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슈퍼카 전설의 고향에 가다-엔초 페라리 박물관

이탈리아는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생산국이죠. 피아트, 알파로메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여기에 오토바이 명가 두가티와 세계적인 카로체리아(코치빌더)들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들인데요. 이 화려한 라인업은 두 도시 밀라노와 모데나를 중심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번 유럽 자동차 박물관 탐방기 마지막 국가인 이탈리아로 향하기 전 동선을 어떻게 짜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무조건 모데나를 먼저 가자는 것이었죠. 왜 인구 18만 명의 모데나를 최우선으로 선택했던 걸까요?

<사진1> 밀라노에서 출발한 기차는 1시간 조금 넘게 달려 모데나에 도착했다 / 사진=이완

사실 이 도시는 자동차를 잘 모르는 이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고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구도심 두오모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엔 수만 명의 사람이 찾을 정도였죠. 하지만 자동차 팬들에게 모데나는 또 다른 슈퍼스타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입니다.

<사진2> 엔초 페라리 / 사진=이완

모데나는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바로 옆에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 볼로냐가 있는데요. 볼로냐는 최초의 대학이 탄생한 도시이자 람보르기니의 고장이며, 바이크 명가 두카티 본사가 있는 곳입니다. 주도답게 인구도 모데나의 2배 이상이나 되는 큰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볼로냐가 아닌 모데나를 선택한 것은 페라리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현재는 마세라티 본사와 공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페라리 박물관 2곳, 그리고 마세라티 박물관으로 알려진 파니니 자동차 박물관, 또 람보르기니 박물관 모두를 1시간 이내 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습니다.

<사진3> 오래된 모데나 구도심 전경 / 사진=이완

운전하기도 비교적 수월한 지역이라 저는 피아트 500 수동변속기 모델을 렌트해서 다녔는데 이보다 더 이탈리아 자동차 박물관 여정에 어울리는 차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정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박물관인 엔초 페라리 박물관, 그리고 마라넬로 공장 옆에 있는 페라리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운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엔초 페라리 박물관은 모데나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고, 이곳을 둘러본 뒤 마라넬로 본사에 있는 페라리 박물관은 셔틀버스를 이용해 다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데나역에서 느낀 도시의 작고 소박하다는 인상은 엔초 페라리 박물관,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마세라티 본사와 공장 등을 보면 바로 달라지게 되는데요. 모데나시가 시의 명운을 걸고 만들었다는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안으로 향했습니다.

<사진4> 한적한 주택가 사잇길을 걸어 들어가면 이렇게 노란색으로 된 엔초 페라리 박물관 입구 앞에 서게 된다 / 사진=이완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모데나에서 1898년에 태어났습니다. 엔초 페라리 박물관은 바로 그가 태어난 생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는데요. 2003년 시는 페라리와 손잡고 박물관 건립을 위한 재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약 250억 원의 돈을 들여 공사를 진행한 끝에 2012년 엔초 페라리 박물관을 오픈합니다.

<사진5> 엔초 페라리 박물관 전경 / 사진=페라리


<사진6> 현대적인 본관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별관으로 구성돼 있다 / 사진=페라리


<사진7> 여유로운 길을 따라가면 박물관 건물 입구가 나온다 / 사진=이완

현대적인 본관 지붕은 엔진룸을 덮고 있는 듯한 자동차 보닛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노란색이 무척이나 인상적인데요. 모데나를 상징하는 이 색상은 박물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본관 옆에는 엔초 페라리의 아버지 알프레도 페라리가 작업하던 잘 재현된 작업장은 또 하나의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장은 마라넬로로 본사를 옮기기 전까지 엔초의 레이싱 자동차들이 만들어지던 곳입니다.

본관은 전시실과 영상 자료실, 그리고 카페와 기념품 판매점 등이 있습니다. 전시 차량은 그리 많지 않은데요. 다만 특별전 등, 다양한 행사가 자주 열리기 때문에 방문 때마다 새롭게 전시된 페라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8> 본관 실내 모습. 카페가 있고 그 옆엔 매표소가 있다. 입구 우측으로는 기념품점이 있다. 1920년대 알파 로메오에서 레이서로 활동할 당시의 커다란 사진이 시선을 잡아끈다 / 사진=이완

제가 찾았을 때는 평일 점심 무렵이라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하게 탁 트인 전시실은 더 여유로웠고, 무엇보다 스포츠카 명가에서 만든 역사적 모델들을 한꺼번에, 그리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사진9> 본관 전시실 전경 / 사진=이완

'시대를 초월한 걸작(capolavori senza tempo)'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특히 페라리 250 GTO, 750 몬자, 250 캘리포니아, 275 GTB 등을 같이 감상한 점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모델은 모두 세르지오 스칼리에티가 디자인한 것들로, 그는 이곳 모데나 출신의 또 하나의 걸출한 자동차 업계의 스타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카로체리아에서 일하던 세르지오 스칼리에티는 스쿠데리아 페라리팀을 이끌던 엔초 페라리와 인연을 맺게 되죠.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카로체리아를 운영하게 되고, 차체 제작 능력이 남다름을 안 엔초 페라리와 정말 오랜 세월 함께 작업을 하게 됩니다.

옛날 자동차는 제조사가 섀시 부분을 담당하고 카로체리아(또는 코치빌더)로 불리는 차체 제작 및 최종 조립 업체 등이 고객의 의뢰를 받아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차체를 제작하는 이원 제작 시스템을 통해 완성됐습니다. 따라서 좋은 카로체리아를 만나는 것은 무척 중요했는데요.

같은 고향 출신에 공기 역학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미적 안목을 지는 스칼리에티는 엔초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페라리의 아들이죠,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와도 작업을 하는 등, 페라리 집안과 깊은 우정을 쌓게 됩니다.

섀시 제작에도 함께 참여하는 등, 두루 영향을 끼친 세르지오 스칼리에티는 페라리의 많은 명작을 함께 만들었고, 그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페라리가 내놓은 612 모델에는 '스칼리에티'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사진10> 2011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세르지오 스칼리에티 / 사진=페라리


<사진11> 4기통 3리터급의 750 몬자는 1954년 만들어졌으며 몬자에서 데뷔했다. 데뷔와 함께 우승컵까지 들게 된다. 이후에도 화려한 레이싱 우승 경력을 뽐낸 750 몬자 탄생에 스칼리에티와 엔초의 아들 디노가 함께 큰 역할을 했다 / 사진=이완

이번 특별전 기간 중 역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모델이라면 페라리 250 GTO가 아닐까 합니다. '페라리 최고의 모델',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라는 평가를 받는 250 GTO는1962년부터 1964년까지 단 36대만이 만들어졌죠. GTO는 Gran Turismo Omologato의 약자로 레이싱을 위해 만들어진 형식 승인 절차 취득용 모델을 의미합니다. 2018년 경매에선 7천만 달러에 팔려 화제가 되기도 한,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가격의 클래식카입니다.

<사진12> 1962년형 250 GTO. 스칼리에티의 손길을 거쳤으나 이 차는 또 하나의 전설적 엔지니어 지오토 비짜리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람보르기니 박물관편에서 소개하도록 한다 / 사진=이완


<사진13> 1962년형 250 GT 베를리네타 루쏘. 카로체리나 피닌파리나와 스칼리에티의 협업으로 나온 모델로 베를리네타는 '쿠페'를, 루쏘는 '럭셔리'를 의미한다. 351개만 생산됨 / 사진=이완


<사진14> 1957년형 250 캘리포니아. 미국의 서부 지역 고객 취향을 고려한 모델로 스칼리에티 디자인 중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됨 / 사진=이완

작품처럼 방문객을 맞고 있는 페라리의 화려한 클래식카들 사이에 한정판 모델 몬자 SP1이 보입니다. 방문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은 자동차였는데요. 앞서 소개한 750 몬자 등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해석된 두 대의 모델(SP1, SP2) 중 하나입니다. 탄소섬유를 이용한 차체는 12기통 엔진과 어울려 최고속도 300km/h까지 낼 수 있습니다. 810마력이라는 엄청난 출력이 운전자에게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할 뿐입니다.

<사진15> 몬자 SP1은 제로백 2.9초이며 SP1은 1인승, SP2는 2인승으로 구별된다 / 사진=이완

본관에서 페라리에 취했다면 이번엔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또 다른 전시관에서는 페라리의 대표적 엔진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12기통 엔진이 아니면 페라리로 인정하지 않았을 만큼 그들은 12기통 엔진을 아꼈고, 그것이 레이싱 자동차의 당연함이라 여겼죠. 그러나 엔초 페라리의 아들 디노는 V6 엔진을 개발하는 등, V12 엔진 외의 다른 길도 찾았던 엔지니어였습니다.

<사진16> 엔진 전시실 전경 / 사진=이완


<사진17> 라페라리 엔진 구성 / 사진=이완

병으로 24세라는 나이에 죽지만 않았다면 페라리의 역사는 엔초를 이은 디노로 인해 지금과는 또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아들을 얻으며 레이서의 길을 과감히 포기할 만큼 그를 사랑했던 엔초는 병으로 디노를 떠나보낸 후 큰 슬픔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6기통 엔진(과 일부 8기통 엔진)이 들어간 작은 페라리 모델들은 노란색의 디노 엠블럼을 별도로 붙여 내놓게 됩니다.

그 첫 번째 모델이 바로 1967년 나온 206 GT였습니다. 1965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모델은 엔초 생각과 달리 많은 주문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이 6기통 엔진이 달린 차가 양산될 수 있는 이유였죠.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담당했고, 여러 자동차 박물관에서 디노 모델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모델입니다.

<사진18> 디노 206 GT / 사진=이완


<사진19> 엔초와 아들 디노의 모습. 재현된 엔초 페라리 사무실 모습. 책상 뒤 아들 디노 사진이 눈에 띈다 / 사진=이완

이 박물관은 레이싱 역사를 이끈 페라리 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아들을 조명하는 것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할 수 있습니다. 아프고도 애틋한 가족사를 마음에 담고 이제 다음 목적지인 마라넬로 페라리 박물관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엔초 페라리 모데나 박물관 (MUSEO ENZO FERRARI MODENA)

브랜드명 : 페라리

국가명 : 이탈리아

도시명 : 모데나

위치 : Via Paolo Ferrari, 85, 41121 Modena MO, 이탈리아

건립일 : 2012년 3월

휴관일 : 12월 25일 / 1월 1일

이용시간 : 10월~ 3월까지 10:00~18:00 / 4월~9월까지 09:30~19:00

입장료 : 성인 17유로, 19세 이하 7유로

페라리 박물관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 성인 24유로, 19세 이하 10유로 (48시간

안에 두 박물관 모두 방문 조건)

홈페이지 : ferrari.com/en-EN/museums/enzo-ferrari-mod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