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패와 괴물이 넘치는 안방극장서 탈출 못하는 이유
아이즈 ize 글 이현주(칼럼니스트)

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날, 남편은 임신한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심히 눈사람을 만든다. 곧 태어날 아이와 아빠, 엄마. 아름다운 눈사람 가족처럼 아내는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런데 그 눈사람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은…. 현재 방송 중인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의 한 장면이다.
꽤 오래 전 읽었던 요 네스뵈의 소설에도 눈사람이 등장했다. 집안을 들여다보고 선 눈사람.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이제 난 눈사람을 보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직도 그냥 눈사람으로 보이니?”
머리를 자르고, 손가락을 자르고….언제부터 TV 드라마에 이토록 끔찍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게 됐을까. 그런데 자꾸 눈이 간다. 드라마 하나를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난데, 요즘은 두 개를 번갈아 챙겨보느라 바쁘다. 배우들은 왜 또 하나같이 신들린 듯한 연기의 향연을 펼치는 건지.
tvN 드라마 ‘마우스’(극본 최란, 연출 최준배)와 JTBC 드라마 ‘괴물'(극본 김수진, 연출 심나연). 각각 수목 드라마와 금토 드라마다. 엇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스릴러라는 것. 일부 회차는 ‘19금’ 딱지가 붙을 정도였으니 그 수위가 짐작할 만하다. ‘마우스’에는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로 불리는 악랄한 프레데터가 등장해 사람을 살해한다. ‘괴물’에는 친근한 이웃이었던 자가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풀기 위해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결국 누군가가 계속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를 미치도록 잡고 싶은 사람이 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정형화된 공식이다. 사실 불편하다. 대개 여자, 혹은 약자가 잔혹한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열심히 보는 걸까 나는.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왜 끊임없이 만들어질까. 아마 나처럼 꾸준히 보는 사람이 있어서리라.
특히 영화와 드라마에 있어 나는 스릴러에만 반응한다. 로맨스, 멜로, 휴먼 드라마 등 배꼽 언저리가 찌르르, 가슴이 울컥. 눈물이 찔끔. 이런 신체 반응을 일으키는 장르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 감정 상태를 결코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 그런 격정에 휩싸이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솔직히는 겁이 나서다. 너무 심하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실 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돋는다. 아픈 아이, 자식이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렇다 치고,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왜 시작됐는지 모를 복받침이 잦다. 피부에는 수분이 부족해 주름이 늘어가는데, 가슴에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생겼나 보다. 문제는 정교하게 설계된 첨단 급수 시스템이 아닌, 세월이 만든 자연산 우물인지라 대중없이 차올라 넘친다는 것. 때로 선 눈물에 후 이유를 스스로에게 둘러대야 하는 순간도 있다. 나에게 나를 설득시켜야 하다니. (그래서 애써 피하곤 하는데, 최근 제대로 걸렸다. 남편이 영화 ‘세자매’를 보고 싶다기에 이래저래 핑계를 대다 결국 같이 보게 됐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꺼이꺼이 새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어찌나 애를 먹었는지!)

그렇기에 오히려 스릴러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손가락이 잘려도, 머리가 잘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라 믿기에. 스릴러는 직진이다. 다른 생각없이 오로지 범인만 미친 듯이 증오하면 되고 추적자를 열렬히 응원하면 된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 몰입도가 높고, 복선이 정교할수록 승부욕(?)도 강해진다.
“범죄물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의 심리란 대체로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읽는 것이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면 읽기 어렵다.” (이다혜, <아무튼, 스릴러> 중에서)
나보다 지혜로운 스릴러 마니아가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해 준 것처럼, ‘마우스’와 ‘괴물’의 사이코패스와 괴물은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즐기기만 해도 될까.
‘마우스’의 기획 의도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언급돼 있다.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재판정에 출석한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우리 막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피고인이 알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피고인은 “날씨가 좋은데, 벚꽃 못 보러 가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린 지금 픽션을 능가하는 잔인한 논픽션 세상에 살고 있다. 현실의 사이코패스와 괴물은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라마를 즐기되, 결코 무거운 숙제를 외면하지 말 것. 피하지 말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괴물'의 유연이는 누가 죽였고, '마우스'의 바름이 정체는 무엇이냐.
이현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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