게임의 타이틀 화면에는 지역번호 (06)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도 있는데 이것은 일본의 오사카 지역번호다. '레자쿠'는 마치 별개의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코나미 공업의 자회사였다.
스페이스 워(Space War)유튜브(watch?v=OH82lONFYx8)
'스페이스 킹', '스페이스 워' 게임은 원래 일본의 주크박스를 수출하는 일과, 슬롯게임, 인형 뽑기 게임기계인 '클레인602'등을 만들던 '타이토'라는 회사의 니시카도 토모히로가 개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게임을 따라 만든 게임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당시 일본의 술집이나 식당, 카페 등 게임 기계를 들여놓기만 하면 줄을 서서 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당시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게임 때문에 일본 내의 동전이 모두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초대박을 터트렸다.
타이토라는 회사의 모든 사업부의 수익을 뛰어넘을 정도가 아니라 회사 수익의 거의 대부분의 게임 하나로 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타이토는 '타이토양행(太東洋行)'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가 이후 '타이토 무역 주식회사(太東貿易株式会社)'라는 이름의 무역회사에서 본격적인 게임회사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그 주역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의 개발자 '니시카도 토모히로'가 있었다.
타이토의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으로 유명하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하기 이전에도 다양한 게임들을 개발했다. '스카이 파이터'(Sky Fighter, 1971)나 'Soccer and Davis Cup'(1973), 'TV Basketball'(1974), 'Speed Race'(1974), 'Gun Fight'(1975), 'Interceptor'(1975)을 거쳐 드디어 1977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8년 출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아타리의 '퐁' 게임 아케이드 장치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게임의 회로의 작동 원리를 독학으로 시작한 그의 게임 개발 인생에 결정적이 작품이 되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해 36만 개가 넘는 게임 기계를 판매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수치인데 'Asia-Pacific Perspectives, Japan(2003)'에 의하면 당시 엔터테인먼트 아케이드에서 게임기계의 판매수치는 1000대를 판매하면 히트작으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게임기계가 1000대만 팔려도 히트작으로 인정받는데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그보다 360배나 더 많은 36만 대를 팔았고 그 중에서는 해외 판매량도 6만 대가 넘었다. 당시 디지털 게임 수출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해외에 6만 대의 게임기계를 팔았다는 것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1981년에는 10억 달러(한화 1조 이상)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현재 가치로도 10억 달러는 엄청난 액수인데 40년 전에 10억 달러의 가치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1982년 당시 미국의 비디오 게임시장 총액이 30억 달러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10억 달러는 거의 전체 시장의 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금액이다. 게임 하나가 전체 게임 시장의 30%가 넘는 수익을 차지할 정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엄청난 대박을 쳤다. 다 쓰러져가던 타이토는 이 게임 하나로 지금까지의 모든 빚을 한 방에 다 갚아버리고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https://www.classicgaming.cc/classics/space-invaders/flyers
이때 보드카나 팔고 인형 뽑기 기계나 만든다고 생각했던 타이토가 게임 하나로 대기업 이상의 매출과 수익을 내는 것을 본 코나미는 자신들도 게임을 출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본뜬 게임 '스페이스 킹(1978)'을 개발한 이후 자회사 '레자쿠(Leijac)'를 통해 게임 판매를 맡겼다. 개발은 코나미 공업에서 하고 혹시라도 모를 '스페이스 인베이더'와의 분쟁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판매와 유통은 자회사인 레자쿠를 통해 진행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에도 큰 문제가 없었고 레자쿠는 코나미에 흡수합병 되었다.
어차피 당시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본뜬 게임들이 한두 개도 아니었고 시스템적인 부분의 차용한 것에 대해 특허권 침해를 주장하고 손해배상을 받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었다. 2021년 3월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무려 16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미국의 미드웨이가 1976년 개발한 기판을 사용하여 정식명칭은 '타이토 8080 하드웨어' 기판이지만 일본에서는 이 기판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진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 이름을 따서 'インベーダー基板(인베이더 기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타이토는 미드웨이의 '미드웨이 8080 하드웨어' 기판을 업그레이드한 복제 기판을 제조해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들었는데 후에 이것이 미국의 미드웨이에 적발되어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미국 배급권과 파생작 제작 권한을 넘기게 되었다. 일간에는 미국의 미드웨이가 판권을 구매해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말도 있지만 내부적인 사정에는 양사간의 이런 문제들이 있었던 것이다. 4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기판은 1981대에 이른다고 한다.
스페이스 킹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폭발적인 인기 뒤에는 게임의 불법복제 문제가 심각했는데 전 세계의 게임 제작사들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불법복제해서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인 것처럼 판매했던 것이다.
원 개발사인 타이토는 자국인 일본 내에서는 소송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최근과 같이 IT 지식정보 서비스가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던 1970년대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일들까지 신경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본 기업이었던 코나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따라 만든 '스페이스 킹', '스페이스 워' 게임의 판권을 타이토에 넘겼는데 그 이유는 당시 '스페이스 인베이더' 복제품들에 대한 단속을 하던 타이토와 협력관계 없이는 자사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카피 게임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 사장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9년 닌텐도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따라 만든 '스페이스 피버(Space Fever)'게임을 만들었지만 이 게임은 닌텐도의 흑역사로 남았다.
스페이스 레이저(Space Laser)유튜브(/watch?v=OH82lONFYx8)
코나미는 당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판 제작자와 싸우는 것보다는 협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타이토가 주크박스 사업을 할 대 코나미도 주크박스 렌탈이나 수리 사업을 통해 두 회사는 어느 정도 교류가 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타이토 미국 지사를 통해 1980년 2월 미국에 자사의 '스페이스 킹'과 '스페이스 워' 게임을 출시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같은 이름의 '스페이스 워'라는 게임이 존재했기 때문에 게임 이름은 '스페이스 레이저(Space Laser)'가 되었다.
'스페이스워!(Spacewar!)'는 1962년 미국의 MIT 학생이었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 게임이다.
'스페이스 워' 게임은 천공카드나 종이 테이프를 입출력 장치로 사용해온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1961년 미국 MIT에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춘 PDP-1이 보급되었을 때 스티브 러셀이 그의 동료들과 함께 PDP-1 컴퓨터를 조작해서 화면에 그래픽을 띄우면서 이것을 이용하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스페이스워!' 게임의 규칙은 간단한데 화면에 각각 '바늘(The Needle)'과 '쐐기(The Wedge)'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조종해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상대편 우주선을 맞추는 게임이다.
비교적 간단한 방식의 게임이지만 우주 공간의 특성을 이용하여 진행 방향으로 가속을 주면 관성의 법칙으로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역추진으로 되돌아가줘야 한다. 그리고 이 게임은 오픈소스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배경에 실제 은하계를 본뜬 배경을 넣기도 했고 중력 옵션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태양풍의 구현이나 사운드 효과 추가 등 다양한 파생 버전들이 등장한 게임으로 '스페이스워!'라는 게임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나미에서 새로 출시한 '스페이스 워'는 미국에서는 같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페이스 레이저'가 되었던 것이다.
1979년 코나미의 첫 게임 도전이었던 '스페이스 킹'과 '스페이스 워'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이후 '레자쿠(Leijac)'라는 자회사의 이름이 아닌 '코나미 공업'이라는 명칭으로 코나미의 이름을 달고 '그라디우스' 시리즈와 '고에몽', '악마성', '콘트라', '트윈비' 시리즈 등 1980년대 명작 게임들을 차례차례 내놓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