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가형 국가'로 대전환해야

입력 2021. 1. 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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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제 투자가 애플 낳았듯
기업이 도전하고 개선할 수 있게
플랫폼 제공하고 혁신 지원해야"
이동근 < 현대경제연구원장 >

골프에서 핸디캡이 아예 없는 골퍼를 ‘스크래치 플레이어(scratch player)’라고 한다. 골프에서는 기량 차이가 나는 경기자에게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핸디캡을 부여한다. 스크래치는 일반적으로 ‘긁다’ ‘할퀴다’를 뜻한다. 또 다른 의미로 육상 트랙의 스타트 선을 스크래치 라인이라고 부른다. 스크래치라는 표현은 땅에 선을 그어 놓고 시작한 경주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산업 발전은 이미 상업화된 외국 기술을 도입→흡수→개선하는 반복적 과정이었다. 추격자 또는 후발 주자로서 모방을 통해 혁신을 이뤄내면서 선진국과의 핸디캡을 좁혀왔다. 이런 성장 과정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을 열었고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주목받게 됐다.

이런 눈부신 발전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 및 산업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주력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2020년 경제 성장률은 -1%대를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국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투자 감소 등 경기 침체와 잠재성장률 감소라는 근본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새로운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름만 바꾼 정책에 대한 논란 여부, 신사업 창출 및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및 산업 환경 개선, 사회적 대통합 유도 등 큰 과제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국가도 기업가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기업가형 국가(The Entrepreneurial State)’를 제시했다. 혁신주도성장을 위해 ‘정부는 시장실패의 경우에만 개입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 기업이 회피하거나 주저하는 리스크가 큰 기술과 프로젝트를 선도적으로 투자 및 추진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애플 탄생의 이면에는 미국 정부의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로 유망한 핵심 원천기술 획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애플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해 혁신적 방법으로 이런 기술 성과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정부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에 대한 장기적 투자와 새로운 산업의 지평을 열어갈 유망 분야에 민간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은 위기 돌파와 재도약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침체된 산업의 활력을 되살리고, 기술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공공 부문도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기업가형 국가는 단순히 정부의 큰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하고 꾸준히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민간의 혁신을 지원하는 스폰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 선도 국가 및 혁신 국가로의 대변신과 뉴딜정책의 성공을 위해 민간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한국 현실에 맞는 ‘기업가형 국가’ 모델이 절실한 때다. 소통·협력을 통해 제도·정책의 과제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수립함으로써 대내외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 환경, 세제, 기업지배구조 등 기업 환경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선진국과의 핸디캡을 줄이고 스크래치 라인에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하기 위한 첫 발걸음의 토대가 기업가형 국가로의 전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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