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에 울려 퍼진 '이준송'..'쉼표 콘서트'에서 위로의 시간

김정기 2021. 6. 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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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왕립음악학교 출신 5명 음악가 '쉼표 콘서트 개최'

역사적인 '이준 기념교회'에서 열려

다국적 관객들 감동의 시간 보내

조선의 여행가이자 '서유견문'의 저자인 유길준은 최초의 한국인 네덜란드 여행자였다. 유길준에 이어 네덜란드에 들어간 한국인들은 이준, 이위종, 이상설이었다.

이들은 1907년 세계 만국회의에 일본의 불법적 한국 점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방문했다. 이준은 만국 평화회의를 마치자마자 헤이그의 작은 호텔에서 숨을 거뒀다.

◆교회 정문 앞에 붙어있는 이준을 기념하는 동판 ⓒ김정기

이준의 죽음은 네덜란드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명확하기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신문 '더 스탄다르드'는 1907년 9월 6일 "[고인은] 이곳에 온 한국인들 중 한 명으로 한국의 독립의 권리를 지키고자 이곳에 왔다"라고 보도했다. 그의 죽음은 네덜란드인들의 독립을 위한 80년 전쟁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위에 언급한 보도에 따르면 판 달휴 판 파릭(van Dalhue van Varick)은 이위종에게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해 80년간 싸웠던 네덜란드 칼빈주의자 귀족들(Geuzen)의 기록이 담긴 역사책을 전달했다.

예컨데 한 나라의 민주화 투쟁 지도자에게 한국의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가 담긴 책을 선물해준 것과 같이, 판 파릭의 책 선물과 이에 관한 언론보도는 우리의 독립운동에 대한 적극적 공감의 표시였다.

이준을 기념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이준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는 프린슨호프(Prinsenhof) 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 기념교회 ⓒ김정기

그런 이준 기념교회에서 지난 토요일 저녁 6시와 8시 두 번에 걸쳐 의미 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헤이그 왕립 음악학교 5명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한 '쉼표 콘서트'이다. 

연주는 이정국(리코더), 김동기(색소폰), 김지은(비올라), 유승균(피아노), 유연지(호른)씨가 맡았다.

리코더를 연주한 이정국씨는 콘서트의 기획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언제쯤 코로나가 끝날까요', '부모님이 너무 걱정하시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친구들도 못 만나고 너무 외로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와 같은 글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음악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연주팀 우측부터 유승균(피아노), 이정국(리코더), 김지은(비올라), 유연지(호른), 김동기(색소폰) ⓒ김정기

1917년 이위종에게 한 권의 책으로 독립을 응원했던 판 파릭처럼, 네덜란드의 공연 예술을 위한 재단인 폰드스 포디움쿤스튼(Fonds Podiumkunsten)은 '쉼표 콘서트'를 위한 재정을 지원했다. 

비올리스트 김지은씨는 근사한 클래식 홀이나 무대보다 가족들도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이준 기념교회로 연주회 장소를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

연주회는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 바흐의 '오르간 트리오'와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가 섬 그늘에'의 원곡인 헨리 클레이의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등 총 9개 곡으로 구성됐다. 클래식과 팝, 가곡 등이 어우러진 '퓨전' 콘서트였다.

연주는 총 1시간 가량으로 진행됐으며, 공연 말미에 앵콜이 터져나와 추가로 한 곡을 더 연주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객석이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네덜란드,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공연을 즐겼다. 

연주 순서 중 눈에 띄는 곡이 하나 있었다. 바로 색소폰을 연주했던 김동기씨가 작곡한 '이준송(Yi Jun Song)'이었다. 이 노래는 김동기씨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다.  

"타지 생활을 하는데 교회에만 오면 한국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유학 생활을 하며 한국에 가지 못한지 2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명절이 될 때는 특히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었고, 친척이 돌아가시는 등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가족 같은 (교회) 분들 덕분에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유학 생활을 잘 버틸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들께 작게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만든 곡입니다"

◆이준송을 작곡한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김동기 씨 ⓒ김정기

김동기씨의 '이준송'은 서정적인 멜로디로 청각을 위로했다. 느껴지는 감정은 짙은 그리움 속에 느껴지는 따뜻한 위로와 감사한 마음이었다. 색소폰을 연주한 김동기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필자는 공연을 찾은 관객들에게 음악회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네덜란드인 로더릭씨는 "다양한 음악이 잘 어우러져서 좋았습니다. 떡국이 생각났어요. 마지막 곡은 아내가 아이들에게 불러주던 곡이어서 특별히 더 좋았습니다"라고 감회를 밝혔다.

세 아이와 함께 앉아 있던 로더릭씨의 아내인 미술가 박유진씨는 "음악가들이 모여서 힘을 주는 취지가 뜻깊었고, 한국인이 모인 것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한국 곡들이어서 마음이 찡했습니다"라며 연주의 감동을 전해줬다. 

1907년 헤이그에서는 일행을 제외하고 조국을 잃은 이준을 위로할 한국인들이 없었지만, 2021년의 헤이그에서는 조국을 되찾은 그의 후손들이 '이준'의 이름이 새겨진 교회 안에서 코로나로 인해 지친 한국인, 일본인 및 네덜란드인 관객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연주회 풍경 ⓒ김정기

헤이그에 거주하는 일본인 아야씨는 "한국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양한 음악을 한 곳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평상시 연주자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모인 다섯 명은 좋은 연주자이자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하나 됨이 정말 특별했습니다"라며 밝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국민을 위해 헤이그의 작은 호텔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을 헤이그 특사들이 생각나는 저녁이었다.

네덜란드 캄펜 = 김정기 글로벌 리포터 kjgwow@gmail.com

■ 필자 소개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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