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포드코리아가 미디어 컨퍼런스를 통해 올해 출시할 신차를 공개한 바 있다. 대형 SUV인 익스페디션, 24년 만에 다시 등장한 브롱코 등이 이에 포함되었으며, 그 중 당시 가장 눈에 띄었던 차는 레인저였다. 한국의 픽업트럭 시장은 2019년까지 쌍용 렉스턴 스포츠의 독무대였다. 소비자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쉐보레와 지프가 각각 콜로라도, 글래디에이터를 출시하고 이번에 포드 레인저까지 등장하며 렉스턴 스포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넓어진 선택지는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글 이동엽 기자
사진 포드코리아
포드 레인저는 1983년에 탄생한 중형 픽업트럭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F-150과 같은 ‘형님’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주차 공간과 유류비 등 제한적인 요소가 많아 레인저와 같은 중형 사이즈가 한결 현실적이다. 이번에 출시한 레인저는 2019년에 등장한 4세대 모델로, 전 세계 130개 나라에서 오프로드 실력을 갈고 닦은 덕분에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유럽, 동남아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시적인 와일드트랙, 마초적인 랩터
포드 레인저는 크게 두 가지 트림으로 나뉜다. 도심에 초점을 맞춘 와일드트랙과 오프로드 성격이 짙은 랩터다. 둘의 성격 차이는 외모에서부터 명확하다.
와일드트랙은 다소 평범하다. 오프로드 감성과 최신 SUV의 감각을 적절히 섞었다. 굵직한 선과 높은 벨트라인으로 강인한 이미지를 연출했고 앞문 아래엔 와일드트랙 레터링을 넣어 심심함을 덜었다. 포드가 이번 행사에서 전시해 놓은 와일드트랙 모델은 루프탑 텐트와 캠핑 장비로 꾸며 아웃도어 활동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선보였다.
반면, 랩터의 외모는 강렬하다. 무광 플라스틱 그릴 중앙에는 좌우를 가로지르는 ‘FORD’ 레터링을 넣었다. 투박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범퍼의 대부분도 색칠하지 않은 플라스틱을 그대로 드러냈다. 앞‧뒤 펜더를 키워 와일드트랙보다 차체 너비를 17㎜ 넓혔고 어떠한 환경의 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올터레인(AT)’ 타이어를 신었다.

실내 디자인에 화려한 기교는 넣지 않았다. 좌우 대칭인 센터페시아, 큼직한 계기판 등 픽업트럭이라 하면 바로 생각나는 구성이다. 다만 여러 디테일에서 레인저만의 특징을 넣었다. 와일드트랙은 시트 스티칭, 기어 부츠를 비롯해 구석구석 대표 차체 컬러인 ‘세이버 오렌지’로 포인트를 더했다. 또한 시트 등받이와 플로어 매트엔 ‘WILD TRACK' 레터링을 넣었다.
랩터의 실내는 고성능 모델을 만드는 ‘포드 퍼포먼스’ 팀의 의지를 담았다. 와일드트랙에는 없는 패들 시프트를 달았고 스티어링 휠 12시 방향엔 빨간색 띠를 둘렀다. 이는 주로 스포츠카에 자주 쓰는 포인트인데, 과도한 조작 후에 운전대의 정중앙을 찾기 위한 디테일이다. 시트도 랩터 전용으로 마련했다. 사이드 볼스터가 꽤나 두툼하다. 마치 스포츠카의 세미 버킷시트를 보는 듯하다. 실제로 오프로드에서 몰아보니 사방으로 요동치는 몸을 꽤나 잘 붙잡아줬다. 랩터의 시트 또한 등받이에 레터링을 더해 심심함을 덜었다.

확연히 차이 나는 와일드트랙과 랩터
이번 행사는 총 1시간 반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다. 게다가 그 중 30분은 제품에 대한 소개와 오프로드 시연에 할당됐다. 결국 약 1시간 사이에 두 모델의 차이를 느껴야 했기 때문에 집중력을 높여야 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와일드트랙과 랩터의 차이는 극명했다.


와일드트랙의 후륜 서스펜션은 리프 스프링(판 스프링)이다. 리프 스프링은 승차감보다 많은 적재량을 위해 상용차에 주로 적용된다. 때문에 와일드트랙은 평범한 트럭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운전해보니 도로의 충격을 탑승자의 엉덩이로 가감 없이 전달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지만 노면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온로드를 달리는 느낌이 들만큼 충격 흡수에 신경썼다. 서스펜션을 적절히 세팅한 덕분에 나쁘지 않은 승차감과 함께 600㎏의 적재 중량을 모두 챙겼다. 참고로 코일오버 방식의 서스펜션를 달고 있는 랩터의 적재량은 와일드트랙의 절반인 300㎏이다.

레인저의 고성능 모델인 랩터는 ‘폭스(FOX)'의 쇽업소버를 기본으로 달고 있다. 와일드트랙과 다른 구조의 서스펜션을 장착하기 위한 차체 설계 변경을 거쳤다. 뿐만 아니라 험지를 좀 더 날렵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섀시 곳곳을 강화했다. 사이드레일을 보강해 와일드트랙보다 최대 1G(중력가속도)의 추가 부하를 견딜 수 있다.



이 덕분에 랩터는 오프로드 주행에서 한마디로 ‘날아 다녔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네 바퀴가 땅을 박차 올랐다. 대략 500m 가량 쭉 뻗은 오프로드 길 가운데, 약간의 언덕이 있었다. 인스트럭터의 ‘풀악셀’ 주문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약 시속 80㎞까지 속도가 붙었고 그 상태로 언덕을 뛰어넘었다. 마음을 다잡고 출발했지만 비명이 튀어 나왔다. 난리 난 운전석과 달리 랩터는 남다른 서스펜션과 탄탄한 차체 덕분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이후에도 랩터는 85㎝ 수심 도강과 45° 기울인 사면로, 32.5°의 경사로 등판, 바위를 타고 넘는 ‘락크라울링’ 등 다양한 코스에서 오프로드 실력을 뽐냈다.

디젤 엔진의 강력한 토크감
레인저 와일드트랙과 랩터는 서로 같은 파워트레인을 공유한다. 직렬 4기통 2.0L 디젤 트윈터보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가 차를 이끈다. 최고출력은 213마력, 최대토크는 51.0㎏‧m다. 2.2L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 181마력, 최대토크 40.8㎏‧m의 성능을 내는 렉스턴 스포츠와 비교해보면 레인저가 32마력, 10.2㎏‧m 가량 더 세다. 가솔린 3.6L 엔진을 품은 콜로라도와 글래디에이터의 최대토크도 30㎏‧m대로 레인저에 한참 못 미친다.
안전&편의사항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성격차이
포드 레인저의 가격은 와일드트랙이 4,990만 원, 랩터가 6,390만 원이다. 옵션 항목을 보면 조금 특이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일드트랙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액티브 파크 어시스트’, ‘차선 유지 보조’ 등 든든한 운전 보조 시스템을 갖췄다. 오프로드 성격을 강조한 걸까? 랩터 모델에는 속도 유지만 가능한 크루즈 컨트롤이 유일하다. 가격만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콘셉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로드 성능 강화에 전념한 랩터의 성격을 확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소비자가 자신의 생활 패턴을 충분히 고려한 후 구매한다면 만족스러운 소비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