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N의 비밀상담소]
여기 어처구니 없이 회사에서 잘린 남자가 있다. 이름은 데릭 조. 잘못 한 거 하나 없는데 상사의 이간질로 인해 회사 대표에게 찍힌 것이 화근이었단다.
대체 어떤 이간질로 인해 해고까지 당한 것인지 데릭의 사연을 에디터N이 대신 소개한다.

오늘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전 미국에서 잘나가는 컨설팅 회사에서도 나름대로 승승장구 중인 변호사였습니다. 회사의 모든 직급을 층수로 따지자면 그래도 중간 정도까지는 올라온 상태였죠.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보다 더 힘들었으면 힘들었지 절대 덜하진 않았을 거예요. 매일 야근은 기본이고요. 가끔 제 신념에 반하는 일도 했고요. 정말 녹초가 될 때까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해 기계처럼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헌신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다 저의 상사 카라(캐럴라인 치케지)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반다코프 사건을 망친 게 저라고 보스에게 보고한 거예요.
미치고 팔딱 뛸 심정입니다. 반다코프 사건을 가장 최근에 맡은 게 누군데요. 카라입니다. 절 모함한 거죠.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카라를 만나러 갔어요.

이 회사에선 수뇌부들이 일하는 높은 층에 올라가려면 카드키 또는 일회용 암호가 필요합니다. 카라는 의외로 흔쾌히 저에게 암호를 알려주더군요. 아주 뻔뻔하게 절 맞이하고 있었고요.
제가 따지자 카라가 뭐라고 했는지 아시나요? 몇 년 전에 정말 아주 티끌만큼 제가 관여했던 고소 건을 부풀려서 마치 제가 그동안의 총책임자였던마냥 보스 존(스티븐 브랜드)에게 보고했답니다. 서류를 조작해서 자신은 쏙 빠져나갔죠.

아니, 저 같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일개 변호사가 무슨 수로 그런 큰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아요? 그걸 믿는 보스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직접 보스를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자신감인지 카라는 또 보스를 만나게 해줬어요. 카라와 함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갔죠.

바로 이거였군요. 카라가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이미 보스는 카라의 이간질에 넘어간 상태였어요. 저 보고 모든 책임을 지고 알아서 회사를 나가래요.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면 퇴직금만은 넉넉히 챙겨주겠대요.
처음엔 싫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쫓겨나면 앞으로 전 어디서 어떻게 변호사로 먹고 살죠? 당장의 돈 때문에 흔들린 것도 사실입니다만 제 인생에 남은 20년 밥벌이도 생각해야죠. 보스의 제안을 거절했죠.

그런데 현실은 기업과 개인의 싸움이었다는 걸 딱 10분 만에 깨달았습니다. 반항도 제대로 못 해보고 당장 그 길로 쫓겨났거든요.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던 그 순간이었어요. 괜히 보스의 제안을 거절했나 후회도 되었죠. 짐가방을 들고 로비로 내려왔는데 회사의 모든 출입구가 막혔습니다. 사내에 '붉은 눈 바이러스'가 퍼졌다나요?

이 바이러스가 뭐냐면요. 최근 우리나라에 퍼진 아주 심각한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일단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돼요. 그래서 붉은 눈 바이러스라고 불리죠.
눈이 충혈되고 나면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시키죠. 어떤 식이냐면 제 뒤 좀 보세요.

사내에도 붉은 눈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직장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던 모양이죠?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더군요. 심지어 살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 무서운 것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면 충동적인 살인을 저질러도 무죄라는 거죠. 제가 변호사라서 잘 알아요. 100% 처벌 안 받아요. 이미 판례도 다 있어요.

물론 제 눈도 충혈되었습니다. 즉 저도 이제 감염자라는 것이죠.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거고요.
이 회사에서 절 화나게 만든 사람은 단연 절 해고되게 만든 카라 파웰 아니겠습니까? 카라를 부숴버리고 보스를 만나 제 해고 건을 무효로 하겠단 생각뿐이었습니다.
바이러스 증상이 없어지는 데까지는 딱 8시간. 그 안에 말이죠.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안전핀마저 없어지니 못할 것이 없어지더군요.
그동안은 함구했던 회사의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고, IT 담당자를 회유해 회사 컴퓨터를 해킹하고, 보스의 비공식적인 왼팔(이라고 쓰고 사내 깡패라고 부를게요)도 처리했고요. 드디어 카라를 만나러 올라갑니다.

벌벌 떨고 있을 줄 알았던 카라는 이 상황에서도 뻔뻔하고 또 교활하더군요. 보스를 만나게 해주는 대신에 자신과는 휴전하재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보스를 배신하겠다는 거죠.
이런 사람의 말을 제가 믿을 수 있을까 싶지만요. 어쨌든 마지막 기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복수 또는 부를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만약 이걸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나요?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8시간이 주어졌다면요.
일자리와 명예를 버리고서라도 절 해고까지 당하게 한 상사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복수를 하겠나요? 아니면 그를 눈감아주는 대신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받는 협상을 하시겠나요?
저에게 남겨진 시간은 몇 시간 안 됩니다. 그 시간을 값지게 써보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의 의견도 듣고 싶어지네요. 어떤 것이 더 제게 나은 선택이 될까요?

억눌렸던 감정을 표출시키는 바이러스가 스트레스가 가득한 사내에 퍼지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 영화 '메이헴'이다.
극 중 데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또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펼쳐질지. '메이헴'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메이헴'도 지금 바로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