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법·행정부 모두 변희수를 외면했다"

김원진 기자 2021. 3. 2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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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변희수 전 하사/ 연합뉴스


지난해 3월, 그러니까 꼭 1년 전이다. 고 변희수 전 육군 하사(23)는 서울 도심에서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털빛이 새하얀 고양이의 이름은 씨엘이라고 지었다. 프랑스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너무 예쁘지 않냐’며 씨엘의 사진과 영상을 종종 보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변희수 전 하사와 지난 2월 중순 마지막 연락에서 주고받은 주제도 씨엘의 예방접종이었다. 센터에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활동가가 그에게 예방접종 일정을 알렸다. 그는 “알려주신 날은 일정이 있어서 그다음 날 가겠다”고 했다.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 3월 3일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첫 군인이었다. 2월 27일까지 지인들과 연락을 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고 한다. 올해 2월 28일이 예정대로라면 전역 예정일이었다.

육군은 2020년 1월 22일 심신장애 3급을 이유로 들어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전역을 결정했다. 심신장애의 이유는 고환·음경 결손이었다. 궁색한 사유였다. 군에 남겠다는 군인을 군에서 전역을 시켜버린 극히 드문 사례였다. 강제전역 조치는 바로 다음 날 이뤄졌다. 군은 새로 집을 구하고 다른 일을 알아볼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부대에 발붙이지 말라는 식의 조치였다. 기업으로 치면 부당해고에 가까웠다”고 했다.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전역 과정을 지켜본 김형남 사무국장을 지난 3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 우철훈 기자


■끝까지 군을 미워하지 않았다

2019년 6월, 군인권센터에 전화 상담이 들어왔다.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혔다. 군에 남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그전까진 군에 가기 힘든 상황을 호소하는 트랜스젠더 분들의 상담만 받아왔다. 군복무를 더 하고 싶다는 상담은 저희도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다”고 말했다.

변희수 전 하사는 모두가 알아주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줄임말)’이었다. 군 특성화고를 나와 졸업과 함께 2017년 3월 군복무를 시작했다. 군생활이 곧 ‘덕업일치’였다. 강제전역을 당한 뒤에는 총기등록을 하고 공기총을 샀다. 과녁도 사 집에 챙겨놨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처음엔 의아했는데, 그냥 군대, 무기 이런 게 좋았던 거였다. 주변에 군생활과 무기를 설명해주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변희수 전 하사는 국군수도병원에서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가 심하다는 진단과 함께 성별 재지정 수술(성전환 수술)을 권유받았다. 중대장, 대대장에게 보고하겠다고 군인권센터에 알렸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군에서 현역부적합심의에 올릴까봐 오히려 저희가 걱정했다. 어떤 면에선 용감하고 어떻게 볼 땐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 2019년 7월 여단장에게도 보고가 됐다. 여단장은 “네 군생활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군단장까지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2월 23일, 군의 승인하에 해외에서 수술을 받은 뒤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 국내에는 아직 성별 재지정 수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없다.

군의 기류가 급격히 바뀐 건 2020년 1월이었다. 2020년 1월 10일 육군은 변희수 전 하사에게 전역심사위원회 개최를 통보했다. 전역심사위는 대개 질병 등을 이유로 군부대 전역을 희망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심사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같은 달 21일 전역심사 3개월 연기를 군에 권고했지만 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속부대 주임원사는 강제전역이 결정된 2020년 1월 22일 밤 9시쯤 울면서 전화했다. 주임원사는 “내가 못 지켜줘 미안하다”고 했다. 강제전역 이후에는 선임중사가 기사에 달린 악플을 보고 벌컥 화를 내며 연락해왔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변희수 전 하사가 군이 밉다거나 군이 증오스럽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 없다. 군이 본인이 돌아가야 할 조직이고, 군도 언젠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변희수 전 하사의 죽음 이후에야 군에서는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연구가) 아직은 없는데 이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7일 고 변희수 전 하사와 성소수자 활동가 김기홍씨를 추모하는 메모리얼 액션 행사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렸다. | 김기남 기자


■사법부와 국회도 뒷짐

“저 납치됐어요!”

2020년 8월 18일, 변희수 전 하사가 메시지를 보냈다. 길에서 우연히 ‘평등버스’를 만났다고 했다.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3일간 평등버스로 전국 25개 도시를 돌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날 충북 청주의 낮 최고기온은 33도였다. 그는 이날 주변 사람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이맘때는 군에 있으면 더위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다. 군부대의 무더위도 웃으며 말할 정도로 군생활에 애착이 컸다. 그는 평등버스에 타 대전까지 함께 이동했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평소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날도 발언하고 싶어했는데 제목만 자극적으로 달린 기사가 나올까봐 주변에서 오히려 말렸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변희수 전 하사가 또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칠레로 이민갈까요”라고 했다. 트랜스젠더 군인이 칠레에서 공식적으로 군복무를 하게 됐다는 뉴스를 본 뒤였다. 방송에서 성소수자 혐오범죄 제보를 받는다는 소식에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 1월에는 신촌에서 만나 “소송이 빨리 좀 진행됐으면 한다”고 했다.

변희수 전 하사는 ‘트렌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도움을 받아 2020년 8월 11일 대전지법에 전역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맘때 유엔은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 전역이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법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2020년 11월 소송을 빠르게 진행해달라고 서면을 제출했다. 지난 2월에야 첫 기일이 오는 4월 15일로 잡혔다. 소장이 접수되고 무려 6개월 지난 뒤였다. 변희수 전 하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은 유족이 이어간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사법부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법원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변희수 하사는 법정에 한 번 서보지도 못했다”며 “군(행정부)이 변희수 전 하사를 외면할 때 법원(사법부)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심 없는 국회 모두 뒷짐 지며 침묵에 동참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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