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적에는 학습만화를 많이 봤다. 대여점의 만화는 부모님의 검수를 통과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락성을 띈 불경한 콘텐츠였지만, 학습만화는 어쨌든 교육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에 당당히 책장에 꽂혀있을 수 있었다.
사실 말이 좋아 ‘만화’라고 불렀을 뿐, 거의 일반적인 과학서적과 다를 바 없었다. 허옇게 센 머리의 박사님 하나와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가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가진 과학만화들은 그렇게도 재미가 없었다. 과학적인 지식을 스토리에 끼워 넣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다. 내용도 어려웠다. 이내 차라리 위인전을 선택해서 읽기 시작했다.
과학과 동떨어져 십수 년을 살다가 다시 IT 매체의 기자가 된 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과학만화를 다시 접하게 됐다. 재미없기 쉬운 과학을 소재로 만화를 만들면서도 꽤 인기를 끄는 페이지였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이하 야공만)’다. 처음에 대학 커뮤니티에서 시작했던 짧은 만화는 어느새 2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한 페이지가 됐다. ‘야공만’의 작가 맹기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26살 맹기완이다.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를 다녔고, 이제 막 졸업했다. 대학원에 진학 예정이다. 8월에 미국으로 간다.

– 만화 이름이 ‘야밤의 공대생 만화’다 이유가 있나?
= 학교 사이트에 만화를 올렸었다. 처음엔 연재할 생각이 아니었고, 그냥 재미로 한편 그려서 올려봤던 거다. 처음에 스누라이프 자유게시판에 올렸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월간베스트 1등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이후에 연재를 시작했다. 첫 화를 그릴 때는 따로 제목은 없었다. 그냥 ‘야밤에 공대생이 만화 하나 그려서 올려봅니다’는 뜻이었다. 그게 제목처럼 됐다.
– 그림은 취미인가?
=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그림을 그린 적은 없다. 야공만은 ‘태블릿 펜을 산 김에 그림이나 한번 그려볼까?’ 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수펜이라고 있다. 3만원짜리 펜을 사서 아이패드에 그리다가, 인기가 많아져서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내가 그림 실력이 좋은 건 아니라서 꼭 펜슬이 필요한 건 아니다. ‘만화 보는 사람도 많으니까 좀 더 좋은 장비를 써도 된다’는 식의 자기합리화에 힘입어 구입했다. 주로 필압을 끄고 그린다. 필압 켜면 못 그린 티가 난다.

쉽고 재미있는 과학
‘야공만’은 주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과학자가 어떤 업적을 이뤘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업적을 소개하다 보면 어려운 내용을 다룰 때도 있지만, ‘드립’이나 ‘짤방’ 등을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만화를 구성한다.





– 만화 한 편의 제작과정이 궁금하다.
= 여태까지 살면서 들은 이야기가 많다. 과학 이야기를 좋아한다. 과학서 읽으면서 봤던 내용 중에 소재를 골라보고, 인터넷으로 좀 더 내용을 찾아본다. 과학자 관련 루머 중에 사실이 아닌 게 많다. 그런 것도 확인하고, 잘 몰랐던 내용은 살도 좀 붙인다. 딱히 열심히 생각해서 그리는 건 아니다. 컷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 한 편 만드는 데 시간을 얼마나 쓰나?
= 초안 그리는 것까지는 몇 시간 정도 걸린다. 완성까지는 빨리 걸리면 하룻밤, 오래 걸리면 이틀 정도 걸린다. 온종일 붙잡고 그리는 건 아니다. 아침에 1시간 그리고, 점심 먹고 1시간 그리는 식이다. 예전에는 막 그렸는데, 보는 사람 많아지니까 신경 쓰게 된다. 요즘엔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있다.

– 만화를 그리면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 내용을 쉽게 풀려고 신경을 많이 쓴다. 굳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 전문지식 같은 건 많이 안 넣으려고 한다. 시중의 과학만화를 보면 전문지식을 쉽게 설명하려고는 하는데, 단어만 조금 쉽게 쓸 뿐이지 어려운 건 똑같다.
‘야공만’을 그릴 때는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면 뺀다. 느낌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이 사람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한 사람이구나’ 정도의 느낌을 주는 데 집중한다.

– 짤방이나 드립 활용이 탁월하다. 활동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라도 있는지?
= 커뮤니티는 안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게임을 열심히 했다. 게임 커뮤니티 같은 데서 짤방이나 드립을 쓰니까 고등학교 때 알게 된 게 많다. 그래서 ‘야공만’에 사용하는 짤방이 업데이트가 안 되고 고전 짤방이 많다. 짤방 좋아해서 한 번 보면 잘 안 까먹는다.
–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 대체로 반응은 좋다. 게시물 도달은 대략 8만에서 18만 정도 나온다. 연재 초기에는 ‘내가 문과생인데 이공계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가, 최근에는 이공계 쪽의 선배님들도 연락 주신다. 꽤 유명한 교수님 연락도 받아봤다. 전문가가 봤을 때도 재밌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 무척 뿌듯했다. 최근에는 문과생보다는 이공계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많이 보는 듯하다. 페이스북 특성인 것 같다. 자기가 아는 내용 나오면 “수업에서 봤던 건데 기억나?”라는 식으로 서로 태그를 많이 건다. 의외로 학원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가져가시는 경우도 있다.

– 반응에 힘입어 <딴지일보> 등에 연재도 하는데?
=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재하지 않겠냐는 연락은 자주 온다. <딴지일보>는 페이지 초창기에 연락을 줬다. 그 외에 과학 웹진에서도 연락은 왔는데, ‘야공만’을 일반인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딴지일보에 연재하기로 했다. 그 외에 원고료 등으로 난 수익으로는 아프리카에 염소를 기부하기도 한다.

더 많이 알고, 더 쉽게 그린다.
‘야공만’이 쉽다고 작가가 아는 범위가 좁은 것도,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이,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쉽고 재미있게’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야공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 교양 과학서나 과학만화는 무척 어렵다. 물론 과학서는 엄밀하게 사실을 다루는 게 중요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만,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보게 된다. 대중의 90% 이상은 안 본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고 해도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는데, 읽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 ‘야공만’은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진 않지만, 보통 사람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장점이다.
– 과학만화도 내용이 어렵나?
=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과학만화를 보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글 작가가 따로 있고, 그림작가가 따로 있다. 아무래도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전공자가 아니므로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게 첫 번째 문제점이다.
두 번째는, 너무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한다는 거다. 휴대폰 원리 알려주는 만화인데, ‘셀룰러 네트워크가 어쩌고저쩌고’ 한다. 이것도 잘 몰라서 벌어지는 문제라고 본다. 핵심만 간추려서 말하려면 엄청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쉽게 설명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쉽게만 설명하려고 하면 틀리는 경우가 많다.

– 야공만은 어떤 만화가 됐으면 하는가?
= 과학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알아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수학에서 집합부터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모든 단계의 내용을 떠먹여 주려고 들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야공만’이 다루는 정도의 단계에서 내용을 접하면, 그 이후에 더 알고 싶은 사람은 검색을 통해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과학을 다루는 콘텐츠는 심화 콘텐츠로 유입하는 도입부의 콘텐츠가 많이 없다. ‘야공만’은 딱 그 정도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만화를 보고 ‘재밌는데? 좀 더 알고 싶은데?’ 정도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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