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적인 삶을 위해 옛사람들이 강조했다는 '이것'
사람이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입던 옷부터 편하게 갈아입는다. 이어 소파에 앉았다가 조금 뒤에 누워서 TV를 본다. 이러한 차림새와 모습은 밖에 있을 때와 상당히 다르다. 집 밖에서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기에 아무래도 지켜야 할 것이 많다. 반면 집 안에서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다. 안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자를 비롯하여
유학에서는 관점이 조금 다르다.
공자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하게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느슨하고 지나치게 편하게 생활하면 밖에 나가서도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관련해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평소 주의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과 처신이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중용 中庸』에서는
바라보는 존재가 언동으로
어떤 메시지를 나타내지 않더라도
군자라면
스스로 규제한다고 말하고 있다.
‘상재이실相在爾室’에서 누군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 사람은 아무도 자신을 보는 사람이 없다면 편안하게 느껴서 흐트러지기 쉽다. 반면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상대를 의식하여 불편해하고 단정하게 처신하게 된다.
다음으로 ‘완전한 비밀 공간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실爾室과 옥루는 집에서 외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므로 주위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외부 사람만이 아니라 집 안의 사람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곳, 나만의 사적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도 바라보는 상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 그 어디에도 비밀 공간은 없는 것이다.
이로써 『중용』은 유학이 신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느냐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이처럼 내가 한 일이 어딘가에 분명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한 일이 확실하게 인지되고 기억되어 사실로 분명하게 있게 된다. 그 역할을 신이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만의 중심을 잡고
삶의 격을 높이는
『중용 中庸』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