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사교육 1번지'..대치역 지고 한티역 뜬다
통상적으로 미국이나 일본 등에선 학군이 좋다고 해서 집값이 항상 비싸지는 않다. 외국의 부자들은 우리나라 한남동이나 성북동처럼 학군과 관계 없이 별도의 부촌(富村)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은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굳이 좋은 학교 옆에 집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선 학군에 따라 집값이 강세를 보이는 곳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군이 좋은 지역은 집값도 비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학군이 가장 좋다고 소문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서울에서 집값이 아주 비싼 지역에 속한다. 대치동이나 반포동에 있는 전용 84㎡(30평형 대) 아파트들은 집값이 20억원을 넘어선다. 이런 이유로 명문학군과 가까운 집 이른바 ‘학주근접(學住近接)’이라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주근접 주택시장의 상황을 살펴봤다.
■ 대치동은 어떻게 사교육 1번지가 됐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대한민국 학군 절대강자다. 대치동이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학군으로 부상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주요 고등학교가 대규모로 밀집했다. 정부의 강남 개발 정책에 따라 강북의 주요 고등학교가 대치동과 그 주변에 자리잡은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대치동 학군이 생기기 전 1등 학군이던 압구정동에는 3개의 고등학교가 있었고, 범 대치동권 고등학교는 11개다. 또 다른 강남 명문학군인 반포·서초학군의 고등학교가 7개인 것과 비교해도 대치동이 훨씬 많다. 기본적인 공교육 자원이 많다는 것이다.
대치동이 학군 1번지가 된 두 번째 이유는 아파트 주변으로 폭넓은 근린생활시설 용지와 중소규모 빌딩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학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원은 기본적으로 규모가 작고,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영세한 학원이 많았다. 이런 학원들이 강남 대로변의 고층 빌딩에 들어갈 형편은 안된다. 그런 점에는 학원이 밀집해 자리잡기 위해서는 임대료가 저렴한 상가 건물이 많아야 하는데, 대치동이 그런 곳이다.
개포 우성·선경·대치미도아파트, 대치 4동 빌라촌 부근에 엄청난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용지에 소규모 빌딩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 점에서 대치동은 국·영·수뿐만 아닌 예체능과 다양한 종류의 군소학원이 자리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 학주근접 아파트로 부상하는 분당선 ‘한티역’ 라인
2000년대 후반까지 전통적으로 학군 우수 아파트는 개포우성·선경·대치미도·은마·청실 아파트로 이어지는 지하철 3호선 라인 아파트였다. 그리고 이 아파트 거주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대청중학교가 명문으로 꼽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학군의 축이 대치역 라인에서 분당선 한티역 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존 학군이었던 3호선 라인 아파트는 지어진지 20~30년 이상된 노후 아파트다. 2000년대 후반 역삼래미안(2005년 입주), 도곡 렉슬(2006년 입주) 등 새 아파트가 대치동과 도곡동에 들어서게된 것이다. 그동안 변두리로 취급받았던 역삼중학교와 도곡중학교가 급격하게 성장했다. 또 학원가는 이미 대치역보다 한티역에서 은마아파트 사거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중심이었다.
한티역 부근의 아파트들은 새 아파트라는 장점과 함께 걸어서 학교와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학주 근접 장점을 동시에 갖게된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티역 라인 신축 단지인 도곡렉슬 85㎡는 6월 기준 20억4000만원(14층)에, 역삼래미안 80㎡는 18억원(20층)에 실거래됐다.
■ 아파트에 살만한 여유자금이 없다면?
대치동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빌라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살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대치동에서 빌라가 몰려 있는 대치4동은 학원가가 가까워 길 건너 도곡렉슬이나 대치 아이파크, 역삼래미안 등 고가 아파트와 비슷한 학군의 강점을 누릴 수 있다. 대치동 빌라 투자는 수익률 면에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2016년 기준으로 4억원 정도 현금을 갖고 1억원을 대출 받아 시세가 5억원인 대치동 빌라를 구매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이자비용과 세금 등 각종 부대비용을 합쳐 넉넉하게 1500만원 정도의 예산을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기였던 2016~2018년 이 5억짜리 빌라가 7억원 수준까지 올랐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대치동 20평대 노후 아파트 전세도 4~5억원 정도 했다. 낡은 아파트 전세에 사느니, 빌라를 구입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는 선택인 셈이다. 실제로 대치동 지역에선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이 빌라를 추가로 매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치동 빌라 시장에 투자 수요가 많이 몰리다보니 전·월세 매물은 풍부하지만, 매매 물건이 희귀하고 투자를 하려면 제법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글은 ‘대치동 명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심정섭 씨가 펴낸 ‘심정섭의 대한민국 학군지도' 중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재가공한 것입니다.
정리=김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