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론 격의 칼럼에서 트랜스젠더가 최소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만화를 10편 발견했다고 썼다. 그후 몇편 더 찾아 이제는 15편이 넘는 리스트를 갖추게 됐다.
만화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와 <내 이름은 샤이엔,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꿈꾼문고 제공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등장함에도 리스트에 포함할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 2쪽만 불법적으로 게시된, 제목을 알 수 없는 만화가 그 예다. 남자 주인공이 성관계 도중 상대 여성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 장면이 담겼다. “게이였던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보아 트랜스젠더라는 말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작품일 것으로 생각된다. 2001년 하리수가 광고 모델로 데뷔하며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알려지게 됐지만, 그 전에도 그 후로도 트랜스젠더 재현은 특정 방향으로 고정돼 있었다.
우선 트랜스 남성은 드러나지 않고 트랜스 여성만이 가시화됐다. 다분히 성애화된 재현 속에서 남자 주인공과 독자를 ‘속이는’ 극적 반전을 선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조롱 혹은 혐오로 요약될 이런 재현은 아직도 남아 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네이트웹툰에 연재됐던 〈그 녀석이 찾아왔다〉(이유인·HYO·김진희)는 그 전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2009년에 트랜스젠더를 등장시킨 〈어서오세요, 305호에!〉(와난·네이버웹툰)는 훨씬 나은 재현을 보여준 바 있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 친구 ‘물병’이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붙들고 나름의 공부를 이어간 양주하는 몇년 만에 ‘물병’을 다시 만난다. 준비한 시간 덕에 둘의 재회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성애화도 없고, 누구도 ‘속이거나 속지’ 않는 재현이다. 하지만 하나의 좋은 재현만으로는, 더 많은 나쁜 재현들의 영향을 중화하기조차 벅차다.
2020년에 트랜스젠더 작가들이 발표한 두 작품, 〈내 이름은 말랑〉과 〈내 이름은 샤이앤〉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들은 때로는 차근차근 설명하고 때로는 감정을 담아내며 여러가지를 논한다. ‘시스젠더’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것을 이야기하며 편견을 깨고, 트랜스젠더 독자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보를 전달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독자를 고려한 재현 사이사이 표명된다.
트랜스 남성 만화가 아유미의 작품 〈에코즈〉(아르테팝·2018)는 또 다른 멋진 재현이다. 일본에서 ‘여성판 〈슬램덩크〉’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에코즈〉는 여자 농구부원들의 이야기다. (트랜지션 전의) 트랜스젠더가 넌지시 등장하지만, 그 정체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승리를 향한 열정으로 모두가 함께 하나의 시합을 만들어갈 뿐이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플레이를 하되 서로 공명한다. 이 만화의 재현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 가운데 하나다. 한 사람이 그 자신으로서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가능한 것이 될 때를 스포츠를 경유해 그려낸 것이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는 선언이 여러 재현과 함께 우리 삶의 자리를 울릴 때, 더 나은 이해와 ‘함께함’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조금 더 시끄러워지기를. 그래서 우리가 삶의 자리를 공명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