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태의 인생 그래프 "투어 경험도 해보고 톱100 선수 키워낸 난 행복한 사람"

굴곡이 많았던 그의 선수 시절
임규태 위원은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 라켓을 잡았다. 1989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취미로 테니스를 시작했던 임 위원은 취미반으로 활동하다가 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1년 뒤 선수반으로 이동했다.
“내가 친 샷에 상대가 꼼짝도 못 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통쾌한 매력을 받았다. 잘 맞을 때 임팩트도 너무 좋았고, 그러나 선수반으로 활동하고 나서부터는 많이 혼나기도 하고 연습도 힘들었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대회 복식에서 첫 우승을 했다. 강압적 교육에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던 그였지만 첫 우승 맛은 짜릿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 그래프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는 날이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아직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은 임 위원은 외동아들이라 어머니랑 둘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테니스 라켓을 놓을 수 없었다. 테니스를 더 배우고 싶었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 후 호주 유학을 결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국내 시합을 다닐 때, 다른 아이들은 가족이 찾아오곤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외로웠다.”
1996년 호주 유학길을 선택한 임규태 위원은 윔블던 준우승 경험이 있는 마크 필리푸시스 코치에게 테니스를 배웠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1시간 반 동안 기차를 타서 1시간 테니스를 배우고 다시 집으로 가서 학교 숙제를 하는 반복된 일상을 보냈다. 임 위원은 호주 유학 생활이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숙집에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샌드위치를 먹어가면서 테니스를 배웠다. 바쁜 유학 생활을 하는 도중에 국내에서는 온 국민이 힘들어했던 IMF로 다시 한번 하향 곡선이 찾아왔다. 그 여파로 생활비가 떨어진 임 위원은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당시 가정형편을 보고 매우 놀랐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어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 유학을 마치고 집으로 왔는데 어머니가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환경이 너무 어려웠다. 유학 생활 하는 동안 집안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고 2년 동안 테니스로 인해 어머니가 아주 힘드셨다는 것을 알고 선수로서 꼭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코치 없이 홀로 지낸 투어 생활
국내로 복귀한 그는 각종 대회에 뛰며 많은 우승을 했고 성균관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김성배 감독의 조언을 바탕으로 2002년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남훈 감독이 자신의 팀인 현대해상에서 운동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다. 이후 그에게 인생 그래프 가장 큰 폭의 상승 곡선이 찾아왔다. 현대해상 팀에서 정종삼(현 명지대 감독) 이상훈(현 성남시청 감독)과 연습했다. 거기서 연습하며 많은 것을 배운 임 위원은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대회에 참가하여 세계 랭킹 400위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에게 한가지 꿈이 있었다. 바로 ‘해외 투어 무대’. 현대해상에서는 해외 대회를 못 나가는 바람에 아쉬움이 가득했던 가운데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을 만났다. 임 위원은 단도직입적으로 “삼성에 들어가서 해외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다음 날 연락을 기다렸는데 주 감독님이 ‘자신 있어? 이형택처럼 되라고 말 안 할 테니 최선만 다해라’며 흔쾌히 받아주셨다. 현대해상 팀에서도 다른 곳이 아닌 삼성에 간다고 하니 허락해주셨다.”
삼성에는 이형택, 전미라, 조윤정 등이 있고 특히 당시 100위권이던 이형택을 보면서 열심을 내어 세계 160위권까지 올라 테니스 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다만, 코치 없이 투어 생활했던 외로움을 표출했다. “2년 동안 윤용일 코치에게 배우다가 그후 이형택 선수를 맡으면서 나는 코치 없이 투어 생활을 했다. 약간 후회되는 것이 사비를 지불해서라도 마음 맞는 코치와 투어를 다녔으면 톱100위도 바라보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나는 코치를 안 붙여주지?’하는 의문이 있었다. 경기에 졌을 때, 왜 졌는지를 이야기 할 상대도 없으니 아주 아쉽고 외로웠다.
코치 없이 투어 생활했던 경험이 이제는 ‘내 선수는 외롭지 않게 테니스에만 신경 쓸 수 있게 지도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임 위원은 끔찍한 팔꿈치 인대 부상이 찾아오며 1년간의 재활 끝에 2013년 삼성증권챌린저 후 은퇴식을 했다.

권순우와 함께했던 투어 생활
임 위원의 첫 지도자 생활은 홍콩이었다. 홍콩 국적의 한국인이었던 최윤기를 맡아 하버드대학 입학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코치의 첫 시작을 상승 곡선으로 시작한 임 위원은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 항저우 팀에서 우이빙을 지도했다. 그후 후지안 팀으로 옮겼지만 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총 6명으로 구성된 후지안 팀은 ATP 랭킹에 드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고 선수들 역시 게으르고 목표 의식도 없었다. 임 위원은 후지안 팀을 바꾸어 보려고 했다. 1년 반 동안 고되게 훈련시키고 가르치며 한 선수를 세계 랭킹 600위권에 올렸고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중국올림픽에서 팀 창단 이래 최초로 4강에 진출시키는 업적을 세웠다.
“4강전이 끝나고 선수들 발을 보았는데, 다 까져있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 생각에 눈물이 나와 펑펑 울었다. 중국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것이 중국올림픽에서 우승하면 팀에서 선수들에게 집 한 채를 사주더라. 우리는 4강 진출로 선수들이 원하는 대학에 가도록 도와주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임 위원은 갑상선 암이 찾아와 팀과 계약 해지를 하고 국내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 이후 이덕희(세종시청)를 맡아 세계 130위까지 올렸고 다시 제안이 와서 6개월가량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현재 국내 최고의 스타 권순우(당진시청)의 연락이었다.
“2019년 초쯤에 권순우 측에서 연락이 왔다. 솔직히 말해서 조건은 중국 쪽과 차이가 많이 나서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선수가 나를 간절히 원했고 선수 시절 코치 없이 투어를 돌아다녔던 생각도 났다. 무엇보다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임 위원은 권순우를 지도하면서 다른 제자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덕희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고 제이슨 정(대만)은 좀 더 깊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권순우는 대화도 잘 되었고 선수 본인이 배우는 것을 간절히 원해서 호흡이 잘 맞았다. 한 달 만에 서울챌린저에서 우승도 하고 그랜드슬램 본선에도 나가며 작년 초에는 4개 투어 대회 연속 8강과 그랜드슬램 본선 첫 승, 개인 최고 랭킹 69위 달성을 함께 했다. 이 순간도 그는 지도자 생활 중 최고의 순간으로 뽑았다.
“(권)순우와는 특히 잘 맞았다. 아마 선수와 코치 간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잘 통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성적이 안 나오면 이 신뢰 관계는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오픈 이후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은 TV해설위원과 최근에는 <규테니스>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다.
“코치하면서 해설위원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스카이스포츠에서 처음 해설을 시작했는데 활동하면서 선수들을 중립적으로 보게 되니깐 테니스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중계를 준비하면서 지식이 많아져 제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권)순우에게는 제대로 써먹었다. 그것이 통하니깐 보람차고 재미있었다.”
임규태 위원은 지도자 생활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대표팀 감독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생각했지만, 실업 감독이 아니면 지원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포기했다. 이에 그는 “투어 생활을 하며 권순우를 지도하면서 2~300위권대 선수를 100위권에 드는 선수로 만들었는데 실업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규태 의원과 아들 임지호
임규태 위원은 아들 임지호(9)와 함께 투어 생활을 하는 것을 꿈꾼다. 로베르토 바티스타 아굿(스페인)처럼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에 그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이 때는 그저 테니스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상금도 걸려있고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데 어떻게 즐기겠냐. 무엇보다도 지금 시기에는 운동이 재미있어야 하며 ‘어떤 운동을 하지?’라는 호기심 있어야 한다."
글= 정광호 기자(ghkdmlguf27@mediaw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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