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가방을 납작하게" 트렁크 혁명을 일으킨 루이비통

가구(家具)의 해석 방법은 전통적인 생활 양식에 따라 농경 생활에서 유래한 ‘설비(Fixture)’로서의 가구와 유목생활에서 유래한 ‘이동 가능한(Movable)’ 가구로 나뉜다. 전자는 안정적인 정착 생활을 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고정된 형태의 가구를 일컫는다. 반면 ‘무버블’ 개념의 가구는 항상 이동하며 살아가야 하는 유목민들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공간의 효율성과 이동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구를 말한다.


최근엔 자동차 확산과 여가 시간 증가, 디지털 기기 확산으로 신(新)노마드족이 등장했다. 신노마드족은 고정된 것보다 간편하면서도 유연한 삶을 원하고 현실에 안착하면서도 다양한 삶을 꿈꾼다. 이런 생활 방식은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이 가능한 ‘무버블 퍼니쳐(Movable Furniture)’를 탄생시켰다. 이 가구들은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하면서도 보관과 이동이 용이하며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다른 기능으로 탈바꿈이 가능한 것들이다.

출처: innometsa/www.innometsa.com
'버터플라이(Butterfly)' 의자.

여행자를 위한 캠페인 가구

캠페인 가구 또는 캠프(Camp)가구는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이동용 조립식 가구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시작은 군대에서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군대 용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역사적으로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이집트 시대의 ‘X’자형 구조로 만들어진 접이식 의자에서 그 유래를 살펴볼 수 있다.


캠페인 가구가 일반화된 시기는 19세기와 20세기에 대영제국이 부상하고 확장됨에 따라 군대 이동뿐만 아니라 식민지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내의 업체에 주문제작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많은 디자이너들이 휴대용 가구 제작에 몰두했고 나중에는 전문 제조업체도 생겨났다. 다양한 가구 중에서도 여행자를 위한 디자인으로 가장 독특한 사례는 여행 가방인 ‘트렁크’다. 

출처: 루이비통(Louis Vuitton)
1874년 프랑스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Pierre Savorgnan de Brazza)를 위해 제작된 루이 비통 '침대 트렁크'.

19세기 전통적인 트렁크는 둥근 나무 덮개 때문에 물건을 쌓기가 힘들었다. 세계적 가방 브랜드 설립자인 루이비통은 1854 년, 당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하게 꿰뚫은 실용적이고 우아한 트렁크를 제안했다. 그는 거칠게 다뤄질 짐을 세심하게 포장하는 페커(Packer) 장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릴적 익힌 목공 기술을 활용해 포플러 나무 프레임에 풀을 먹여 방수처리한 캔바스천을 활용해 둥근 모양을 납작하게 바꿨다. 덕분에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있었고 가구의 역할을 대신할 만큼 내부에 다양한 설비를 갖추게 됐다. 상류층들이 선박, 열차를 이용한 여행을 자주 하게 되면서 온갖 종류의 생활 용품을 담을 수 있는 루이 비통의 여행 가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출처: 루이비통(Louis Vuitton)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를 위해 특별 제작한 루이 비통 '스케이트 트렁크'.
출처: 루이비통(Louis Vuitton)
네덜란드 마르텐 바스(Maarten Baas)의 접이식 '비치 체어(Beach Chair)'. 서류가방이 바다에서는 비치의자로 변신한다. 2017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콜렉션 중 하나다.

노마드족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대표적인 캠페인 가구를 꼽으라면 카레 클린트(Kaare Klint)의 ‘사파리(Safari)’ 의자를 떠올리게 된다. 물푸레나무 프레임에 가죽 시트와 등받이를 씌우고 가죽 끈으로 연결한 간단한 구조로 아무런 도구 없이 벗기고 씌우는 방식으로 쉽게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다. 


수많은 디자이너에 의해 재해석된 이 클래식 의자는 18세기 이후 유럽의 군대에서 사용되던 이동식 의자인 ‘루르키(Roorkhee)’ 의자에서 영감을 받았다. 인도의 루르키에 주둔했던 영국군 공병대 엔지니어에 의해 개발돼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Dansk Møbelkunst Gallery/www.dmk.dk
카레 클린트(Kaare Klint)의 '사파리(Safari)'체어.

‘루르키’ 의자는 가볍고 휴대하기에 매우 편리한 구조로 빨리 이동해야 하는 군대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거친 지형에도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기능적인 디자인 덕분에 1890년대의 영국 육군과 세계 탐험가들이 애용하던 가장 인기 있는 의자가 될 수 있었다. 버버리코트(Burberry Coats)가 그랬듯이 영국 군사문화의 부산물이 일상 생활에 전용된 인상적인 사례이다.


1933년에 디자인된 사파리 의자는 장인 기술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파리 여행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단순함과 소박함으로 공간에 온기를 더하기 때문에 인테리어용으로 빈티지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Photo: Bukowskis / www.bukowskis.com
모겐스 코흐 (Mogens Koch)의 접이식 의자. 편안함과 단순함이 결합되어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는 디자인. 오크프레임에 린넨으로 좌판과 등받이를 씌웠다. 반으로 접을 수 있어 보관이 간편하다.

이제는 전설이 된 ‘버터플라이’ 의자

사파리 의자 못지 않게 인기를 끈 모델이 버터플라이의자다. 현대 가구 역사상 가장 모방품이 많은 의자 중 하나다. 버터플라이의 모델은 펜비(Fenb)에 의해 처음 설계돼 1877년 특허를 받은 목제 접이식 파라곤(Paragon) 체어였다.


이 의자는 프레임에서 캔버스 시트를 제거하게 되면 작게 접어 휴대하기에 간편해져 영국 장교들과 레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트리폴리나(Tripolina)’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

출처: innometsa/www.innometsa.com
'버터플라이(Butterfly)' 의자. 스웨덴의 쿠에로 디자인(Cuero Design)이 12mm 강철과 가죽 시트로 제작한 버터플라이 클래식 버전. X자형으로 교차된 금속봉 사이의 나사를 풀면 다리가 분해된다.


1940년 아르헨티나의 아르도이(Hardoy)를 비롯한 세 명의 디자이너 그룹 아우스트랄(Austral)이 파라곤에서 영감을 받아 금속봉과 가죽 또는 캔버스천으로 만든 유명한 아르도이 의자를 설계했다. 이 의자는 세 명의 이니셜을 따 ‘B.K.F’로 불렸으며 나비를 닮은 외형으로 ‘버터플라이(Butterfly) 의자’라고도 알려졌다. 


심플한 구조와 독특한 형태로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전설적인 모델이 됐다. 이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디자인들이 현재에도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실내외 어디서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