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가 꽤 있는 차를 타면 그 차의 히스토리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같은 1만㎞를 뛰어도 어떤 차는 부드럽고 어떤 차는 거칠다. 기자들이 타는 미디어 시승차는 대개 후자다. 신차 때부터 ‘길들이기’는커녕 가혹하게 굴리니까. 제조사에서 통상 1년 정도 운영하는데, 여러 기자들의 손길 거친 까닭에 컨디션이 빠르게 떨어진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소위 ‘끝물’ 시승차는 신차 때와 비교해 어느 정도 컨디션을 유지할까? 마침 현대자동차에 2만㎞ 달린 싼타페가 있어 일정을 잡았다. 미디어 시승차로서 퇴역 선고 앞둔 셈이다. 게다가 소음‧진동에 취약한 4기통 디젤 모델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소비자 입장에선 신차 상태보다 장기간 소유했을 때 품질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할 듯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싼타페는 정말 못생겼다. 순진한 표정의 과거 모습은 사라지고 뻐드렁니 튀어나온 건달처럼 부담스럽다. 그런데 운전경력이 늘수록 디자인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신차 때 아무리 예뻐도, 출퇴근 하며 매일 타면 무감각하다. 멋진 얼굴보다 시트가 편안한지, 가죽이 울진 않는지, 잡소리가 생기진 않는지 등이 더 중요하다.
올해 초 1만2,000㎞ 뛴 쏘렌토 시승차를 탄 적 있다. 그 때도 느꼈지만 요즘 현대‧기아차의 실내 내구성은 과거보다 좋다. 체형이 다른 여러 기자들이 만지고 타는 운전석은 가죽이 갈라지거나 들뜨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싼타페는 기대 이상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오히려 블랙 유광소재가 많아 자잘한 스크래치가 신경 쓰인 쏘렌토보다 낫다.
시트 착좌감 역시 싼타페가 뛰어나다. 사이드 볼스터가 두툼해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맛이 좋다. 그러나 센터페시아 구성은 흠잡을 곳 투성이다. 각종 아날로그 버튼을 ‘보따리장수’처럼 펼쳤다. 특히 에어컨 바람 방향 설정할 때, 화면에 띄우는 그래픽도 지나치게 어둡다. 수납 커버 속에 감춘 컵홀더는 다소 깊숙이 자리했다. 음료를 넣고 빼기 수고스럽다.
반면 뒷좌석은 나무랄 데 없다. 다리 공간도 넉넉하고 등받이를 크게 기울일 수 있다. 장거리 여행갈 때 플래그십 세단 안 부럽다.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맛은 1열보다 떨어지지만, 부모님 모시는 용도로도 손색없다. 뒷좌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파노라마 선루프. 유리 면적이 커 끝내주는 개방감을 누릴 수 있다. 단, 도어 수납공간은 쏘렌토보다 부족하다.
패밀리카는 승차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4세대 싼타페 TM이 처음 나왔을 때, 다소 단단한 하체가 마음에 걸렸다. 운전자는 만족하더라도 2열에 탈 가족 생각하면 미안했다. 조금 더 포근한 감각을 앞세운 쏘렌토 3세대가 괜찮았다. 그런데 쏘렌토가 4세대로 거듭나며 싼타페와 위치를 바꿨다. 이젠 기아가 훨씬 탄탄한 감각으로 포지셔닝 했다.
반면 싼타페는 부분변경을 치르며 순한 맛으로 변했다. 쏘렌토와 비교해 서스펜션 상하 스트로크가 길고 한층 부드럽다. 탄탄한 주행질감을 좋아하는 젊은 운전자라면 다소 싫어할 수 있다. 육중한 덩치가 ‘뒤뚱뒤뚱’ 움직이는 감각이 매서운 표정과 어울리지 않다. 그러나 가족의 안락함이 우선이라면 쏘렌토보다 싼타페의 만족감이 높다.
두 라이벌의 뒤바뀐 성격,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현대차 SUV 라인업은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최근 신형 투싼이 등장하며 과거 싼타페만큼 덩치를 키우고 30대의 등짝을 겨눴다. 자연스레 싼타페는 고객 타깃층을 살짝 높인 듯하다.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운 승차감을 앞세운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서스펜션이 물렁하다고 과거 국산차처럼 주행 안정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시속 100㎞ 이상 고속 영역에선 부분변경 전 싼타페 TM보다 한층 낫다. 플랫폼을 바꾸며 이룬 저중심 설계가 무게중심이 높은 SUV의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캘리그래피 트림은 2열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썼는데, 고속에서 방음 성능은 쏘렌토보다 싼타페가 뛰어나다.
지난해 가을, 약 5,000㎞ 뛴 팰리세이드 2.2 디젤 캘리그래피 시승차를 탄 적 있다. 가속 페달과 스티어링 휠을 타고 올라오는 자잘한 진동 때문에 실망했었다. 신차발표회 당시 탄 새 차보다 진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상용 디젤에 뿌리를 둔 R 엔진의 한계가 명백했다. 반면 싼타페의 스마트스트림 디젤 엔진은 확실히 소음‧진동 측면에서 R 엔진과 결이 다르다.
참고로 싼타페‧쏘렌토‧카니발 등에 들어가는 직렬 4기통 2.2L 디젤 엔진은 배기량만 보고 구형 엔진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블록부터 완전히 새로운 엔진이다. 엔진 내부에 마찰 저감 기술을 듬뿍 얹고, 무게는 38㎏ 줄였다. 신형 인젝터와 배기가스 정화장치 덕분에 유로6 RDE STEP2 최신 규제까지 만족한다. 확실히 구형 R 엔진보다 조용하다.
엔진뿐 아니라 N‧V‧H(소음‧진동‧불쾌감) 설계에 공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시승차는 누적 주행거리 2만㎞를 넘었고, 길들이기는커녕 신차 때부터 급가속&급제동을 반복한 차임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정숙성을 보였다. 물론 외부 보닛 앞쪽에선 디젤 엔진의 존재감을 알 수 있지만, 실내뿐 아니라 외부 뒤쪽에서도 과거 R 엔진 품은 싼타페보다 조용하다.
흥미로운 건 같은 스마트스트림 디젤 엔진을 얹고도, 신형 카니발은 주행거리가 늘수록 진동이 유난히 늘어난다. 지난달,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올해의 차’ 3차 심사에서 주행거리 7,000㎞ 뛴 카니발을 테스트할 기회가 있었다. 팰리세이드만큼 불쾌한 진동이 시트를 타고 올라왔다. 이는 싼타페 & 쏘렌토 대비 N‧V‧H 설계에 돈을 많이 쓰지 않았거나, 승합차 뼈대의 태생적 한계가 분명하다.
과거 중형 디젤 SUV는 기름 값 때문에 소음‧진동은 타협해 사는 느낌이 짙었다. 반면 이번 싼타페는 풍절음뿐 아니라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차분히 제압했다. 이 정도의 정숙성이면 가솔린을 선호하는 나도 출퇴근 용도로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특히 진동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겠다.
또한, 연비도 만족스럽다. R 엔진과 비교해 엔진 무게만 40㎏ 가까이 감량했고, 효율 좋은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맞물린 결과다. 평일 오전, 경기 과천에서 서울 용산까지 기록한 평균연비는 1L 당 14.9㎞. 혹자는 ‘주행거리 2만㎞ 넘게 달리면 디젤, 그 이하는 가솔린이 적합하다’고 하지만, 짧은 거리만 달려도 디젤과 가솔린의 연비 차이는 명확하다. 까다로운 유로 6 규제 맞춰 등장한 새 엔진인데, 디젤이란 이유로 손가락질 받아 안타깝다.
외모 빼고 만족스러운 싼타페. 그러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번 스마트스트림 디젤 엔진은 소음‧진동은 잡았지만 가속할 때 ‘휘이이이잉’ 하는 독특한 흡기음이 있다. 비슷한 소리를 지닌 엔진이 더러 있다. 지프 랭글러 JL이 쓰는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좋은 예다. 엔진 고유의 소리지만, 사람에 따라 거슬릴 수 있기 때문에 구입 전 시승을 해보는 게 좋다.
싼타페 2.2 디젤 AWD 캘리그래피
*장점
1. 포근한 승차감
2. 넉넉한 2열 공간
*단점
1. 볼수록 별로인 얼굴
2. 조작하기 불편한 센터페시아
<제원표>
글 강준기 기자
사진 현대자동차, 강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