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와 입 잘린 채 발견된 유기견 '순수'.."반려동물 분양 절차법 필요"

김세희 2021. 3. 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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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을 지나던 한 시민이 쓰레기더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지퍼로 굳게 닫힌 알록달록한 가죽 가방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안에 갇힌 무언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더 강하게 꿈틀거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온 구청 직원과 함께 가방을 열자 충격적인 모습의 강아지가 발견됐습니다.

유기견 앱에 올라왔던 순수의 모습


■ 코와 입이 잘린 상태로 발견된 '순수'…"학대 분명해"

유기견 '순수'는 코와 입이 잘리고 목에 조여진 케이블 타이가 살을 파고든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유기견 앱에서 순수를 보자마자 임시 보호를 결심한 김연경 씨는 "유기견 관련 봉사를 몇 년간 했지만, 이렇게 얼굴을 심하게 망가뜨린 경우는 처음 봤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시 보호 초기, 순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캑캑댔고 경련까지 일으켰습니다. 김 씨는 "코에서 쉭쉭, 삑삑 같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계속 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흉터가 아물면서 콧구멍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순수는 콧구멍을 뚫는 수술과 잇몸을 덮어주는 수술 등을 받기 위해 7~8차례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수술 후 숨 쉬는 건 좋아졌지만, 깊이 호흡하면 재채기가 나는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김 씨는 순수가 상처를 입은 건 사고가 아닌 학대라고 주장합니다. 상처 모양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깨끗하게 잘렸기 때문에 산짐승에게 물렸거나 덫에 의해 다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또 치아와 잇몸은 멀쩡한데 코와 입술만 일자 단면으로 잘린 점으로 보아 둔기나 교통사고에 의한 흔적도 아니고 예리한 도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잘린 상태로 추정된다는 겁니다.

병원 의사들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 "책임감 없이 샵에서 동물 쇼핑…반려동물 분양 절차법 필요"

김 씨는 순수 같은 일을 당하는 동물들이 없도록 '반려동물 분양 절차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아무런 제제나 규제 없이 쇼핑하는 물건처럼 반려동물을 사고팔고 버리고 있다"면서 "기초 지식도 없이 돈 주고 생명을 사고팔고 있으니 책임감도 생기지 않아 학대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반려동물을 분양받으려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기 위한 수강을 해 수료증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제를 도입해 아무나 분양할 수 없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아동 학대나 폭행 전과가 있는 사람은 분양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 분양업자도 최소한의 기본 훈련법을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며 "규제를 어기면 벌금 이상의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분양 절차가 법으로 정해지면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생명이라고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이젠 정말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씨는 이러한 내용을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고 6만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 "해외에선 반려동물 교육 이수 권고…동물 학대 시 점유 금지"

반려동물 분양 절차법에 대해서 동물자유연대 측은 "스위스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의무 교육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던 적이 있다"면서 "현재는 법을 폐지했지만, 입양 시 교육 이수를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호주의 경우 반려동물 교육을 이수하면 등록비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동물 학대로 유죄를 받은 사람들의 소유권을 제한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물 유기와 방치, 학대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5~15년 동안 어떠한 동물도 소유하거나 점유할 수 없게 법으로 정해 놓은 겁니다.


순수가 건강을 회복하자 김 씨는 가해자와 목격자를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지난 1월 말쯤 경찰에 수사 접수를 하고 SNS를 통해 목격자를 찾고 있습니다. 동대문구청에 현수막 게첨과 동구민 협조 요청도 지속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김 씨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벼운 마음으로 데려가지 않도록, 무거운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세희 기자 (3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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