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지 "완판에도 가격 안올리고 하루도 안쉬고 그린다"

전지현 2021. 6. 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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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개인전 8일까지 선화랑
가녀린 줄기·울창한 잎 나무는
여려도 강하게 살고 싶은 내 자화상
코로나시대 위로하며 판매 '불티'
"10개월 돈 모아 그림 사러오는데
어떻게 가격 올리나요"
이영지 작가
희한한 나무다. 가녀린 줄기에 초록색 점들이 무성한 잎을 이루는데도 위태롭지 않다. 그 주변에서 날고 있는 하얀 새도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영지 작가(46)의 나무는 책 위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싱그럽게 자라나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나무 만큼이나 작가도 희한하다. 작품이 불티나게 팔리는데도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는다. 3년전 가격과 큰 차이가 없다. 오래된 한지 느낌을 내기 위해 수없이 밑색을 칠하고 잎 하나하나와 풀 한 포기씩 일일이 그리는 노동집약적 작업에도 작품값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고마운 하루 162X112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서울 선화랑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는 "내 그림이 갖고 싶어 10개월 돈을 모아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격을 올리나"며 "그림 양이 적어서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은 기운이 넘치니까 열심히 그리겠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에 사는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경기도 하남시 작업실로 가서 그림을 그린다. 한 달 평균 100호 작품 1점을 완성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어서 손을 쉴 수 없다. 그는 "내 그림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더 열심히 그려서 가치를 올려야 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강조했다.

항상 내곁에 있어주길 140X90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힘들어도 한지와 분채(粉彩·조개와 흙 등 자연 소재로 만든 안료)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생각이다. 분채를 화면에 붙이는 접착제인 아교 냄새가 나지만 인공적 재료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화 작가가 점점 더 사라져 가는 것 같아서 나라도 전통을 지키고 싶어요. 밑작업도 먹을 사용해 오래된 벽이나 한지 느낌이 나게 하죠. 먹의 농담에 따라서 매번 결과물이 달라지는 우연의 효가가 너무 재미있어 빠져들어가요. 비슷한 색을 낼 수는 있어도 똑같은 색은 못냅니다."

내 세상에게 60X170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모든 순간이 행복해 45.5X53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그는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상상의 세계를 화면에 그린다. 코로나19로 못 갔던 꽃·단풍 놀이, 자동차 캠핑, 바다를 화사한 빛깔로 펼쳐냈다. 작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그림으로 그려서 작업실에서 볼 수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작가의 그림이 팬데믹 시대 인스타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곳을 통해 그림 주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번 개인전 전시작 54점 중 90%가 이미 팔렸다. 단풍을 그린 작품 '그대 있음에'는 굴지 대기업에서 구입해갔다.

모든 순간, 너와 72.7X60.6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2019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제 그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특히 자기를 위해 투자하는 2030 세대들이 아트테크에 정말 관심이 뜨겁더라고요."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기존 컬렉터가 아니라 처음 보는 고객들이 많이 사갔다"며 "젊은 세대는 아이방에 걸 그림으로 선호하더라"고 밝혔다.

이 순간을 믿을게 130.3X324 장지위에 분채 2021. [사진 제공 = 선화랑]
인스타그램을 통한 팬들의 응원이 늘어나면서 작가의 에너지도 솟구친다. 이번에 처음 도전한 300호 대작 '이 순간을 믿을게'에는 새 19마리를 그려넣었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4개월 넘게 걸렸다.

작가는 "응원하는 댓글 덕분에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용기를 내서 더 큰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난히 가는 줄기 나무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 나무를 그리면서 슬픔을 견뎠다고 한다. 그는 "가녀린 줄기가 저 울창한 잎을 받치려면 강해야 한다"며 "처음에는 나무만 그리다가 주변 사람들을 의인화시킨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안(童顔)이지만 그의 아들은 군대에 있다. 25세에 결혼한 후 육아에 매달리다가 이제야 작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나의 20대가 거의 없었으니까 이제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세상이 좀 공평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전시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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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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