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역사 새로 쓴 도산 안창호 딸도 '아시안 혐오'에 시달렸다
사격 교관, 암호해독관으로 맹활약
태평양 전쟁 때 입대해 아시아인에 대한 의심 편견 맞닥뜨려
결혼할 때도 주 규정 때문에 다른 곳에서 식 올리기도
미국 역사를 새로 쓴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을 얘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맏딸 안수산(미국 이름 수전 안 커디·1915~ 2015) 여사다. 1915년 LA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를 졸업하고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해 최초의 동양인 여성 해군 장교로서 사격 교관과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뒤에도 1951년부터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암호 해독가로 일하며 비밀 정보 분석 요원들을 지도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특히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인 5월이 되면 미국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선구자로 안수산 여사의 삶이 종종 소개된다.

그러나 그 역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을 겪으며 쉽지 않은 군 생활을 했다. 미 국방부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최근 안수산의 삶을 조명한 장문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면서 그가 군 생활 중에 겪었던 각종 시련들까지 상세히 기술했다. 1940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안수산은 군 복무를 마음먹고 있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2년전 순국한 아버지 도산은 평소 자녀들에게 “한국인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좋은 미국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친 아버지의 명예도 드높이고 싶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군 입대의 걸림돌이 됐던 것은 미국 사회 내 반일 감정이었다. 일제 군국주의 팽창정책으로 미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고 있었고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은 반일감정의 기폭제가 됐다. 안수산은 1942년초 ‘아시아 여성에게 군 복무는 적절하지 않다’는 세간의 부정 여론 속에서도 해군에 입대했다.

군 입대 이후에도 안수산은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 내 반감에 맞서야 했다. 그는 여성 자원자들로 편성된 해군 여성 예비군 부대(WAVES)에서 복무하기 바랐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이 시기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격전을 치르면서 12만7000여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일시 구금 조치를 취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로 이후 역사적 논란도 부른 정책이다. WAVES에서 일하고 싶다는 안수산의 인사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아시아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안수산은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인종 때문에 거절당한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재차 도전한 끝에 안수산은 1942년 12월 정규군인 신분을 얻었고 WAVE에 배치됐다. 처음에는 아이오와주 세다 폴스에 있는 훈련소에 배치됐던 안수산은 5주 훈련을 마친 뒤 다시 조지아 훈련소에서 모의 전투 훈련 교육을 받고 교관이 됐다. 그는 공중 포술 교관까지 맡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상관의 추천으로 메사추세츠주 노스앰턴에 있는 장교훈련소에 입소한 안수산은 마침내 장교 뱃지를 달았다. 안수산은 이후 플로리다 펜사콜라에 있는 포술학교에서 다양한 무기 사용법을 익혔고, 수료와 함께 미 해군 사상 첫 포술장교가 됐다. 2차 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4년 1월 안수산은 해군 소속 비행사들에게 기관총 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장점을 살려 암호해독가로도 활약했다. 이렇게 유능한 군 장교로 커리어를 쌓아갔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의구심과 인종적 편견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내 상관 중 한 명은 나에게 기밀문서를 볼 수 없도록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안수산은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결국 의회도서관 연락관 같은 중책도 맡게 됐다.

인종적 편견은 그의 결혼까지 차질을 빚게 했다. 안수산은 해군에서 정보해독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같은 사무실에 일하던 아일랜드계 미국인 남성 부사관 프란시스 커디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1947년 4월에 결혼했다. 신혼집은 버지니아주에 있었지만, 당시 버지니아주는 인종 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워싱턴 DC에서 식을 올려야 했다. 양가 모두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특히 결혼 후 5년간 친정 어머니와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훗날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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